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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말만 하십시오, 마태복음 5:33-37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2년 11월 6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마태복음 5:33-37
설교제목 : 지킬 말만 하십시오
[마5:33-37]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주님의 평화와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빕니다.
척박한 광야같은 현실가운데 빛을 찾아 헤매이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도 함께 하길 빌어봅니다.
아프고 참담한 슬픔이 우리 가운데 찾아왔습니다.
156개의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죽어간 이들을 주님께서 품에 안아주시길 빕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유족들이 시련의 시간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우리가 그들의 소중한 설 땅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청해야 할 것은 불의를 꾸짖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암담한 현실을 바라보며 탄식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불의는 꾸짖고 선한 뜻은 부추기려 애쓸 때 우리 속에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기둥 하나가 우뚝 설 것입니다.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닭고기를 사기 위해서 정육점을 들렀습니다.
때마침 정육점 주인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문을 닫을 참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정육점 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닭고기가 조금 필요해서 그런데 살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정육점 주인은 냉장고로 갔습니다.
냉장고 안에는 다행스럽게 한 마리의 닭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은 그것을 가지고 나와서 여기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할 때 그 무게를 달아보니 3킬로그램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작은 닭 한마리로는 식구들이 다 먹을 수 없어서 주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좀 더 큰 것이 없을까요?
그랬더니 그 정육점 주인이 그 닭을 가지고 다시 냉장고로 들어가서 문을 열고 그 닭을 다시 그대로 끄집어 내와서 저울에 놓으면서 손가락을 약간 저울을 눌렀습니다.
4킬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흡족한 마음으로 이 정도면 되겠습니다 하고 기뻐하면서 정육점 문을 나서다가 다시 되돌아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마리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조금 전의 그 작은 닭은 도로 주실 수 없습니까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주인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언제 자기의 거짓말이 들통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이 들통날 때 댓가를 톡톡히 치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사는 사람이 마음이 편하다라는 것입니다.
숨길 것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33절에서 35절입니다.
[마5:33-35]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오늘 본문은 습관적인 신앙과 주님께서 이야기하는 신앙에 본질적인 의미의 차이가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그냥 말해도 되는데 왜우리는 맹세를 하고 삽니까?
이유는 둘 중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 자신이 신용이 없어서 그냥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내 말에 좀 더 신뢰성을 갖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신용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정말 중요하고 하나님께 맹세할 만큼 강력한 자기자신의 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은 율법은 맹세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단지 헛맹세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민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그런데 이 맹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어떤 의지로 맹세하였든간에 우리 자신은 우리가 맹세한 그 모든 것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없다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이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세는 본의 아니게 우리를 하여금 사기꾼을 만들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고 용납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약함을 가지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늘 동행하는 인생의 길을 걸어가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울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오늘밤에 너희는 다 나를 버리고 도망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막14:29-30]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막14: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예수님이 체포를 당하자 모든 제자들이 도망갔고 베드로는 멀찍이에서 상황을 살핍니다.
어떤 자가 당신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냐고 하니까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합니다.
예수님과 약속할 때의 의지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 부인할 마음이 없었다 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혹 예수님과 함께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가운데 자신이 큰 소리를 쳤던 맹세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인간의 약함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결국 맹세가 진실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아주 습관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잘 지키지 못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많은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목사님! 노후는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이제 성인이 되고 자녀들을 이제 결혼시켜 출가시키니까 그런 말 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김학필 장로님의 후배인 만영교회의 도명학 집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하고 자주 연락을 합니다. 그 분도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의 노후는 책임지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전화하면서 확인을 합니다.
그랬더니 그 분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그 말에 변함이 없습니다.
없으면 빵하나 나눠먹고 살면 되지요.
그 사람의 진실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참, 그래도 신실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구나…
아무튼 우리의 모습 속에서 아무런 뜻도 없이 습관적으로 말을 위한 말을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민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쓸데없이 우리가 하는 말, 거짓 맹세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정치에 대해서 국민들이 냉소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여러가지 약속을 하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그 약속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맹세한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결과를 낳습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약함을 인정하되 약속한 것은 지키라! 그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삶의 기준이 있다면 말한 것을 지키고 살아야겠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36절 말씀 윗부분에 거짓 맹세의 맥락에서 보아야할지, 아니면 37절 말씀과 같이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묵상하며 깨닫게 된 것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맥락은 부질없는 것이라는 겁니다.
[마5:36-37]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사람들이 아무리 잘난척, 자신의 삶을 과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내 머리로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자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머리로 머리카락 하나를 검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 가운데 ‘손으로 장을 지진다’는 것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손에 장 지진 사람 봤습니까?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보는 가운데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좀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죄라고 성경은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뭡니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맹세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회는 일정한 규범을 가지고 우리에게 선서를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선서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 사회적 인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장로 취임식이 있습니다. 두 교회에서.
장로를 되고자 하면서 또 선서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장로를 된 이후로 얼마나 그것을 지켜 살아갈까?
그 시간 지키지 못한다라고 아멘 하고 선서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반 교회적 인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정직하라는 것입니다.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단순함입니다.
옳은 건 옳다. 그른건 그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단순함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국민들이 이렇게 원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여러분들을 찾아와서 이렇게 묻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저는 한번도 정치인이 찾아와서 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남의 이름을 빌려서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아주 비열한 사람들
저는 그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순교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라는 한마디 거짓말을 못해서 결국 목숨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 어려운 결단은 쉽게 핑계를 대고 살았던 사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을 하지만 그 이름으로 이득을 취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진리가 살아서 역사함을 믿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서원기도를 쉽게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서원기도의 본질을 여러분들이 찾아 들어 보십시요.
사실은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사용하는 것 뿐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라는 그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건적인 소원은 상황이 달라지면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합니까?
우리가 늘 변명처럼 달고 사는 말이 ‘ 본의 아니게’ 라는 말입니다. 비겁한 한 단면이라고 이야기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약속을 잘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가벼운 약속은 우리의 삶을 질식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할 수도 있고
인간적인 관계에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은 신중하게 하되 한번 한 약속은 힘써 지켜야 한다는 것을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약속이라도 소홀히 하지 마십시요.
그 작은 약속을 지키면 큰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주며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진실함을 드러낼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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