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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4 주일 2부예배- 동기가 무엇입니까**

동기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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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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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2년 12월 4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마태복음 6:1-4
설교제목 : 동기가 무엇입니까

[마6:1-4]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의 손발을 빌려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은총이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교회력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이 시간
기다림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매우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주님 기다리는 이들은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움을 품고 주님이 오실 길을 닦는 모습으로 우리는 기다립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던 세례자 요한은 주님 오실 길을 닦는 것을 자기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높은 곳은 낮추고 우묵한 곳은 돋우고 구부러진 것은 바로 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다림의 자세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시린 손을 잡아주고 누군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려 노력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상기시키는 이가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실한 기다림이요 기다리는 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두 농부가 한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한 농부는 크리스천이었고 다른 한 농부는 불신자였습니다.
그들이 각자 논을 가지고 있었는데 크리스천 농부의 논에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와 물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 농부의 논은 사람이 수고를 해야만 물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불신자 농부는 꾀를 내어 크리스찬 농부의 논에서 물꼬를 터서 자기 논에 물을 채웠습니다.
이 모습을 본 크리스찬 농부는 분노를 느끼고 불신자 농부의 논의 물을 빼 자기 논에 물을 대었습니다.
크리스천 농부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찜찜한 기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까? 당연한 권리를 취한 건데요.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왜 너는 정당한 것만 주장하는가?
너는 왜 너의 물이 필요한 이웃에게 스스로 물을 대주지 못하느냐?
큰 깨우침이 왔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 농부는 자진해서 불신자 농부의 논에 물을 대었습니다.
불신자 농부는 자기 논에 물이 찬 것을 보고 … 다음날 크리스찬 농부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고 예수님을 믿겠노라 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선행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선을 행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선을 행할 수 없는 환경속에서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삶의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할 때 존경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성경속에서 강조하는 것이
존경받기 이전에 은밀한 중에 행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존경과 칭찬을 받고자 선을 행하지 말라는 겁니다.
옳은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칭찬과 존경을 따라오게 된다는 겁니다.

동기가 목적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선을 행하며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사람에게 은밀한 것이 가장 값진 것이라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제가 20년전에 함께 했던 한 청년이 책을 한 권 보내와서 그와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그는 이야기합니다.
청년시절 고백교회 안에서 자기 신앙이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때 받았던 그 모든 것들을 제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요.
또 다시 생각이 나고 그 생각이 쌓여서 이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목사님께 책을 보내면서 자기 자신을 고백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20년전에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그를 대했는지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오늘 본문의 말씀의 의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기억하고 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선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궁전이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자기 몸을 단장하고 그 문 앞에 서 있었지만 아무도 들여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 소년은 문지기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궁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문지기는 대답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면 들어갈 수 있단다.
소년은 궁전에 들어가려는 목적을 가지고서 노인 거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궁전 앞에 섰습니다.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지기에서 따졌습니다. 
저는 선한 일을 했는데 왜 들여보내주지 않습니까?
그 문지기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보이려고 하는 선은 결국은 효력이 없단다.
소년이 그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데 덫에 걸려서 피를 흘리고 있는 한 강아지를 봤습니다.
그 소년은 무심결에 다가가서 덫을 풀어서 강아지를 구해주었습니다. 덫을 만지다가 손에 상처도 입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소년에게 궁전 문이 열렸습니다.
소년은 문지기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선한 일을 한 것도 없는데 어찌 저를 들여보내주십니까?
지금 자기 자신이 선행을 베풀고 있다라는 사실을 잊은 채 남을 돕는 사람에게 문이 열린다고 문지기는 대답했습니다.

진정한 선행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선행은 감추어질 수록 더 빛이 난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6장으로 넘어갑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도덕적인 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6장에서는 종교적인 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6장 전체의 주제는 우리의 의가 종교적인 바리새인이나 이교도인과 다른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너희가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그것이 연극이 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여라. 그것이 멋진 연극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너희를 지으신 하나님은 박수를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복음 6:1, 메시지성경)

여러분의 섬김과 봉사가 연극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조하시는 것이 성숙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청년이 등산을 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죽게 되었을 때
그 곳에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 청년은 은혜를 보답하고자 그 사람의 주소와 전화번호와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야기했습니다.
성경 속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주소와 이름이 있습니까?
청년대답했습니다. 쓰여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내 이름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끝을 맺었습니다.
진정한 의는 이처럼 자기 의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는 우리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6:2-4]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유진피터슨의 성경을 더 보겠습니다.

남을 위해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너희 자신이 주목받지 않도록 하여라. 분명 너희도 내가 ‘연극배우’라고 부르는 이들의 행동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도회며 큰 길을 무대로 알고는,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으면 긍휼을 베풀고 사람들 앞에서 연극을 한다. 물론 그들은 박수를 받지만, 그것이 전부다. 너희는 남을 도울 때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소리내지 말고 은밀히 도와주어라. 사랑으로 너희를 잉태하신 너희 하나님도 무대 뒤에서 일하시고, 너희를 은밀히 도와주신다.”
(마태복음 6:2-4, 메시지 성경)

[요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어떤 바리새인이 성전이나 회당에 있는 특별한 상자에 돈을 넣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금을 주러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팔을 부는 이유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아 와라. 돈 주겠다. 그들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들은 분명 가난한 사람들을 부르는 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존경하고 아름답고 선한 일을 행하는구나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모습을 분명히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위선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깊이 새겨야 하는 부분입니다.
누굴 돕는다는 것은 잘못이 어닙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마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행동이 아닌 마음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서양화가 이중섭 선생님이 계십니다.
이화백의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절친한 친구가 몸져 누워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절친은 이중섭 화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며칠 후에 이 화백이 친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때 병원에 입원했던 친구가 묻습니다. 왜 이제 오는가?
미안하네. 벌써 오려고 했지만 빈 손으로 찾아뵐 수 없었네
자네만 오면 되는 건데
그 당시 이화백은 궁핍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게 뭔가?
내 정성일세. 별거 아니니까 받아주게나.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네.
친구는 꾸러미를 풀어보면서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림이었습니다.
무슨 그림인가?
청도를 그린거야
청도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하지 않는가.
이걸 보고 얼른 일어나게.
이화백은 과일을 살 돈이 없어서 과일을 그려온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친구의 마음에 영원히 남는 최상의 선물이었을 겁니다.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간단히 표현하면
하나님과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제의 행위는 사랑의 마음에서 일어난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인의 구제의 특징은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구제 뒤 자기 희생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 초점을 나에게 맞추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년전의 그 청년이 기도제목을 보내와서 제가 당회원에게 올려드렸습니다.
딱 세가지였습니다.
첫째, 저희 가정이 하나님의 명문가정이 되기 원합니다. 믿음이 대대손손 이어갈 수 있는 가정이 되기 원합니다.
둘째, 그가 롯데그룹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되기 원합니다.
셋째, 천 명을 구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기 원합니다.

자기의 부를 구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의 인생가운데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청년을 생각하면서 제가 답장을 보냈습니다. 
너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옳다 하실 것이다.

우리 삶이 이와 같이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기 보다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어서 신앙의 길을 걷는다면
옳다 인정함을 받고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를 들어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가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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