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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 창세기 19:29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3년 12월 3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창세기 19:29
설교제목 :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
[창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안식월 2차의 시간도 하나님의 은총과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주에 설교하신 김상현 권사님의 설교 결론 중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주신 밥입니다. 나도 밥이 되겠습니다 라는 그 말씀이
또 하나의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그 감격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느냐
예수님을 제현하고 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작은 예수로 산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을 이야기하셨습니까?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이란 타인을 위해서 죽어가는 사람, 희생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김상현 권사님의 고백.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자는 그런 외침이 오늘 여러분의 길이 되어서
여러분 때문에 세상 속에 절망하는 사람이 희망을
또 죽음 속에 시달리는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을 향하여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 여러분과 나누기 전에
저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은 누가 여러분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가
저는 목회하면서 한 때 여러분들이 저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회의 현장 속에서 때로는 교인들의 관계 안에서 아픔을 겪고 깨어지면서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깊은 어둠 속에 빠져서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런 고통 가운데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가 기도 중에 깨달은 것이 뭐냐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는 한계적인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실까 하는 그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신다면
내 인생은 결코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보면
성경 속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라는 말로 나와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실 때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여기서 ‘생각’이라고 하는 말의 영어단어는 ‘히드’라는 말로 쓰이고 있는데
우리 말로는 배려한다. 국어사전에는 보살펴 주려고 이리저리로 마음을 써준다 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한번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아브라함의 생애의 날 동안
그를 향하여서 하나님께서 마음을 써 주신다는 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하나님이 개입을 하신다는 뜻 가운데에서 아브라함을 적극적으로 도우심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음란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소돔과 고모라성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행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의논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아브라함의 혈육인 조카 롯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롯이 잘못된 판단으로 잘못된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심판을 받아야 할 그 자리에서 오히려 특혜를 얻는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의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 때문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심판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셨다는 것
왜냐하면 아브라함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의 혈육이 심판을 받아 고통가운데 있을 때 아브라함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시면서
그에게 오히려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에는 여러분 한 사람이 나와서 신앙의 길을 걷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신앙은 여러분 자신 만을 위해 걷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여러분의 믿음을 심고 살아갈 때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사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 속에 담아 살아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여러분들이 나홀로의 신앙의 길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오늘 하나님 앞에 서서 걸어가지만
나의 모습을 통하여서 내 가족 전체를 담아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나와 함께 하는 모든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에
하나님이 누굴 기억하사?
하나님 앞에 자기를 심고 살아가는 그 한 사람을 기억하사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뜻을
오늘 이 성경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생각하심은
누구에게나 임하는 축복은 아닙니다.
의가 된 사람의 삶의 임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라고 이야기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에게나 임합니다.
단지 시간과 장소의 문제일 뿐입니다.
혹시 소돔과 고모라에 죄악이 넘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는 것처럼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잘못된 죄악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두려운 마음가운데 계신 분이 있습니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려움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그 인생 속에 깨달음을 주시기 윈한 길을 열어 주신 은혜입니다.
바로 여러분! 그 마음 속에 이미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 3장 2절에서
[합3:2] 여호와여 …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심판과 진노 가운데
먼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셔서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라는 그런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신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임하지를 않습니다.
롯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고 롯에게 길을 열어주실 때에
롯이 소몸과 고모라 성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할 때에
그것이 나의 삶의 것이 되어서 내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 방법이 무엇입니가?
그것이 바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죄로부터 우리가 돌이킬 때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하나의 공식이 성립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늦지 않도록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용서가 이루어지면 하나나님의 사랑이 임하게 됩니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
마음이 상하도록 회개하는 심령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것.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품으십니까?
독을 품고 있는 사단을 품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잃었을지라도 마음을 돌이켜 돌아오는 탕자를 품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롯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신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기회를 주신다는 것
그건 은혜가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을 돌이켜야 된다는 겁니다.
인도 어느 지방에 노동을 싫어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늘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면서 생명을 유지합니다.
어느날 그 앞에 수도사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수도사에게 구걸을 합니다.
“저에게 양식을 좀 주십시요.”
그래서 수도사는 봉양을 받은 음식 중에 일부를 떼어서 그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아무리 손을 뻗쳐서 그 음식을 받으려 해도 손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입을 열어 수도사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조금전까지 나는 팔다리 중에서 다리만 움직일 수 없었을 뿐인데, 이제는 손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수도사는 그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살려고 몸부림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머지 않아 귀도 그리고 입도 마비가 되어서 당신은 죽게 될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왜냐하면 수족이란 필요한 사람에게 그 기능이 나타나는 것이지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거지는 수도사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수도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을 돌이키십시요. 그러면 수족도 움직이고 신체도 건강하게 되어 오랫동안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수도사에게 ”노동을 하겠습니다. 생명을 아끼지 않고 노동을 하겠습니다.” 라고 결심을 하고 일을 하고자 몸을 움직일 때에 몸이 풀리고 훌륭한 농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삶이란 돌이켜야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건져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아무런 일도 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읽어보면 실패한 사람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포기한 사람은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삶의 삶의 상황 가운데에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마십시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의 도우심을 입고자 힘써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촉망받는 18세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대장장이인 아버지 밑에서 이제 풀무질을 돕다가
그만 불똥이 손에 떨어져서 왼쪽 손에 마지막 손 마디마디를 다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좌절을 하게 됩니다.
“이제 끝났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왼손으로 바이올린을 잡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른손으로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오른손으로 바이올린의 선을 짚으며 바이올린 연주를 하겠노라고
그 때부터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렇게 계속 노력한 수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는 사우스컴퍼니심포니에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됩니다.
불운을 딛고 제기한 프랭크 반데르 마텐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을 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요.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제차 간곡히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간곡한 청원의 기도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통하여서
오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될까?
여러분, 다윗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시40:1-2]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
그 사람의 특징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울거나 울지 않거나 눈에는 항산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눈물이 고여 있기에 우리 눈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눈에 들어오는 먼저, 그리고 머리카락을 씻어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요.
꼭 눈물을 흘려야.. 눈물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눈을 감싸고 액체는 눈물샘에서 나옵니다.
이 물은 눈이 잘 움직이게 하는 윤활제로서 각막에 붙어있는 먼지와 머리카락 이 모든 것을 세척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힘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곧 눈이 멀게 될 것입니다.
눈물은 눈커풀 아래에 있는 작은 샘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눈물샘에서 너무 맣은 눈물이 흐르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눈물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또 다른 통로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게 바로 코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콧물을 흘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람이 우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죠.
양파를 썰 때 연기 같은 자극이 있을 때 눈물이 나옵니다.
또 강한 빛을 보거나 바람이 눈물샘을 자극할 때 눈물이 나옵니다.
눈꺼풀의 계속된 움직임은 눈물을 흐르게 합니다.
우리 몸은 매우 놀랍게 만들어져 있어서
감정을 갖게 될 때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슬픔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기뻐하거나 웃을 때에도 눈물이 고이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너무 슬퍼도 눈물이 쏟아져 빰에 고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는 것에 대해서 난처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눈물 앞에서 용기를 잃어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에 대하여 당연하게 생각을 합니다.
시편 56편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때때로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나는 잠자리에서 여러번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인은 자기가 흘리는 눈물을 하나님께서 병에 담아두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병에 담아두고 계시는구나.
여러분 기억하십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흘려서 기도한다는 것.
그것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려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눈물병에 담아두고 그것을 다 기억하신다는 겁니다.
제가 이번 2주간도 안식월 휴가를 보냈습니다.
늘 제마음 속에 여러분들은 어떤 모습이 일어났을까?
어떤 분은 제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설교하지 않으니까 참 편하셨죠?”
정말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제가 2주간을 쉰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삶의 자리 가운데 아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 가정들
다 마음 속에 다시 떠오르면서
그들을 마음 속에 품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2주간의 삶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하! 하나님도 그러하시겠구나.
지금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운데에서 고통하고 아파하는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을 향하여서 애원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계시겠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각하신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서 은혜로 개입하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꼭 기도하십니다.
기도를 잃어버리면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오늘 삶의 자리가 어떠하든지 간데
기도하며 눈물샘을 자극할 때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한 사람이 된다는 것!
꼭 잊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꼭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서 있는 여러분 한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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