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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사랑, 출애굽기 33:3-5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3년 11월 12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출애굽기 33:3-5
설교제목 : 가슴 아픈 사랑
[출33:3-5]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4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이제 창조절기의 마지막 시간을 우리가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반추하면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야 할 시간입니다.
돌아보면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을 하나님의 품에 안으셨습니다.
그래서 힘겹지만 우리는 현실의 고난의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살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해결의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주님은 때로는 즉각적으로 응답하시지만 간접적으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그 기도를 거절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감사하고 또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서 주님을 찬양하고 살아갈 때에 우리는 세상을 이길 힘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기도와 찬양으로 나아가십시요.
반드시 기도와 찬양은 여러분들에게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면서 걸어오셨는데
이제는 동행을 거부하신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도 떠나시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오늘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너희와 더이상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동행을 거부하시겠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신다는 뜻일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지난 날의 약속을 철회하시는 것일까?
[출33: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오히려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동행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너희와 동행하다가 너희의 모습을 바라보면 내가 너희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고 진멸할까 멸망시킬까 염려하기 때문에 너희와 동행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냉정하게 보일지라도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겁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고민이 많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저와의 관계속에서 늘 자기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좀 더 냉정한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면 좌절합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여러분에게 냉정하게 이야기한다고 하여서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린 걸까? 아닙니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이지요.
꽃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꽃의 줄기를 일직선이 아닌 대각선으로 잘라야 합니다.
그러면 물을 흡수할 수 있는 면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병에 약한 꽃나무는 줄기를 대각선으로 자르고 거기를 불로 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물을 흡수하는 힘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병충해를 막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병든 꽃에 가위를 대지 않는다면 그 꽃은 금방 시들어버리고 주위에 있는 꽃들에게도 병을 옮기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노련한 정원사는 언제 꽃을 가위질해야 될까 그 시기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훈련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을 성숙한 인격체로 만들기 위해서 줄기를 자르는 아픔을 주십니다.
그것이 부족할 경우 불에 태우는 따끔한 고난도 주십니다.
여러분! 역경이라는 것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바다에 적당한 파도가 있을 때 윈드서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고난은 우리에게 필요한 아픔입니다.
고난이 두렵게 하는 사람에게 역경은 거대한 파도처럼 늘 두렵기만 느껴지게 됩니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겁니다.
지난 주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새로 오신 한분이 사업을 하다가 큰 낭패를 겪으셨습니다.
10억 이상의 재산을 다 날려버리셨습니다. 아마 망연자실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그걸 딛고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다는 것.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저 분이 당했던 고난이 저 사람을 강하게 만들었구나.
이제 앞으로 살아가면서 저 분을 세상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큰 힘을 이제 저 분은 얻게 되었구나는 것을 저는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패역하여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백성과 이제 하나님이 동행하다가는 그 인생을 하나님께서 치실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동행을 거부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까 봐 유예하시며 저의 인생을 또 다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면서 기다리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퍠역한 모습가운데 동행을 거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변화가 없으십니다.
분명한 것은 동행거부도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했기에 동행을 거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보야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진멸하기를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떤 백성이기에 하나님께서 동행을 거부하셨습니까?
[출33:3] ..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목이 곧다는 말은 흔히 동물에게 사용되는 언어입니다.
농부가 일을 시키려고 하는데 말을 잘 듣지 않는 소나 말 등에 쓰는 말입니다.
성경은 수없이 목이 곧은 교만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욥22:29]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목이 곧다는 말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충고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고깝게 듣는다는 겁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출애굽기 33:3이 기록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4장부터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막과 제사장에 관한 모든 규례를 받습니다.
출애굽기 31장부터는 안식일에 대한 규례를 받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규례의 말씀을 받는 그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그 순간,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밑에서 무슨 일을 행하고 있습니까?
[출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가진 금을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진멸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 백성을 치시려면 차리리 내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동행을 거부하십니다.
이들의 죄로 봐서는 반드시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심판을 유보하시며 그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들을 멸할 정도로 심각한 죄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판단, 자기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 교만한 모습 때문이 아닐까?
여러분! 이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이유가 뭡니까?
지도자인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에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말씀을 받고 있었는데 그 모세를 기다리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뭡니까?
신앙이라 함은 자기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는 겁니다.
신앙은 년수가 아닙니다.
얼마나 빨리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맞추느냐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다시 말해서 겸손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자기 뜻을 꺾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야고보서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지금까지 나의 나된 것은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길이 무엇인가 이루어졌을 때
자기가 잘나서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의대에서 자기가 최고라고 으시대는 의대생 두 명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한 환자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걸어오게 있습니다.
두 의대생이 저 사람에 대해 판단을 합니다.
한 의대생은 아 저 사람 관절염이다.
다른 의대생은 아 저 사람은 허리디스크다.
그 사람이 가까이 왔을 때 두 의대생에게 묻습니다.
화장실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의 틈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지식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라는 겁니다.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보고 웃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웃으십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제멋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내가 기다리지 아니하며 나아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가운데 길을 내시고 물을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완악한 백성
그들에게 따라오는 현상은 바로 불순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이 곧은 사람의 특징은 지시사항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왜 교만으로 나타납니까?
아주 간단한 일인데
신분과 지휘가 높아지만 높아질수록 누군가의 지시
하나님의 축복으로 높음을 받은 자들이
이제는 하나님을 무시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고요.
그것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하여서 그 영광을 받길 원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신앙적 물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면서 정말 존중하고 있느냐
아니면 조급해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무시하고 불의를 행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깨고 살아가는 여러분과 하나님은 동행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순간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나서 여러분들을 징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동행을 거부하며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것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진노하심을 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순종을 선택하지 않는 댓가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축복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정말 축복이 뭡니까?
동행을 거부하는 사랑에서 동행하는 사랑으로 바꾸어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게 진정한 축복이예요.
성경을 읽어보세요.
여러분이 어떤 삶과 어떤 길을 걸어가든지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길을 인도하신다면
사망도 어떤 것도 우리를 해할 수 없는 우리 삶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떠나있다는 것. 그것이 신앙적인 개념 속에서 보면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의 저주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을 하게 됩니다.
신앙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실 수도 있고 동행을 거부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출33:4]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심각하게 듣고 그들이 받아들이면서 회개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뉘우치는 순간 동행 거부에서 동행으로 바뀌는 모습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개가 이루어져야 하나님의 동행이 시작된다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업는 자비와 사랑을 지니신 분이시지만
절대 불의한 일과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것이 아주 분명한 하나님의 속성인 공의의 측면입니다.
공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징계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인생을 누가 막아주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신앙의 길을 걸어갈때
동행 거부가 아닌 동행의 축복이 여러분 가운데 임하기 원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성령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시기를 늘 요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들이 무너져야 합니다.
지난번 권사님께서 가시나무숲 비유를 통해서
내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기준, 내 판단, 내 생각이 너무 가득차 있기에
성령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 거할 공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비워야
그 자리 가운데 성령이 임하여서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되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향해 계획하신
그 목적지를 향하여서 갈 수 있게 됩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과 동행해 보십시요.
세상이 줄 없는 평안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두려움, 많은 근심이 있습니다.
불안과 초조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여러분이 여러분 마음 속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 속에 성령이 들어와서 여러분의 마음을 차지하면
그 때부터 불안과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교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의 마음 가운데 채워주시면
성령이 인도하시고 성령이 계획하신 교회공동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때 근심을 물리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나의 삶을 고집스럽게 만들어 왔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고백하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철저하게 자신을 비워가는 회개를 통하여서
동행하는 사랑, 그 사랑을 경험하는
그래서 하나님이 날마다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는
그러한 삶의 축복을 누리고 살아가실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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