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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8 주일 2부예배- 온전한 복음**

온전한 복음, 누가복음 16: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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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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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2년 12월 18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누가복음 16:19-31
설교제목 : 온전한 복음

[눅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평화가 그리운 시대에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안과 기쁨이 임할 수 있기를 늘 기도해봅니다.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수선한기만 합니다.
어떤 이들은 탄식합니다. 절망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섣부른 절망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며 걸어갑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베들레헴 마굿간으로 달려갔던 목자들을 생각해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뵙기 위해 어느 곳으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희망을 포기해버린 사람들, 말벗조차 없어 외로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자리야말로 우리 주님이 머무는 말구유가 아닐까 합니다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보냄받은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가난한 자들을 위해 빈민마을에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살면서 헌신했던 한 젊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수기를 읽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이런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숱한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삶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전혀 말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영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병에서 치료될 수는 있었지만 저는 그들이 내적인 삶의 병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채 죽어가는 모습을 품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일터를 얻게 되고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빈민을 대상으로 선교한다는 거창한 미션을 내걸었지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자기가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육신의 질병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일깨워주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교방향을 균형있게, 떡 뿐 아니라 복음도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저자 자신의 체험을 통해 스스로를 점검하면서 올바른 방향을 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복음입니다.
모든 것은 복음 안에서 형성되고 추진되어야 합니다.

오늘 기독교가 침체되어 간다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영혼을 적시고 살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설교를 들어보면
회중을 웃게 하려고 하는 설교가 많습니다. 설교 속에서 예수는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재앙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침체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본질에 충실하지 않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 21절을 보면

[눅16:19-2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보십시요.
부자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내용이 단 한마디라도 있습니까?

그는 부자이기에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내가 수고하여 하나님 앞에서 소득을 얻었기에 나 자신을 위해 마음껏 쓰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신이 누리는 것이 축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앉아 있는 한 부자로 있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복음이 온전한 복음인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온전한 복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가요?

오늘날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도 그리스도인들이 큰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기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이 우리의 삶에서 실종된 것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의 부자도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이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의 재물이 믿음에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부자는 불꽃가운데 괴로워하며 형제들을 염려하는 것을 봅니다.

[눅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을 알았던 것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형제들이 이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도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는 있었는데 아는 대로 살지 않았다는 겁니다.

[눅16:29-31]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 본문 속에서 아브라함은 냉정하게 이야기합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해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겠느냐?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피폐한 세상속에서 복음이 작동되지 못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지금도 여기 저기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야드바쉬엠이라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기억의 집이라는 뜻인데, 홀로코스트 기념관입니다.
유대인이라면 600만명이 학살된 것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날의 고통을 잊지 말라고 하는 가운데 학살 기념관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내부로 관람하고 바깥으로 나가면 거기에 수많은 아동들이 죽음을 당했던 기념비가 세워져있고 
좀 더 올라가면 한 어른이 10명의 아이들을 껴안고 있는 동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야누쉬 코르쟉과 아이들이라는 동상입니다.

어느날 폴란드 학교에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독일경찰이 찾아왔습니다. 
유대인 아이들은 혼비백산하면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아이들은. 학살의 모든 소식을 들었기에 공포에 질렸던 것입니다.

무서워서 어쩔 줄 몰랐던 아이들을 향하여서 담임선생님이 다가가서 이야기합니다. 
애들아 무서워하지 말라 우리 손잡고 함께 가자꾸나.
선생님은 나치의 트럭에 올라타서 같이 갔습니다.
가스실에 도착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자기 아이들을 다 껴안고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선생님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습니다.
코르쟉 선생님은 유대인이 아니라 폴란드인이었습니다. 
끌려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독일 나치들은 그렇게 유대인을 미워했지만 코르쟉 선생님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코르쟉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해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그 분은 지금까지 유대인의 머리속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으로 다른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행동으로 그 사랑을 전할 때 비로소 그 영혼을 구하게 됩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를 세우셔서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가?
우리 마음속에 복음을 간직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살라고 하신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가르쳐주는 대로 끝까지 행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2장 이후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5천명이 회개하며 예수믿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인구가 8만명이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은 숫자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남자 가장만 헤아려도 5천명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해가 시작되자 그들이 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사라져버렀습니다. 
옛날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복음을 듣고 행동으로 취하지 않으면 옛사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복음의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를 붙들고 성경공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지금도 스스로 교회당에서 엎드려 기도합니다.
말씀을 듣고 삶의 자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체험하다보니 제가 가르치지 않아도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지금도 꾸준히 길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연약해서 쓰러지고 넘어지는 이유는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새벽묵상을 5-7분 여러분과 나누고 있습니다.
그 조회수가 1500회가 넘는 것이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라는 제목의 영상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넘어지지 않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살아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살면 복음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고 
살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고 
분명히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 분명히 체험할 수 있기에
우리는 견고하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제자들의 모습으로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자들은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그들 스스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다시 돌아오셨을 때 그들은 다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합니다.
오히려 더 강해집니다.
복음대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확신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삶을 경험하면서 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에게 삶을 보여줍니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대림절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절기입니다. 
주님께서는 물으실 겁니다.
너희는 무엇을 했느냐?

나사로를 바라보면서 너희는 무엇을 했느냐 책임을 물으십니다.

대림절기는 복음의 흔적을 지닌 자들에게는 다가오셔서 구원하시는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흔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가오는 심판의 날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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