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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습니까?, 마태복음 5:3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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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0월 29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마태복음 5:3
설교제목 : 당신은 어떻습니까? (김상현 권사)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안녕하십니까? 김상현 권사입니다.
목사님이 제게 말씀을 하셔서 제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한주동안 제가 무슨 말씀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까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목사님도 아마 설교를 준비하실 때 그런 마음일 것이라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침뉴스를 봤습니다.
가자지구에 공습으로 인해서 7천명의 팔레스타인이 죽었다는 뉴스가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왜 전쟁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미움과 증오와 저주로 가득찰 때에 이같은 살륙이 자행됩니다.
저는 유년시절에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의 한복판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또 청년 때는 베트남전쟁에 가서 싸웠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다 하는 것을 체험을 통해서 그간 일생동안 내 마음의 트라우마와 상처로 남아서 지금까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사를 할 때 ‘살롬’이라고 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인사할 때는 살롬하면서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미움과 증오로 가득해서 살상을 합니다.
우리는 인사를 할 때 ‘안녕하십니까?’ 라고 합니다.
안녕이라는 말은 평안하고 평안합니까? 라는 말입니다.
평안할 안, 평안할 녕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마음은 인사처럼 평안합니까?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마음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헛된 욕망으로 가득차서 그리스도와 이웃이 쉴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까?
혹 내 속에 근심 걱정으로 가득차서 그리스도와 이웃이 쉴 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요?
위로 받지 못한 슬픔이 내 속에 가시나무 숲을 이루고 있어서 내게 사람들이 다가설 수 없도록 우리는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는 메마른 가시 같아서 서로 부대끼며 울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조금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으면 외롭고 괴로워하면서 슬퍼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잠시 노래 하나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 노래를 잘 음미하시면서 말씀을 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노래 : 조성모의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왜 자꾸 내 속에 가득 뭔가를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축복이란 말을 참 많이 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축복합니다. 그렇게 말을 자주 하지요.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혹시 부자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또 큰 명예를 얻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이것들은 세상사람들의 욕망입니다.
여러분들이 “축복하노라” “축복합니다” 이렇게 말할 때 혹시 이런 것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마음이 가난해라. 천국의 복이 네가 있다.
마태복음 5장의 말씀입니다.
슬픔이 네게 있느냐?
위로받는 복이 네가 있다.
네가 온유하고 부드럽냐?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옳은 일을 하는데 목마른 자처럼 갈급하냐?
의를 배부르게 이루는 복이 네게 있다.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에 네게 있느냐?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불쌍히 여길 것이다.
마음이 깨끗해야 네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평화를 만들어라. 하나님이 내 아들이라 하실 것이다.
옳은 일에 박해받는 일을 두려워 말라.
천국은 그들의 것이다.
나로 인해 네가 욕먹고 협박받고 악한 말을 들어도 참고 오히려 기뻐해라.
하늘에서 큰 상을 받는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팔복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한번도 부자되거라. 큰 명예를 얻어라. 부디 성공해라. 건강해라. 이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가난해라. 슬퍼하냐. 온유하냐. 마음이 청결하냐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주님의 복이 우리 속에 거할 때는 우리의 마음이 천국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 그것을 좇아서 살 때는 우리 마음이 지옥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속에 있다.
누가복음17:21의 말씀입니다.
천국이 우리 속에 있듯이 천국은 지옥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은 평안이 넘치는 천국의 길을 걷고 있는지 고통스러운 지옥을 걷고 있는지 생각해보시면, “내가 천국을 갖고 있구나.” “내가 지옥에 머물고 있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지옥을 걷고 있느냐는 거죠.
아까 노래처럼 우리 안에 가득차 있는 거예요.
내 안에 너무 많은 그것이 무엇인지
탐욕, 욕망, 분노, 미움, 원수맺는 일
근심, 염려, 걱정 이런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옥입니다.
우리는 살아서 천국을 걷고 살아서 지옥을 걷습니다.
이 욕심, 탐욕을 버리면 마음이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탐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굉장히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탐욕을 버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아주 공평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모두가 24시간을 삽니다.
모두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잡니다.
아무리 부자도 하루에 3끼 이상 먹지 않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위장의 크기가 약 2리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어떤 명예가 있는 자나 높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병든 자나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공평합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욕심, 아까 말씀드린 그러한 욕망, 미움, 원수맺는 일, 근심, 걱정, 염려로 가득할 때 참 아름다운 세상, 주님이 만든 참 아름다운 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때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어디에 있을까요?
마귀는 외부에 있지 않아요.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보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며,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며 이렇게 되어 있는데, 원문을 보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며 temptation 그런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유혹에 빠진다는 것은 마귀에 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마귀가 돌을 떡으로 만들라 하는 시험을 하지요.
그 때에 주님은 말씀으로 이기시지요.
돌로 떡을 떼게 하라는 것은 물질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똑같이 주님이 받으셨던 시험을 오늘 우리도 똑같이 받고 있습니다.
첫째, 물질의 유혹을 받습니다.
돈을 사랑합니다. 돈의 노예가 됩니다.
하루종일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돈을 따라갑니다. 돈을 따라 지옥까지 가버리는 것이지요.
성경은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근원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주님은 시험에 이기셨는데 우리는 져버리는 것이지요.
두번째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 이렇게 유혹을 받죠.
명예죠.
우리는 명예를 얻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합니다.
명예를 얻으면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섬기라고 이야기합니다. 낮아지라고 이야기합니다.
높아지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낮아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명예를 얻으려고 뭄부림칠 때 우리는 지옥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옥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를 다 주겠다. 이런 시험을 받습니다.
권력에 대한 것이지요.
권력에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권력을 내가 쥐느냐, 어떻게 하면 군림하느냐
그렇죠. 그래서 좋은 학교를 가려고 하고, 무슨 뭔가 되려고 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여러가지 어려운 것은 권력있는 자의 횡포에 의해서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그들은 지옥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사탄의 미혹에 빠져서 유혹에 넘어가서 이 세가지 유혹에 다 져버린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이 이야기한 것을 따라갈 것이냐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씀을 좇아서 살 것이냐
그것은 그리스도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모든 분노하는 마음, 미움의 마음, 이런 것들을 다 없애 버려야 해요.
아까 노래에 있었든지 우리 속에 있는 가시들, 이 가시들은, 우리가 가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도 우리 속에 쉴 수도 없고 이웃들이 내 가족들이 내 안에서 쉴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 미움을 다 없애야 합니다.
그 길은 무조건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방법은 사랑이지요.
성경은 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노라. 서로 사랑하라.
사랑을 이야기하죠.
또 용서에 대해서도 일흔번씩 일곱번 용서하라.
한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이죠.
고린도전서를 보면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또 네가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만일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여러분에게 있다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사랑으로 채울 때에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살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시 한 편을 다시 읽어드리고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나의 집, 나의 하나님
김상현
나의 집, 나의 하나님
내가 눕고 뒹굴고 뛰노는 나의 집은 당신입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 안에서 당신을 잃고
내가 울 때 당신은 가만히 문을 닫아줍니다
내가 지닌 언의의 이빨은 너무 날카로워서
당신의 옷소매를 물고 마구 흔들 때
당신은 종일 끌러 다니며 고요히 침묵합니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은 내 귀에 대고 이르길
아들아, 네 코 끝에 호흡이 내가 네게 주는 양식이다
그 호흡을 만드느라 내가 침묵하였다
당신의 그 말씀을 듣고 내가 깊은 호흡을 하며
일용할 양식이 나의 집에 가득함을 감사합니다
나의 집, 나의 하나님.
이 시는 제 시입니다. 제가 쓴 시인데요.
여러분 손을 들어보세요.
코에다 한번 대 보세요.
숨을 깊게 들여 마시세요.
숨을 코로 수욱 뱉으세요.
이제 손 내리세요.
아들아, 네 코 끝에 호흡이 내가 네게 주는 양식이다
그 호흡을 만드느라 내가 침묵하였다
당신의 그 말씀을 듣고 내가 깊은 호흡을 하며
일용할 양식이 나의 집에 가득함을 감사합니다
제가 시를 이렇게 쎴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늘 기도할 때 간구할 때 뭔가를 한없이 채우려고 합니다.
뭘 주세요. 뭘 주세요.
우리는 타인을 봅니다.
그래서 상대적 빈곤 같은 것을 느껴요.
내가 뭔 20평에 살면서 굉장히 불편하지 않고 참 좋아요.
그런데 친구집에 갔더니 35평 사는 친구 있거든요.
내가 친구집에 가서 내가 빈곤하게 느낍니다.
내가 모닝자동차를 탔는데 친구는 BMW를 탔어요.
그 차를 보고 빈곤을 느껴요.
친구가 명품 핸드백을 들고 갑니다.
명품이 없는 내가 그걸 보고 빈곤을 느낍니다.
우리는 타인을 보면서 상대빈곤을 느끼고 굉장히 마음이 불편하지요.
그래서 타인을 보지 말고 나를 본다는 겁니다.
시에서 있듯이
우리는 주님께 뭘 달라고 하는데 주님은 침묵하십니다.
왜 침묵하시느냐?
내가 침묵하는 것은 네 코 끝에 호흡을 만드느라 침묵했다.
내가 살아있음에 호흡할 수 있음에 그것으로 감사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그래서 타인을 보면 내가 가난해 뵈고, 뒤쳐저 보이고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이제 타인을 보지 말고 나를 볼 때에
비로소 삶이 아름답고 감사하고 내가 대단한 존재로 스스로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나를 떠나 내게로 가자.
무슨 말이냐?
나를 떠나 내게로 가자.
탐욕과 욕심과 뭔가를 채우려고 하는 그런 나를 버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그 말씀이 내 속에 있는 그런 나로 돌아가자.
나를 떠나 내게로 가자.
이런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천국을 살아야 합니다.
지옥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천국을 사는 것. 마음이 평안하고
오늘 성경말씀처럼
심령이 가난할 때 천국이 내 속에 머문다. 천국이 나의 것이라는 거죠.
여러분들 심령이 가난해지십시요.
부디 가난해지십시요.
그래서 지금부터 천국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혹시 이 세상은 풀에 이슬 같고 안개 같고 잠시 지나가고
내가 빨리 죽어서 천국에 가야 되겠다.
그런 생각 혹시 하고 계십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살아있을 때
그건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이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살아 숨쉴 때 천국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부디 여러분 그런 천국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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