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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고 기다리는 절기, 베드로후서 3:8-13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2년 11월 27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베드로후서 3:8-13
설교제목 : 준비하고 기다리는 절기
[벧후3:8-13]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어느덧 12월의 첫주일이 되었습니다.
대림절 첫째주일로 교회에 새로운 한해가 시작이 되는 날입니다.
묵은 달력을 정리하고 빳빳한 새 달력을 벽에 거는 듯한 느낌이 드는 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새로운 출발의 기대가 샘솟는 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구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까?
어떤 아름다운 날들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진심으로 기다릴 수 있으니 복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내려오실 줄 믿고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2000년전 이미 오셨던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기억하며
언제 다시 오셔서 역사의 심판 완성을 이루실 분을 대림절 4주간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그 마지막 때가 언제 닥쳐오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멋진 기다림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수년전 미국의 라이나 화이트라는 18세된 소년이 죽어가는 모습이 TV와 신문매체에서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 젊은이는 13세 때 혈루병을 치료하다가 혈액을 수혈하는 과정에서 에이즈에 감염이 되었습니다.
5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남긴 말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네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가냐?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의 말을 들은 소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셨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나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 주셨잖아요.
저는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인데 저는 조금 일찍 가게 되는 것 뿐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가장 좋은 믿음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제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아니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의 기다림이 중심이 이루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속에서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의 기다림이 있다면
신약성서에서는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기다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기다림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우리의 삶의 일상들을 생각해볼 때
우리의 삶 하루하루가 기다림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봄철에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기다림입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공부하는 학생들의 포부 속에서도 기다림이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인생은 크고 작은 기다림이 가득차 있습니다.
신앙도 기다림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이야기가 기다림의 이야기인 것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의인에게 그 기다림은 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실 때 처음으로 택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의 나이 75세에 부르심을 받고 그는 그의 아비 친척집을 떠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오랫시간의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100세가 되어서야, 부르심을 입고 25년이 지난 이후에 큰 민족을 이룰 수 있는 씨앗,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을 얻고 난 이후에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습니까?
400년이 지나서야 그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룬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향하여서 떠나가게 됩니다.
홍해를 건넜지만 광야에서 40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훈련기간을 통하여서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기다린다는 것이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유진피터슨 메시지 성경을 보니까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참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종말을 유보하고 계신 것은, 한 사람도 잃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삶을 고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베풀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대림절 기간을 통해서 기다림의 시간속에 우리가 머물러 있다라고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대림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신다는 그 깨달음을 갖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기다림은 지루함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림이 새힘을 얻게 한다.
왜?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에게 희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날을 또한 준비하고 기다린다는 의미도 나타냅니다.
[마24:43-44]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다린다는 사람들은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축복이 시간입니다.
아름다운 귀금속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는 진주는 땅에서 캐는 것이 아닙니다.
조개껍질속에 자라나는 보석입니다.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것은 여인들의 아름두운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래알 하나가 들어와서 조개안에 있는 부드러운 살을 베이게 합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을 내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모래알은 나가지 않습니다.
그 때 속에 있는 자기 안의 물질로 모래알을 감싸게 됩니다.
감싸면서 오랜 시간의 기다림의 모습 속에서 결국 영롱한 진주가 탄생합니다.
그러므로 진주는 아픔의 유체덩어리입니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나 앞으로 되려는 사람들은 누구나에게 이와 같은 진주와 같은 과정이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고통의 시간 가운데 기다림은 우리에게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시간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참음으로 기다리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바로 영생의 시간이 주어지게 됨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기다림은 쉽지가 않습니다.
AD 64년 경에 네로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빨리 오지 않으시면 어떻게 할 수 없는 고통가운데 있었습니다.
제가 로마 카타콤에 가보았지만 좁은 미로와 같은 지하무덤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갔던 신앙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하며 살아야 했던 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삶은 비극적이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당시 순교기를 읽어보면 죽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찬양과 기도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런 모습을 바라본 로마황제는 처형을 금지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용기있는 크리스찬들의 모습을 보면서 로마시민들이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짜 힘든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순교의 영광이 아니라 배교의 치욕을 맛보도록 회유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유명한 순교자 폴리캅이 로마군인들 앞에서 마지막 처형을 당하는 그날까지 회유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 하면 살려주겠다고… 그러나 폴리캅은 내 평생 지금까지 한번도 주님을 모르겠노라고 부인하지 않았는데 어찌 내가 지금 주님을 부인하겠습니까? 라며 순교를 당하면서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봤습니다.
[벧후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베드로가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권면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날이 온다 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날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절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봤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누가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시므온이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라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은 안나 선지자입니다.
[눅2:36-37]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오심을 보면서 선포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메시아를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날이 온다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날을 위해 우리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대림절 기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경건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경건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냐는 겁니다.
경건이라는 말의 참뜻은 내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약1:26-27]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사는 한국에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부정직한 사람들이라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많은 교회가 생겨났는데 왜 그리스도인이 25퍼센트라고 이야기하는데
왜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그럴 때마다 사도바울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건이 뭐냐?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찬양드리고 기도하는것 아닙니다.
오늘 야고보서에서 우리에게 강조하는 건 진정한 경건은 정직함이다라는 겁니다.
모든 사람을 대할 때마다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그 날에 주님 앞에 서는 날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면서 모든 사람들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함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지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오늘 야고보서에서 후반절에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경건입니다.
우리 고백 공동체가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지난 우리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찾아왔던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의 40년 지난 역사를 읽어보면서 이 모든 것이 정말입니까?
노숙자를 돌보는 일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한 일을 다 들으면서
왜 고백공동체가 그 길을 걸어가야 됩니까?
세상속에서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우리는 성경말씀 속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고통받는 이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작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녀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짜 경건하다면
오늘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을 잊지 마시고 찾아가서 돌보십시요.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이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갈망하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생 살아가면서 주변에 모든 이들을 정말 그리스도를 대하듯이 정직하게 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살피는 가운데 여러분들을 통해 한 생명이라도 예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로 내 가족 가운데 떠나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영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여러분의 진실한 섬김으로 그들이 회복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의 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저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고백공동체가 참된 경건을 통하여서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며
영광의 구름속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기쁨으로 기다리며 삶을 살아가는 지체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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