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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5:1-9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 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1년 3월 7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마태복음 5:1-9
설교제목 :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설교실황
[마5:1-9]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와서 몸과 마음이 세워지는 일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백신접종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신접종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백신이 안정적이고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안심하시고 백신접종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이 시간을 지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조금만 더 절제하는 모습가운데 지내게 되면 우리가 소망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산상수훈의 일곱번째의 복,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1940년대에 미국의 대법관이 탄식하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법관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많은 소송건들이 생겨서 법관들이 쉴틈이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서
가정이 무너지며 교회가 무너지게 되어 이런 결과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신앙의 사람들이 말씀대로 살려고 했을 때에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 문제를 들고 기도하면서 교회안에서 서로 해결해나갔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면서 특별히 말씀을 상실해가면서
이제 세상은 날이 갈수록 교회안이 아닌 교회 밖에서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속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는 것이라는 탄식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우리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어두움을 초래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화평케 하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 첫번째는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기독교인을 보는 관점이 너무 냉혹하고 경멸하는 태도가 많은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복음을 증거해야 화평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수직과 수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직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화평입니다.
수평은 이웃과 나 사이의 화목, 화평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뜻이 오늘 이 땅에 이루어질 때 화평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진표 목사님이 고부에서 목회할 때 간증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작은 곳에서 목회하시면서 한 젊은 자매가 신앙적으로 매일 열심히 섬겼습니다.
새벽기도회 뿐 아니라 봉사하는 일들도 남들보다 더 앞서서 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자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갖다보니 그 자매에게 문제가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우편배달부인데 예수를 믿지 않았고 알콜중독자였습니다.
이틀이 멀다하고 바깥에서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와 부인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모습을 보다 못해서 그 남편을 찾아가서 왜 부인을 때리느냐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당신이 뭔데 남의 아내를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해서 목사님은 더 이상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집의 아들이 달려와서 우리 엄마가 죽었어요. 빨리 와 주세요 했습니다.
그 날도 남편이 술을 먹고 와서 목침으로 아내를 때려서 기절한 상태였습니다. 피를 많이 흘리면서..
쓰러진 그 자매를 업어 병원으로 옮겨서 목숨을 살렸지만
목사님은 그 남편에게 반드시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게 하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어느날 저녁에 가보니 그 남자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온순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남자가 식사를 하는 동안 옆에 지키고 있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교회에 데리고 가서 함께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 남자가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도망가려는 심산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남자가 도망가겠다 싶어서 그 화장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예배시간이 다가와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목사님이 화장실 앞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미치겠네 하고 화장실에서 30분 후에 나왔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 남자를 교회로 데리고 가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준비하였던 내용으로 설교하지 않고
그 남자를 향하여서 말씀을 전해야지 생각하면서 정말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인생은 한 번 뿐인데, 어떻게 허구언날 부인을 매질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마음을 다해서 설교를 했는데 그 남편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 사람이 무슨 변화가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예배를 마쳤는데
그 남편이 다가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새벽종을 치게 해 주십시요.
그가 정말 새벽마다 종을 치고,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편지를 배달하면서 천국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날 그 아내가 와서 우리집이 천국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남편은 나중에 신학교에 가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복음이 우리 가정안에, 우리 민족안에 스며들어야 우리가 산다라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상황이지만 민족과 가정이 살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복음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인생속에 스며들면 거기에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가정이 화목해지고 민족이 다시 생기를 얻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그 길에 세상의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사순절의 기간을 지나가면서
다시한번 복음의 말씀의 중요성을 알고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시면서까지 말씀하셨던 그 예수님의 뜻을 잘 기억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지체로 인생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둘째,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한번 금이 간 사이는 피차 용서하지 않고서는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골로새서 3:13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골3:13-14]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잘못한 쪽에서 먼저 용서를 빌어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
분명 잘못한 쪽에서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때 이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이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지만 내가 먼저 찾아가서 용서를 빌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놓쳐서는 안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용서라고 하는 것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와서 이렇게 여쭙습니다.
형제가 잘못했을 때에 몇번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번 하면 됩니까?
예수님은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해라.
신하가 왕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어느날 그 왕이 신하의 빚을 다 탕감해주었습니다.
탕감해 주었다는 것은 내 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라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누가 손해인가를 계산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습니까? 절대 못합니다.
결국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내가 희생할 때 가능합니다.
[골3:13-14]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랑을 더하라
용서라는 것은 막힌 담을 서로 허는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무너진 데에서 끝났습니까? 무너진 다음에 그 주변의 잔재들을 치워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했다고 이야기하지만 마음속에서 여러가지 앙금이 있습니다.
앙금, 상처.. 이 모든 것들을 치워야 합니다.
더 다가서서 그 사람에게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모습이 있어야 진정한 용서가 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예수님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을 넘어서서 뛰어난 인생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오늘 왜 우리가 이렇게 비참한 모습 가운데에서 있는지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내가 먼저 손내밀지 못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잘 생각하신다면,
죄인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 우리를 용서하신 예수님, 그리고 사랑을 더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십자가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화평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최선을 다하여서 깨어지지 않도록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인간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인간관계는 유리그릇과 같습니다. 조금만 충격이 가해지면 깨어지기 쉽습니다.
사람이 서로간의 우정의 관계를 돈독히 쌓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한순간에 서로 이해관계가 틀어져서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
람 관계를 쌓는데는 수십년이 걸리는데 무너지는데는 몇초면 됩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예민한지..
그러므로 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형제를 향해 라가라고 하고 무심코... 그리고 나서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려 하는데
그 던진말이 생각나면 제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빨리 가서 화해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받은 그 상처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어두움을 만들어내서 더 큰 화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빨리 가서
그의 마음을 다스려주고 돌아와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전에 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마5:22-26]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특별히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바윗덩이처럼 부딪혀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릴 것은 말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한 마디의 말입니다.
저는 갈로의’ 말없이 살아가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침묵속에 행동하는 것이 서로를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권유하고 싶습니다.
말이 우리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서 한 생명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에서 진정한 인간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평케 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화평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이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 일컬음을 받으시려먼 복음을 전하십시요. 용서하십시요. 우리가 가진 평화를 힘써 지키십시요.
가정안에서 서로 막힌 담을 허물기 시도하시고
직장에 돌아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교회 안에서도 우리가 서로 막힘 담을 안고 살아가는 지체들이 없는지 살펴보십시요.
여러분들이 이것들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여러분들이 먼저 가서 화해하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자녀의 간구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마음을 열고 하나님 안에서 용서하는 모습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여러분 모습 가운데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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