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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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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5월 11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골로새서 3 :18-19
설교제목 : 이런 가정되게 하소서
[골3:18-19]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어버이 주일을 나라는 존재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수고와 돌봄으로 빚어진 존재라는 걸 늘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걸 생각해 봤습니다.
자식된 이들은 부모님이 하나님의 지속적인 창조의 연결고리라는 것을 명심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을 통해서 왔지만 하나님에 속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실 때에 그 가정의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된다는 것을 가정들을 통하여서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도 눈물과 아픔 속에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먼저 빌어봅니다.
1874년에서 1880년까지 영국 수상을 지낸 벤자민 디즈레일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보다 열두 살 연상인 돈 많은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결혼생활은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노년이 되어서 어느날 농담삼아서 디즈레일리 수상이 부인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왜 내가 당신과 결혼했는지 알아?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돈 때문이야.
그랬더니 아내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음에 그런 기회가 생기게 된다면 그때에는 꼭 사랑 때문에 결혼하도록 하세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에 대해서 아주 깊게 생각을 해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꿈꾸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행복한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괴테의 말입니다.
왕이나 백성이나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말입니다.
가정에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영국의 철학자 무어의 말입니다.
사람은 그가 필요한 것을 찾기 위하여 세상에서 여행을 하다가 결국에 집으로 돌아온다.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을 천국으로 이루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가정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이란 얼마를 소유하느냐에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거나 집이 화려하거나 잘 꾸며 놓았다고 가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좁은 집일지라도 바로 관계가 아름다운 가정이 좋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행복하십니까?
오늘 이소영 자매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는데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오더라고요.
그렇게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이 일평생 동안 그렇게 애써서 이루어 놓은 것이 행복이 아닙니까?
행복하지 않은 성장이라고 하는 것, 성공이라는 것, 그걸 우리는 행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행복을 잃은 자녀의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제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첫째, 행복한 가정은 인격적이라는 것
[골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저는 인격적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인격적인 관계가 깨지면 비인격적인 관계 때문에 동물적이고 또 나아가서 물질적인 관계로 변화되면서 사람이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 아내에게 명령하는 성경적인 관점은 바로 인격적이라는 겁니다.
안데르센 동화 중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 한마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노부부가 어느날 의논 끝에 말보다 더 쓸모 있는 무엇과 말을 바꾸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어느날 할아버지는 말을 가지고 장터에 갑니다.
그런데 거기에 젖 짜는 소가 았었습니다.
말보다는 우리가 젖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저 소가 좋겠다, 라고 하며 말을 소하고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소는 너무 커요. 좀 가다 보니까 양이 있습니다.
아내가 소보다 양을 키우기가 쉽겠다, 라고 생각하고 그 소를 양하고 바꿉니다.
그런데 좀 가다 보니까 알을 낳는 닭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닭하고 그것을 바꾸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할아버지는 그 닭을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었습니다.
이는 언젠가 썩은 사과 한 개를 대단하게 다루던 아내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썩은 사과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이런 자초지정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두 귀족이 할아버지와 내기를 합니다.
당신이 썩은 사과 한 자루를 가지고 집에 돌아갔을 때 할머니가 정말 기뻐한다면 우리 둘이서 금화 한 닢씩을 주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가정으로 들어갑니다.
할아버지는 그 과정의 모든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다 설명을 해 줍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기뻐하면서 정말 잘했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관계의 모습을 바라보던 귀족은 감탄하면서
금화 두 닢을 내어 놓고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부부 간의 관계는 소유의 관계가 아니라 애착을 가지고 서로 존중히 여길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남편에게 해야 하는 인격적 관계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보겠습니다.
주 안에서 마땅하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복종이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부여하신 권위를 인정하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복종하다는 것은 아내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질서없는 평등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아십니까?
여러분, 얼마 전에 학생이 선생님을 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날 학교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귀하고 사랑스럽게 보호해야 하지만 질서가 잡히지 않으면 사랑과 평등의 관계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선생님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하다 할지라도 기본적인 질서, 기본적인 관계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이런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불의한데, 자격이 없는데 피해가 가는데 그래도 복종해야 합니까?
여기서 복종이라는 것이 무조건 따르라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방식 그것이 무엇입니까?
불의한 방식이 아니라 옳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즉, 내 마음에 차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를 헤아려보는 노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받아들여 주는 마음입니다.
자격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남편이기 때문에 가족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주는 것입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가정에서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훌륭한 남편 뒤에 현숙한 아내가 있다는 것.
잠언 12:4에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현숙한 아내, 어진 아내는 그 남편과 함께 존영을 얻고 면류관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아내들의 어진 모습으로 남편과 함께 저는 여러분의 가정이 영적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되기를 빕니다.
둘째, 행복한 가정은 사랑이 있습니다.
미국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으킨 후에 고향에 돌아가 조그만 집 한 채를 지었습니다.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이건 너무 초라하지 않느냐고 호화롭지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지 않느냐고 주위 사람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포드를 바라봅니다.
그러자 그는 얼굴 가득한 미소를 띠며 대답을 합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면 그 집은 위대한 집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가 주택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좁은 주택을 가졌더라도 가정이 없는 예도 있습니다.
집은 있지만 가정이 없고 가족도 없습니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가정이 될 때 단칸방일지라도 축복받는 아름다운 가정이 될 것입니다.
미국 청소년들이 매달 2,000여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뉴욕에 몰려와서 탕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들이 깬 유리창만 30만장이며 그들이 부순 공중전화기가 3만대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미국의 가정이 이렇게 된 것은 교육환경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의 가정이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가기 위한 또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인격적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상호적이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인격적인 관계는 절대로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반응이 뒷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인격적인 관계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에 이은 또 하나의 상호 보완적인 명령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골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남편에게는 권위의 역할이 주어졌지만
그렇다고 자기 아내를 아랫사람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요구되는 것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만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굉장히 그 부부는 굴욕적인 관계가 될 것입니다.
어떤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많은 축하객이 있었기에 신랑, 신부가 참으로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식순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부, 신랑 모습을 지켜보던 하객들의 모습이 다 기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축하객 중에 한 부부가 데리고 온 아이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불쑥 엄마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엄마 결혼이 뭐예요?
그 엄마는 어린 아이가 결혼에 대해서 묻는 것이 조금 의외였지만 대답을 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게 되어서 하는 거란다.
결혼해서 부부가 되면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고 모든 힘든 일을 나누어 도와주게 되지.
그때 그 꼬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엄마 아빠를 쳐다보며, 엄마 아빠는 결혼한 게 아니네요.
이해하십니까?
남편의 가장 큰 덕목이 무엇입니까? 돈을 많이 벌어온다고 행복할까요?
우리 주변에 돈을 많이 벌어오는 가정이 얼마든지 불행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와 함께 많은 시간을 갖는다고 행복할까요?
우리 주변에 남편이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사람과 인격의 원리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사랑으로 세움을 받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한다는 것, 역시 인격적입니다.
나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 때문에 상대방이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상대방을 세워주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을 높여준다 해도 그 사람이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신앙의 기본원리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사랑의 원리
내 방식이 아니라 그를 위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제 목회 그만할래요.
왜 그러느냐?
목회의 현실 속에서 가정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힘듭니다.
여러분, 작은 공동체이지만 부모님이 아파서 간호하는 사람들
또 작은 공동체이지만 불황 속에서 경제적인 고통 가운데에서 삶의 존폐위기 속에 있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기도하면서 너무 힘들다.
빨리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랬더니 예수님이 너는 불과 몇 사람 가지고 그러느냐
나는 모든 인간을 다 껴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나도 기도했지 않느냐.
여러분, 하나님의 영적 원리 가운데 여러분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몇 주전 결혼한 우리 이소영 자매의 가정이 지금 모습처럼 늘 행복을 유지하는 가운데 살아갈수록 더 깊어가고 익어가는 그런 가정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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