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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마태복음 5:1-7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 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1년 2월 21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마태복음 5:1-7
설교제목 :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설교실황
[마5:1-7]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이제는 도처에서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40일동안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고난의 광야의 길을 걷는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서 절기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빌2: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에 나타난 예수님을 묵상하시며 보내시길 바랍니다.
차머스가 쓴 정오의 강풍 이라는 책에서 보면
유명한 건축기사 피어홈의 긍휼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건축기사 피어홈은 세계 도처에 많은 다리와 터널들을 건설하여 큰 명성을 얻었으나.
뒤에 질병과 실패로 인해 부인과 어린 딸을 데리고 낙향하하게 되었습니다.
이사한 그 집에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냉정한 노인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개가 매우 사나웠습니다.
피어홈은 그 노인에게
우리 가정은 어린애들이 있으니 개를 조심해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노인은 걱정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지나서 그의 어린 딸이 그 개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동네에서는 그 노인에 대한 원망이 자자했습니다.
따뜻한 봄이 와서 파종기가 되어 그 노인이 씨앗을 구하려 했는데 그 노인에게 씨앗을 파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피어홈은 자기 집에 있었던 씨앗의 반절을 그 노인의 밭에 뿌렸습니다.
그 노인의 밭에는 푸릇푸릇하게 싹이 나는데 피어홈의 밭에는 반절이 싹이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집에 있는 밭에는 씨앗을 뿌리지 못한다라고 해도 남의 밭에 가서 씨앗을 뿌리는 자. 그 사람이 긍휼의 사람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팔복 중 다섯번째인
긍휼을 이야기하면서 긍휼은 용서라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헬라어 본문에는 긍휼을 엘레오스라고 하는데
한 성경학자는 이를 당연한 결과로 비참한 상태에 빠져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돕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홧슨은
긍휼(은혜)라고 하는 것은 죄가운데 빠져 있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라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2장을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분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긍휼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 있는 한 우리가 완성해야 할 인격입니다.
[골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이라면 이제 우리는 긍휼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첫번째로 강조하는 것이 긍휼의 옷이었습니다.
긍휼을 이루어갈 때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가?
긍휼을 베풀때 우리가 축복을 얻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만이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주기도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마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성경말씀의 원리대로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니스상인을 보면 세익스피어는 이렇게 긍휼을 이야기합니다.
긍휼은 내리는 비처럼 긍휼을 베푸는 사람과 긍휼을 받는 모든 사람을 모두를 축복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묘사입니까?
작은 공동체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성을 추구해왔던 헨리나우웬은
용서를 자기 삶의 스타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3가지 권면을 이야기합니다.
첫째로 묵상하라.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내 모습 어떻게 그대로를 받아주시고 나를 용서해주셨는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를 생각해야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을 묵상하면
내가 하나님께 빚졌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속 이야기가운데 일만달란트를 빚진 사람이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했지만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빚을 탕감받았습니다.
그에게 백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에게 지난날 탕감받은 것을 다시 갚아라고 그 주인이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작은 죄를 범해서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을 용서하고 있습니까?
용서하지 못한다면 성경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일만달란트 빚져서 탕감받았다가 다시 감옥에 들어간 그 사람이 내가 아닐까요?
긍휼히 여기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님을 묵상하십시요.
둘째, 결단하라.
이웃을 용서한다는 것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결단이냐 하면 조건없이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조건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조건없는 용서라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김구선생님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였습니다.
일본은 김구선생님 곁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한 젊은이를 매수해서 김구선생님을 살해라라고 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발각됩니다.
사람들은 김구선생님에게 그 사람은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김구선생님은 아니다. 용서해주어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를 용서하시면서 독립운동길 가운데에서 한국의 젊은이를 만날 수 없는데
젊은 그대를 내가 만난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고 하면서 그를 껴안고 포용해주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용서는 조건적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받아들여주셨습니까?
적어도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면 조건없이 용서하십시요.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삶입니다.
셋째, 기도하라.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를 품고 기도해보십시요.
기도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내 가슴에 상처를 입히고 내 삶에 무거운 부담감을 준 사람이라고 해도
계속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되면 용서가 됩니다.
천국의 열쇠를 쓴 크로닌이라는 사람은 의사였습니다.
그가 병원에서 근무하는데 신참 간호사가 들어와서 큰 사고를 냈습니다.
크로닌은 저 사람은 간호사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파면시킬 것을 건의하려고 건의서를 작성합니다.
그 간호사는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크로닌은 그 간호사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면서 그 건의서를 찢었습니다.
그 간호사는 훗날 영국에서 가장 큰 병원의 간호과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도하게 되면 인간관계가 순화됩니다.
그래서 얼마 이후에는 넉넉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납니다.
그러면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할까요?
첫째,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운데 학대가 심각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학대할 수 밖에 없는 삶의 배경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가지 고통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슥7:9-10]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이 사회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가 긍휼을 베풀어야 할 대상임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헨리나우웬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긍휼은 특권적 위치에서 허리를 굽혀 .. 하는 것이 아니다.
상향성의 삶을 성취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동정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긍휼은 그의 삶에 다가가 고난의 극심한 그 현장에 함께 하는 것이다.
둘째, 의롭지 못하게 나를 대하고 내 가슴속에 상처를 주고 나를 핍박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주님이 바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묵상해 보십시오.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럽니다. 용서하소서.
저는 그 말씀을 가끔식 묵상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고 그래서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는 모습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뜻없이 던진 한마디가 한 인생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지적하십니다.
알지못해서 ...
성경에서 스데반의 마지막 모습을 연상해보십시요.
돌을 던져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때 예수님처럼 똑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알지 못하고 그럽니다.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마십시요.
예수님에게서 배운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서 배우고 그 하나하나를 실현해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나에게 아픈 상처를 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십시요.
그럴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것입니다.
셋째, 불신자들입니다.
불신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지옥입니다. 이보다 더 비참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허무하게 살아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아픔과 고통가운데 있는데
그 마지막이 삶의 마지막이 비참속에 떨어지게 됨을 생각하게 되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러한 상황속에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주시고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해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 마음 가운데 거할 때 긍휼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여러분에게 아픔을 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모습이 일어나야 합니다.
[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라고 온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해 주옵소서 말입니다.
세상사람들의 가치관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람들을 뛰어넘는 더 높은 가치관 가운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이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제대로 실천해보세요.
긍휼히 여김을 실천해 보세요.
사순절입니다
긍휼을 베풀어 보십시요.
내가 거하고 있는 공동체와 우리 사회가 변화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하신 모습이 이 땅에 드러나면서
우리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생이 될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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