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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산에 올라가라, 출애굽기 19:1~6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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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0월 8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출애굽기 19:1-6
설교제목 :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라
[출19:1-6]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시월이 접어들면서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한산면 선성리 갈대밭에는 지금 갈대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계절이 그렇게 무르익어 가는데도 우리들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늘 쫓겨 우리의 삶을 늘 충실하게 살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자아내게 됩니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사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매말라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갑자기 머리를 드는 순간 찾아오는 현기증처럼
문득 우리의 삶이 흔들리는 때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생명을 받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늘 안개 속에 더듬어 가는 것처럼 모호하기만 합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힘겹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파종자로 부름받았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척박한 이 세상 구석구석에 기쁨과 감사, 사랑과 정의, 평화와 일치의 씨앗을 심기 위해
몸을 일으키시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길 빌어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지 3개월만에 시내 광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시면
[출19:1-2]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출애굽한지 3개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적과 시련, 믿음과 시험을 거쳐서 이르게 된 곳이 바로 시내산이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니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르비딤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출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여러분! 참 신기한 것은 광야를 지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 성경 말씀 가운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노정대로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대로 길을 걸어갔는데 분명히 무슨 뜻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곳에서 이스라엘이 경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르비딤이 이르러 물이 없자 이들은 여지없이 목마르다고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출17: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참 이스라엘 민족은 대단한 민족입니다.
마라의 쓴 물, 엘림을 경험한 지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르비딤에 이르자 또 물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일강을 치셨던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을 치라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였더니 반석에서 물이 솟아 나와서 먹게 됩니다.
결국 그들의 불평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들이 수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기적을 행해 주시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 것을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경고는 버리심이 아니라 돌이켜, 혹은 신앙의 점검을 위해서 그들을 사건 속에서 다시 확인하고 계신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르비딤에서 하나님을 그들을 다시 보호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시는 그 모습을 나타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때 생각한 것이 뭐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한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들이 지켜야 할 규칙 그리고 율례, 십계명을 시내산에서 그들에게 주시게 됩니다.
광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재정비하기 위한 뜻을 가지고 그들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시내산은 완전히 돌로 된 산입니다. 2200미터나 되는 산입니다.
올라가기에는 무척 힘든 산입니다.
아마 모세시대에는 지금과는 달리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성지순례 가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버스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노약자들은 그 위에 낙타를 타고 또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밑에서부터 바위산을 올라간다는 것.
생각을 해 보십시요. 상당히 힘겨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산꼭대기에 모세의 기념교회 수도원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분명한 것은 못 올라갈 산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산을 오르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곳에 오르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뜻이 있습니다.
우리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우리 인생이 힘들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됨을
오늘 이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출19: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모세 입장에서 지난 3개월을 지나면서 하나님께 물어야 될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홍해, 마라와 엘림, 므리바, 아멜렉과의 싸움을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대로 이끌 수 없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내하면 앞으로 가야 할 길 가운데 그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중요한 시점에 하나님의 산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삶의 문제가 있어도 우리는 그 문제를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해볼 수 있는 일들을 다 해봅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행해 가는 우리의 삶은 힘들기만 합니다.
그리고 늘 반복적인 어려움을 우리는 겪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갔다는 것.
출애굽 여정 가운데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에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 인생에 중요한 시간.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줍니다.
하나님이 산,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출19:4-6]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오늘 보면 본문에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 말씀 속에서 뭘 느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말세에 때가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불법이 성행함으로 많은 사람이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랑이 자라나면 모든 불법이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 우상숭배를 하게 되고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도 무시하게 되고 폭력과 살인, 간음, 시기가 난무한..이 세상이 결국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가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부모는 그 자녀를 감당하기에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삶의 어려움보다는 사랑을 확인할 수 없기에
우리의 삶이 그토록 힘이 든 것입니다.
사랑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우리 삶은 모든 것을 그 사랑 안에서 딛고 일어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게 그거예요.
교회가 작고 교회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그것으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늘 성경가운데에서 되풀이해서 읽는 장이 로마서 8장입니다.
사랑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서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에 어떤 시련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예요.
가정을 이루고 가는 삶 가운데에는 반드시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족공동체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면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십계명과 율법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짐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의 언약이었구나 하는 것을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은 요한복은 14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그렇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5장 2절, 3절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요일5:2-3]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맞지 않습니가?
사랑하면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그를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면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것.
그것은 사실 그 다음 문제고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신앙의 질문은 하나님 사랑하는가
저는 여러분 마음 가운데 하나님 사랑하는 그 마음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을 여러분이 느낄 수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나도 독수리 날개로 나를 안아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습관화되어 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느끼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여 내 말을 지키면 너희는 이렇게 되리라
하나님께 언약을 맺고 계신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19:5-6]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의 언약은 부담을 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한다는 겁니다.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제사장이란 하나님을 대신해서 축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신 때가 생각나십니까?
창세기 12장 3절을 보니까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 축복을 하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이가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를 축북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그의 집에 들고 나는 이들이 복을 받게 된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언젠가 저에게 어떤 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의 말을 빌어서 이야기하면
자기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통로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은 늘 좋은 것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자신 있게 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십시요.
저 사람하고 함께 다니면 되는 일이 없어.
늘 고통스러운 일만 찾아와.
가능하면 저 사람과 다니지 말아야겠어
한다면 얼마나 큰 저주이겠습니까?
생의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을 여러분들이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게만 된다면
우리는 그 분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계획, 사랑, 축복, 수많은 것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롤렌드 헤인즈라는 흑인가수가 베를린에서 독창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무대에 섰을 때에 그 앞의 관중들이 다 백인들이었습니다.
헤인즈가 노래를 시작하려고 할 때 백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칩니다.
흑인의 노래는 듣기 싫다 검둥이는 물러가라.
욕실을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헤인즈도 그들에 맞서서 욕설을 내밷고 돌아서서 나오려고 할 때에
그의 앞에 환상이 보입니다.
빌라도 법정에 서 계신 예수님의 환상이 보입니다.
예수님 그 가운데도 침묵하고 계시며 묵묵히 회중을 바라보십니다.
그 모습을 그가 바라보면서 그는 뒤돌아서서 다시 회중 앞에 서서 무릎을 꿇고 10분 동안 하나님 앞에 조용히 기도합니다.
회중들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게 됩니다.
헤인즈의 눈에는 눈물이 흐릅니다.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면서 회중들은 태도가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깊이 감동을 받습니다.
청중을 뜨겁게 사로잡는 그런 독창회가 되었습니다.
노래가 끝날 때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녀 나왔습니다.
그것을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꼭 잊지 마십시요.
흑인 가수가 가졌던 하나님 앞에 선 그 십분 동안의 묵상이 그의 인생에 가장 극적인 하나님의 역사의 시간이었던 것을 꼭 간직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바라는 것은
오늘 성도 가운데에는 여러 문제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것은 문제를 갖고 허덕이는 그의 모습 아닙니다.
아무리 생에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가서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이 있다면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서는 모습이 없기에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지난 한주간도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신앙이 뭡니까?
신앙이 지식입니까?
신앙이 폼입니까?
신앙은 서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서는 겁니다.
부디 제가 갈망하는 것은
모세처럼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그런 한 사람.
기도 자리에 서 있는 한 사람이 꼭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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