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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3년 8월 13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마태복음 7:1-6
설교제목 : 참된 믿음 4
[마7:1-6]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입추가 지나면서 이제 더위가 조금씩 물러가고 있습니다.
무더위를 핑계로 소홀히 했던 일들을 다시금 살피고 가지런히 정돈해야 할 시간입니다.
한번 생활의 리듬을 잃어버리면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이 진부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자고 깨고 먹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책이나 텔레비전을 보고
우리는 이러한 삶의 구성 속에서 무엇을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시간이 지나가다 보면 이제는 그러한 삶의 모습 가운데
주름과 흰머리카락만 늘어나면서 기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 생각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명령인데
되돌아보면 충실히 행하지 못했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제아무리 분주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면서 어리석은 이들이 되지 않는 그런 모습됨을 갖고 살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1,500명이 모이는 어느 모임에서 목사님이 청중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날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저는 마음을 열고 여러분에게 이야기합니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보십시요.”
그랬더니 앞에 있는 한 사람이 일어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들은 모순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겉과 속이 그리고 신앙과 삶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또 일어나서 이야기합니다.
“교회 목사들은 하나님 말씀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또 다시 뒷줄에 앉아 있는 청년 남자가 일어나서 이야기합니다.
“교회 안은 악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8개의 이야기가 그들의 입 속에서 나왔습니다.
그 때 조용히 목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말이 맞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는 모순된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목사들 가운데에는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통하여서 한 가지 느낀 것은.. 다 맞는데 여러분 중에도 한 사람도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뭐냐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 역시 산상수훈 이야기이지요.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왜 목사님은 삶의 이야기만 할까? 라고 의문을 갖는 모습도 있으면서 힘겨워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출애굽기를 묵상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고 그들이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인생 삶의 모습을 지닌 적이 없습니다.
계속 삶의 자리 가운데에서는 하나님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하면 또 지도자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들의 문제를 풀어갑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1세대들이 한 사람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걸어가는 삶이 없다면
여러분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말씀에 서 있다 할지라도 그건 허상에 불과합니다.
결국에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됩니까?
하나님을 이용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아닌 이용하는 사람들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을 통하여서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믿어라 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믿음의 자리 안에서 모든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그런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성경말씀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면 비판하지 말라.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가만히 놔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존 스토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검열과 같은 비판을 하지 말라”라고 해석을 합니다.
검열관 같다는 것은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가혹하게 판단한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그 사람이 완전히 인생 자리에세 무너져서 철저히 파괴되도록 가혹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검열관 같은 비판이라 함은 상대방에 대해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사삶들의 실수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서 흠집내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동기에 대해서 가능한 한 최악의 것을 가정하는 것입니다.
더 나쁜 것은 검열관 같은 태도로 임하게 될 때
가장 나쁜 것은 그가 다른 사람 위에 서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심판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교회 안에 머물고 있다는데
어떻게 교회가 제대로 그리스도를 품고 그리스도의 길을 있게 되겠느냐는 이야기를 던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4절, 5절에서 사도바울이 비난을 받을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전4:4-5]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사도바울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어떤 인간도 재판관이 될 자격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평가하거나 그들이 행하는 행동의 동기를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의 뜻을 가지고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가 보는 관점 속에서 내가 판단하는 생각 속에서 우리는 이야기하면서 많은 혼란을 드러내게 되는 일들이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검열관이 되는 것은 교만하게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일은 살인보다 위험한 일이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비방하는 일은 세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첫째는 자기를 죽이고
둘째는 자기의 비방하는 말을 듣는 이를 죽이고
셋째는 비방을 당하는 사람을 죽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2:1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롬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맹목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사람은 모든 이들을 관대하게 대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7:3-4]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결국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치라고 하는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정직하게 하라는 말이 참 중요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괘씸죄이고
치명적인 병도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가장 고약한 버릇이 착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기준인지 자기 스스로도 모릅니다.
그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보면서 상대방을 정죄하고 판단하지만
늘 자기 자신은 정당화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속성을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비유가 참 재미있습니다.
자기 눈에는 들보가 들어있는데 남의 눈의 티끌을 보고 빼라고 한다.
우리 문제가 뭡니까?
상대방은 상당히 과장해서 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모든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상대방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삶에서 일어나느 모든 일들은 “그럴 수 있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반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대방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자가 지신에게는 혹독하게 판단하면서 자기 자신을 깨우쳐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게 바로 발전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라고 이야기드릴 수 있습니다.
5절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마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자신의 들보를 뺀 자는 타인에 대해서 티를 빼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형제의 티를 보고 탓하는 사람은 자기의 들보를 빼지 못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여기서 외식이 무엇인지 말씀드린다면
외식은 겉으로는 친절하게 보이지만
왜냐하면 상대방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주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은 나는 너와 다른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모습입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그런 모습을 취하게 될 때 다른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외식. 즉 다른 사람을 비방하면서 실상은 자기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모습을 사람이 다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자기 눈속에 있는 들보를 빼기 전에 상대방을 탓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지 못했는데 어떻게 내가 정상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왜곡된 관점 속에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기 안에 있는 그릇된 들보를 먼저 빼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교휸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는 자기 눈에 있는 훨씬 큰 이물질을 제거하기 전에 상대방을 탓하지 말라.
여러분이 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하고 목회를 하면서 지나오면서
교우들을 비난하는 모습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저는 늘 하나님 앞에 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성찰하면서 제 자신의 그릇된 아픔과 고뇌 속에서 제 자신의 변화시켜 나가기에도 힘든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로마서 7장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말씀이 제 삶의 자리 가운데 얼마나 깊이 절 짓누르고 있었는지
내가 더 큰 죄인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형제 눈 속의 티를 빼라는 말.
항상 잘못된 비판은 상대방을 아프게 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40년의 세월 가운데 무수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분석해 보면
예수님의 이야기, 기도의 이야기 아닙니다.
90퍼센트는 거의 비난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사로운 것 가지고도 목사가 이렇게 저렇다.
물론 목사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했던 것이 뭐냐?
왜곡된 해석 속에서 수많은 일들을 비판할 때
저는 여러분들이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거기에 항거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침묵 속에 들어갔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변명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또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목회에 대한 좌절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 순간에 교회를 완전히 떠나야 겠다.
목사의 마음 속에 그런 것들이 자리잡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떠나자 떠나자.
저는 여러분들에게 늘 말하고 싶습니다.
상대방에게 진정한 조언을 해주려면
자기 자신을 먼저 바로잡고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하십시요.
중요한 것은 본문 6절 말씀입니다.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여기에서 진주는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개와 돼지는 부정한 이방인을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전체적인 주제가 사랑의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바로잡아 주라는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 난감합니다.
성경에 원수도 사랑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은 끝까지 참아준다고 배웠는데
이 말씀을 붙들고 참 많이 고민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완고한 이들에게 우리는 소망을 버려야 하는가?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격이 없는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비슷한 말씀이 마태복음 10:14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등장합니다.
[마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아무리 설명해도 아무리 권면해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아무리 깨우쳐 주어도 그가 뉘우치지 아니하면
그 이후의 모든 문제는 겸손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내려놓으라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지 말라 그런 말이 아니라
우리가 최선을 다하되 최선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맡기라는 겁니다.
기도하고 기다리라는 거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뜻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언제까지 인내하고 머물러야 할지
언제 포기하고 떠나야 할지 분별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이제 신앙의 길 가운데
특별히 고백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내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참된 믿음을 나타내는 여러분이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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