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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야기, 요한복음 3:16-18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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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2월 25일 오전 11시 성탄절예배
성경본문 : 요한복음 3:16-18
설교제목 : 크리스마스 이야기
[요3:16-18]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성탄절은 역시 주일학교 아이들이 발표를 할 때 가장 즐거운 표정을 짓고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성탄절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남편에 이끌려서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부인이 불평을 합니다.
“나는 아무래도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남편이 아내에게 설명을 하여도 아내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집에 다가왔을 때 문 앞에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데
참새들이 눈이 왔기에 양식을 구하지 못해서 비틀비틀거리면서 먹이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이 그 광경을 보면서 집에 들어가서 새들에게 줄 양식을 갖고 나와서 뿌려주면서
“새들아 이걸 먹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새들은 먹지 않고 그 순간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때 남편은 소리칩니다.
“너희가 이걸 먹지 않으면 너희는 가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 빨리 다가와 먹으라고.”
그런데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리가 없습니다.
그 때 남편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외쳐도 너희가 알아듣지 못하니 차라리 내가 새가 되었더라면 너희가 내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그 때 그 부인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아무리 외치고 부르짖고 이야기를 하여도
사람이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인간의 몸으로 와서 전달할 수밖에 없구나”라고.
그것이 바로 성탄절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무슨 말입니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빼놓고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크리스마스는 아무리 외쳐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인간이 되어서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몸으로 오신 날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상대방이 느끼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치킨스 스토리라는 책을 보신 분이 있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일리 제임스라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자녀들을 위해서 평생 헌신하며 희생하면서 살아왔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치매 환자가 머무는 메디컬센터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시간이 날 때마다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엄마” 하는데, 엄마는 ”누구입니까?” 라고 하면서 전혀 알아보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자식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래서 넬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한 번만 우리 엄마가 나를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런데 병세가 점점 악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코마, 무의식 상태 속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생명이 다한 것 같다는 전갈을 받고 식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두리번 두리번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하! 알아보시는구나.’
그래서 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머니를 탁 껴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그 아들의 손등을 세 번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아이러브유 사랑표현을 언어로 한 게 아니라
손을 두드리는 걸로, 두 번 두드리면 사랑한다,
좀 더 깊은 사랑을 표현할 때에는 세 번 손등을 두드렸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어머니의 손등을 또 다시 세 번 두드립니다.
그 때 어머니가 눈물을 왈콱 쏟으면서 환한 웃음을 짓다가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받은 자가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느낀 게 있습니다.
000감독님과 그 동료들이 예배를 참석했을 때
그때에는 김00 선생님처럼 부부간에 앉았어요.
어제 보니까 이제는 남자들끼리 모이고 여자들끼리 앉아서
교회 생활을 오래 하다가는 부부생활 갈라놓겠다는 생각이 제 마음 속에 들었습니다.
아내 000 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적이 언제입니까?
오래됐대요.
살아가면서 사랑이라는 그 의미를 주고 받지 못하면 인생은 아득한 겁니다. 까마득한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의지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주는 사랑이고 조건없는 사랑이고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면서 가장 감격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몸을 주셨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누구도 줄 수 없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사랑에 대한 말씀이 참 많지만 그 중에 몇 구절을 보겠습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날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사랑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스스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포기하는 때도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습니다.
남자가 어느 날 군대에 갔는데, 월남으로 파병이 되었습니다.
전투 현장에 나가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깁니다.
그래도 돌아가서 내 여인과 결혼할 꿈을 꾸면서 참고 견디면서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폭탄이 떨어져서 그만 그 사람이 두 팔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는 고민에 사로잡힙니다.
‘두 팔을 잃은 불구의 몸으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내가 짐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자기가 전쟁에서 죽었다는 전사통보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귀국해서 조용히 숨어 삽니다.
그러면서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어느 날 그 여인이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그리고 하도 궁금해서 그의 집을 가까이 가서 그 집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월남전에서 두 팔만이 아니라 두 다리를 잃어버린 사람과 결혼해서 그를 돌보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전쟁에서 두 팔을 잃고 전사했다는..
그 사랑을 잊지 못해서 그를 위한 마음으로 그 사람과 결혼해서 그를 돌봐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여인은 양 팔을 잃어버리고 죽은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그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두 다리마저 잃어버린 사람과 결혼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남자는 생각이 달랐던 것입니다.
두 팔을 잃어버렸으니까 그 여인이 나를 이제 미워할 수도 있다고 자기적 관점에서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 여인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남자는 그것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일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이미 그 사람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사랑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은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가 쓴 ‘양치는 언덕’이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나오미라고 하는 목사의 딸이 로오이치라고 하는 바람둥이 남자와 짝이 되어서
결국 부모를 버리고 그들이 떠나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바람둥이와의 결혼생활이 평탄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남편 로오이치의 삶이 너무 방탕했기 때문에 결국 나오미는 친정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로오이치라는 사람이 폐병에 걸려서 아내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나오미는 그 남자를 거절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목사가 “아니다. 그를 받아주어라” 라고 설득함으로써 나오미는 그를 받아주게 되었습니다.
로오이치는 처갓집의 순수한 사람, 그들의 청결한 삶, 그들의 모습에 감명받아서 결국 회심을 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 가정에서 요양생활을 하면서 다락방에 올라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내 아내에게 크리스마스날 선물로 주려고 그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때까지는 공개할 수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전에 방탕한 생활 가운데 만났던 한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한 번만 만나달라고. 그래서 나갑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이 간청을 합니다. 술을 권하면서 오늘 하루만 나하고 같이 자고 가 달라고.
그러나 로오이치는 그 유혹을 거절합니다.
그 때 그 여인이 술에 수면제를 타고 이제 로오이치에게 “이 술 한 잔만 받아준다면 나는 더이상 당신에게 요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해서 로오이치는 그 술잔을 받아 마십니다.
로오이치는 수면제에 취해서 몽롱한 상태이지만
어떻게든지 집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추운 겨울날 그가 길을 걸어오다가 그만 쓰러져서 길거리에서 얼어죽고 말았습니다.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나오미가 그의 화방에 들어가서 천을 걷었을 때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한 청년이 이제 두 손으로 붙들고 있는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피가 그 손등에 뚝뚝 떨어지고 있는 장면이 거기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바로 로오이치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의 감동, 저는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로오이치는 깨끗하다. 로오이치는 아름답다. 로오이치는 구원받았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언어가 아닌 자기 몸으로 십자가에서 사랑을 나타내심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또 우리에게 너희는 그 사랑을 세상에 나가서 보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의 사랑장 고린도전서 13장 1절 말씀입니다.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랑이 없는 그 어떤 위대한 일과 선행도 결국은 울리는 꽹과리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가지 이야기 가운데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남부러울 데가 없는 것 같은 이 여자에게 큰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여자에게 모나리자처럼 눈썹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항상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지만
마음이 늘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남자도 이 여자를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어서 결국은 둘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결혼한 이후에도 눈썹 때문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자기의 비밀을 지키면서 행여나 들키면 어쩌나
그래서 자기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따뜻한 남편의 눈길이 경멸의 눈초리로 바뀌는 것.
정말 내 인생에 상상할 수 없다고 그는 마음 속에 두려움을 갖고 늘 긴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어느날 그 남편의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상승일로로 달리던 남편의 사업이 망하게 되는 순간
그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어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을 했습니다.
다시 시작한 사업이 뭐냐? 연탄배달이었습니다.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면서 열심히 연탄배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봄날 바람이 살랑살랑 언덕에서 불어옵니다.
결국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연탄재가 날려서 아내의 얼굴이 연탄재에 새까맣게 뒤덮히고
그 연탄재로 인해서 눈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자기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가던 길을 멈추고
손수건을 꺼내서 부인의 눈물 뿐만 아니라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썹은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고
다른 부분들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웃으면서 다시 손수레를 끌고 갔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3절 말씀
우리 다함께 찾아서 읽음으로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 말씀 가슴에 새기면서 성탄절에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여러분의 몸으로 여러분의 거하시는 삶의 자리 가운데 나타내시는 그런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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