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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되리라, 요한복음 16:20-24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 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1년 3월 28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요한복음 16:20-24 설교제목 : 슬픔이 기쁨되리라 설교실황 http://dreamgod.iptime.org:9797/210328.mp3 [요16:20-24]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애틀란타 총기 사건의 범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성가대도 하고, 교회도 다닌 사람이었다 합니다. 사람을 존중할 수 없는 사람이 교회를 다닌다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애틀란타 참사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편견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편견없는 소통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편견없는 소통속에 살아가도록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1980년 3월에 프랑스 파리 부르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폐부종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는 고함을 지르고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치면서 모든 이들을 고통가운데 밀어넣었습니다. 그는 1980년 4월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사람 샤르트르가 광란의 몸부림속에서 죽어가자 신문들이 대서특필하면서 그의 죽음이 너무 참혹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죽음의 자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죽는 그 순간에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신문을 읽고 한 독자가 한 신문사에 기고했습니다. 왜 그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갔을까?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또 한 사람, 독일의 고백교회 신학자 본회퍼는 나치에 항거하다가 죽음을 맞게 됩니다. 간수가 왔을 때 그는 죽음이 왔구나 라고 생각하고, 감방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동지여러분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이 지으신 장막집을 향해 갈 것입니다. 훗날 우리 다시 그곳에서 만납시다 이러한 이야기를 남겨놓고 감방문을 나서는데 본웨퍼 목사의 얼굴에는 찬란한 빛과 평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돌아갈 본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 기쁨을 가르친 또 한 분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계신 예수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임박하게 되었다라는 것을 아시고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이별하게 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암시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죽으셔서 떠나가셨을 때 제자들이 크게 슬퍼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슬픔에서 벗어나서 기쁨가운데 서 있기를 원하신다는 그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요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죽음 속에서 슬퍼할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 너희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슬픔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슬픔속에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슬픔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고난 주간이 시작이 됩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슬픔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고난은 슬픔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시면서 내 영혼이 민망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스승이신 예수님의 고난은 슬픔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무엇보다도 제자들이 크게 슬퍼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근심이 극복되어 슬픔이 기쁨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16:20-22]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우리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당하고 있는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당하고 있는 슬픔속에는 하나님이 뜻하신 계획하신 뜻이 있다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고통의 이 슬픔은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는 것을 저는 압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사람이 슬픔을 겪으면서 내가 왜 이 아픔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힘듭니다. 이유를 안다면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아픔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비유가 출산하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여인이 출산이 다가오면 몹시 두려워하게 됩니다. 출산, 산고의 고통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아픔입니다. 때로는 자기 생명을 걸어야 하는 고통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그 아픔과 슬픔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이 슬픔을 지나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기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이 잔이 제발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신 것은 너무 아픔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 뜻대로... 아버지 뜻을 알고 계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로 하여금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슬픔을 당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것을 견뎌낼 것입니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겪는 슬픔속에는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고통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여러분들이 신뢰하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다는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역사가 여러분 인생 가운데 일어날 것을 확신합니다. 둘째, 슬픔은 하나님의 임재를 약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왜 우리는 슬퍼합니까? 저희 모친께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셨습니다. 무려 20년여동안 병상에 누워서 사셨습니다. 그 때 저의 마음속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데 크게 슬퍼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크게 슬퍼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죽음의 슬픔은 관계의 단절 때문입니다. 다시 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병상에서 고통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크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음앞에서 크게 슬퍼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슬픔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라. 이 말씀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말씀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내주는 것은 우리는 훗날 얼굴을 맞대고 다시 바라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자는 자들에 대해서 너희가 알기 원한다, 모르지 않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소망없는 다른 이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슬퍼하지 않기 위해 내가 이것을 전한다고 합니다. 너희가 다시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 남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훗날 다시 만납시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례식을 치르면서 우리 다시 만납시다라고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슬픔을 만날 때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슬픔의 이유를 반드시 설명해주지는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슬픔을 당할 때 우리의 자리가운데 다가오셔서 우리를 안아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본문에서 이어지는 요한복음 16:32을 보십시요 [요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죽음의 순간,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갑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셔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슬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바로 그 아픔의 순간들이 어떤 순간이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함께 하시는 순간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의 삶도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큰 아픔을 겪었을 때 바로 그 순간은 어떤 순간입니까? 그 순간은 우리가 그에게 다가가서 함께 해 주는 시간 아닙니까?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하여서 슬퍼할 때, 그 때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는 시간입니다. 고통중에 있을 때 눈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십시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다가오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결국 슬픔을 벗고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셋째, 슬픔은 하나님의 응답의 계기가 됩니다. 슬픔을 당할 때, 절망속에서 묻혀 있을 수도 있고, 슬픔을 통해 기도의 자리에 들어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만 날마다 기도하십니까? 슬픔을 당할 때 비로소 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리에 나아가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됩니다. 슬픔을 당해서 기도를 시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슬픔이라는 것은 우리 신앙의 우리 삶의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슬픔은 우리로 하여금 잃어버렸던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게 하고 바로 그 자리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의 신비를 우리에게 허락해주기 때문입니다. 기도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신 분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순간 우리는 인생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누리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기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체험하시는 경험을 하시고 그 가운데에서 기쁨을 누리시기 원합니다. 그런 경험이 신앙생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성어거스틴이 기도하다가 잠이 들게 됩니다. 꿈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네 소원이 뭐냐? 라고 물으십니다. 여러분들은 네 소원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어거스틴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바라는 것이 주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 같지요?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한 분을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 분의 세계를 통하여서 모든 것들을 다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고백합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 한 분을 제대로 소유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여전히 세상속에서 방황하면서 이것도 찾고 저것도 찾고 헤메이고 다닙니다. 세상의 고통이 주는 아픔의 자리에서 허덕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더 이상 방황하지 마시고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십시요. 하나님을 만나면 그 안에서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슬픔을 벗고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절기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을 위해 슬픔을 짊어지신 예수그리스도, 그 분 앞에 나아가서 슬픔을 내려놓고 기도하십시요. 그럴 때 여러분은 내게 다가오신 하나님을 꼭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막연하게 느꼈던 하나님의 존재를 이제 만남을 통하여서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소유한 하나님의 종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고난의 절기는 기도의 자리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지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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