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씨 뿌린 자의 시간, 시편 126:1-6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3년 11월 19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시편 126:1-6
설교제목 : 씨 뿌린 자의 시간
[시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는 매년 11월 셋째 주에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직접 땅에 파종을 하고 추수를 한다면 오늘의 감격이 더 좋을텐데
도시에서 허겁지겁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날이 사실은 생동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계절의 시간 속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 날들을 되새겨보면서 감사함으로 우리의 인생을 다시 한번 새롭게 정돈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저는 올해 우리에게 다가온 가을을 살갑게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가을숲 속에 들어가서 머물지도 못했고 억새 바닷 속을 거닐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럴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저는 작은 위병에 시달린 것이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참 고단하다고 중얼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가서 편안히 쉬고 싶어진다는 그런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까닭은 모든 일들이 잘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눈을 뜬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초청 속에서 그 기쁨을 나누고자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눈을 열어서 인생의 4계절의 모습을 통하여서
다시 한번 새롭게 여러분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모두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표적인 선물이 세 가지가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혼인과 안식일과 노동입니다.
모든 것이 다 소중하지만 그 중에 땀흘려 일할 수 있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저는 열중해서 일하는 것. 그것을 재밌어 합니다.
북한에 가면 능라도 경지장이 있습니다.
51경기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는 5월 1일이 노동절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사회가 많은 잘못된 오류를 가지고 있만
노동을 신성시하는 것은 우리가 배울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일을 천시하면서 편하고 수고를 덜하는 직업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모두 일확천금, 배금사상에 흠뻑 물들어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우리는 바라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분석해 보면
한탕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을 우리는 찾아볼수 있습니다.
‘기적같이’, ‘형통하게’, ‘불같이’, ‘소기나같이’
이것은 갑작스럽게 한탕주의에 젖어있는 표현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으라. 그것이 복되고 형통되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복’이라고 하는 말에 우리가 주목을 해야 하는데
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물론 인생이라는 것,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상경에도 분명히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수고하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수고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에 가장 복되게 지내는 것은 수고한 자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 그것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바로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감격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말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기쁨과 감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기쁨의 황홀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 문구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에게 이렇게 큰 기쁨을 주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70년 동안의 포로생활의 기나긴 고통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 5절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잘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시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거두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크기는 고통의 시간이 크면 클수록 더 커진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헛된 고통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고통일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한 나라의 왕자가 셋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임금은 그 세 왕자를 불러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밀 한 되씩을 주겠으니 군사 백 명을 먹이라.”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며칠 지난 뒤에 왕자 셋을 불렀습니다.
“그래 너는 한 되박으로 군사 백 명을 먹였느냐?”
그랬더니 그 때 첫째가 대답하기를 “그 밀 한 되박을 가지고는 군사 5명밖에 먹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둘째가 이야기합니다.
“저는 한 되박을 땅에 심었습니다. 그것이 자라나서 추수하게 되면 군사 100명을 먹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가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한 되박의 밀을 빵으로 구워서 밀가루 빵을 팔아서 이익을 남겨 100명의 군사를 먹었습니다.”
임금은 첫째에게 벌을 내립니다.
“너는 내가 이야기한 것을 행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왕궁의 청소를 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왜 임금이 첫째 왕자에게 청소하는 일을 시켰을까?
거기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 첫째 왕자는 수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장 편한대로 행동했다는 겁니다.
두 왕자는 임금의 명령을 따라서 이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거기에는 많은 수고와 고통이 따릅니다.
그래서 임금은 그들에게 상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고 어떤 것을 얻게 된다면 그건 도둑이라고 말 할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속에 나타난 오병이어의 기적도 수고의 모습 속에서 나타나는 기적이라고 이야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참 기쁨과 감사를 깨닫게 하려고 쉬운 길을 주신 게 아니라 어려운 고통의 시간, 70년의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능력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서 싸우게 하신 일도 우리는 출애굽 당시의 그 모습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제가 생각해 보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얻은 것은 결국 쉽게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쉽게 주면 그들은 하나님을 쉽게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눈물은 쉽게 흐르는 눈물이 아닙니다.
뼛속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눈물입니다.
구약 사사기를 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40년의 반복이 계속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켜 주시면 그들은 한동안 잘살아가다가 금방 또 타락하고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또 사사를 통해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것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사사기를 묵상하면서 고통가운데 부르짖는 우리에게 바로바로 구원하시는 것만이 은혜가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을 지나지 않으면 그렇게 절실하게 하나님을 찾지도 않을 것이며 조금만 틈이 생겨도 죄를 지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사회에 나와서 사실은 취업을 한다는 게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성악을 전공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선상에 있기에 여러 길을 찾아서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도전을 합니다.
때로는 연구소에 가서 잠시 있기도 했고, 때로는 방과후 교사로 도전해서 했고
그리고 YWCA에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고용하는 고용센터에 지금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통하여서 제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성전 속에 나와서 그 아이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모습,
“하나님 내 길을 열어주지 아니하시면 내 인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그런 과정을 통하여서 사실은 제가 열어주는 길을 쉽게 갈 수도 있지만 그 아이 스스로 그 모든 고난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지금 시집을 갔지만 이제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애는 어떤 상황, 어떤 자리에서도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구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특별히 제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늘 간직하면서 오늘도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시137: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바벨론 포로생활 가운데 그들이 주리지는 않았습니다.
먹을 건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지금은 노예 생활 가운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 가운데 그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오늘 1절 고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아무리 고통 중에 울부짖고 기도했을지라도
그들은 돌아오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무기력하고 강가에서 울고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힘으로 저 커다란 강대국 바벨론을 어찌할 수 없었기에
포로에서 돌아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그 감격, 그 고백을 여기에서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신앙적으로 이런 정의를 내릴 수가 있습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십시요.
겁내지 말고 뿌리십시요
라고 말입니다.
옛날 한 여인이 나일강변에서 악어에게 아이를 빼앗겼습니다.
여인은 악어에게 내 아이를 돌려달라고 했는데
그 때 악어는 그 여인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돌려주겠느냐 돌려주지 않겠느냐. 네가 맞추면 아이를 돌려주겠다.”
그런데 여인은 머뭇거리고 말을 못하는 사이에
그 악어가 그 아이를 삼켜버리고 맙니다.
그 때 나온 용어가 악어의 눈물이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가 아닌 거짓된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
이것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몸에는 3가지 액체가 있습니다.
땀과 피와 눈물이라고 합니다.
땀은 수고와 노력의 결과입니다.
피는 생명을 유지시켜 줍니다.
눈물은 슬픔, 고통 ,기쁨들을 표현하는 감정입니다.
눈물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고 순수한 모습을 마련해주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눈물에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사랑의 눈물이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갑작스런 사고와 질병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낼 때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실패의 눈물도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나 기쁨이 넘칠 때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시인 김승현님의 눈물이라는 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눈물
김승현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져······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이 시는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신앙으로 그 모든 것을 견디면서 쓴 시라고 합니다.
눈물은 흠도 티도 없는 가장 순결하고 값진 것으로서
오늘의 고통을 넘어서 신의 은총에 도달하는 것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자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2절입니다.
[시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그리고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어떤 빌딩이었습니까?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습니다.
그 높이가 무려 102층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 빌딩이 102층이 된 이유를 어려분은 아십니까?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의 숫자가 바로 102명이었습니다.
첫째 겨울 굶주림과 질병과 인디언의 습격으로 많은 이들이 죽고 44명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계속 흉년이 거듭되었습니다.
3년째 풍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추수를 앞두고 갑자기 벌레가 수없이 나타나서 곡식을 갈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벌레를 잡아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밤새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살아왔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그 다음날 어디에선가 수많은 새들이 하늘을 덮듯이 날아와서 벌레들을 다 잡아먹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노라.”
그 일로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추수감사예배를 풍성히 드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씨뿌린 자가 갖는 시간이라는 것.
이로부터
[시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추수의 원리와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정신이 후손에게 계속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의 수고가 축복이라는 것 잊지 마십시요.
또한 축복을 주신 이를 아는 것.
그것이 축복이라는 것.
그것도 잊지 마십시요.
저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서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