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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7 주일 2부예배- 참된 예배자**

참된 예배자, 시편 4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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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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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4년 1월 7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시편 42:1, 11
설교제목 : 참된 예배자 

[시42:1, 11]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새해 첫 주일 아침 하나님의 사랑와 은총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를 넘어서서 모든 이들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성탄절로부터 열이틀째 되는 날, 이 날을 교회력에 의하면 주현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금년에는 1월 6일이 주현절입니다.
주현절[主顯節]이라는 절기가 여러분에게 낯설게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주(主)는 주인 주,
현(顯)은 나타날 현,
절(節)은 마디 절이라고 하는 이 단어들이 결합된 말입니다.

서방교회에서는 이날 동방박사들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경배를 드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날은 구원을 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세상 가운데 드러나는 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이 날을 기념하면서 캄캄한 밤 같은 우리 마음 속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예수님을 우리 마음으로 기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 찾아오는 예수님을 여러분들이 마음 속에 기리며
한 해의 시간을 시작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바랍니다.

영국을 방문하게 되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고 합니다.
그 곳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리딩스턴이라든지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든지 음악가, 건축가, 시인, 정치가 등 영국의 유명한 사람들의 무덤이 그 곳에 있고 비석들이 그 사원 안에 세워져 있습니다.
일종의 박물관이니까요.

그러나 웨스트민스턴 사원은 본래 그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이었습니다.

그러한 그 곳이 이제 영국왕이 취임식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인사들의 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국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서 그들이 박물관 안에 기념비를 세워놓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국의 역사를 알리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것은 뭐냐?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 곳에 가서 유명한 사람들의 묘지를 확인하고 그들을 만나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전이라는 것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의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의미를 잃어버린 그 곳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삶의 어느 자리에서든지 누구를 바라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을 가리켜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말하면서 다른 데 마음을 쏟고 있다면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예배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 둘러싸여 있는 여러가지 우상들의 자리에서
얼굴을 돌려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겠다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갈급했던 것들이 무엇입니까?
성공에 목말랐고 돈에 목말랐고 누군가의 인정에 목말라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최대의 관심을 그 곳에 쏟고 살아갔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우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 가운데에서 여러분의 인생은 결코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승진한다고 평안이 옵니까? 잠시 기쁨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인생은 또 목마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참된 삶의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게 되면 그곳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우리는 우리 삶에 만족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첫걸음이 뭐냐?
그것은 예배입니다.

찬양이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찬양하지 않는 거라고 누군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찬양의 반대말은 교만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가장 명백한 이유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갈급한 사슴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 모습 속에서 교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람이 갈급하면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습니다.
그 어떤 것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시냇물을 만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심정으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과 11절 말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오늘 저는 말씀을 묵상하며
1절의 예배자의 모습과 11절의 예배자의 모습이 겹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갈급할 수밖에 없는 그 심정이 뭘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심정,
그런 모습으로 그가 서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가?

여러분 죽음 앞에 서 보셨습니까?

저는 지난 날을 기억합니다.
죽음 앞에 선 예비역 장성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초조 가운데에서
예비역 장군이었던 그 분이 변동 시절에 그 작은 교회에 찾아와서
저에게 기도받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갈급한 사람은 자기 신분이나 어떤 것도 내세우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단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 만을 갈망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기도가운데 이제 끝나고 났을 때 얼굴에 평안함이 깃드는 것을 지금도 기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는 종종 예배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역할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멋진 찬양을 준비하고 멋진 카메라를 준비하고 철저하게 예배를 위해 콘티를 짜고 멋진 옷을 입고 나와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이런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갈급한 마음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요.
그렇다고 우리가 예배 나올 때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나와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마음을 여미는 심정으로  옷도 입고 자신의 모습도 살피고
그렇게 해야 되지요.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모든 준비가 있어도 여러분의 마음 속에 갈급함이 없다면 예배는 에배가 아니라는 겁니다.

예배는 우리의 재능이 아닌 그저 변함없는 갈급함입니다.

여러분! 사슴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얼마나 갈급합니까? 얼마나 간절합니까?

물이 아니면 죽음이라고 하는 것.
물을 찾으면 사는 것이고 물을 못 찾으면 죽는 것입니다.

얼마나 절박하고 갈급합니까?
그러니까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물을 찾을 때가지 그는 쉬지 않을 것입니다.
사방을 끝가지 물을 찾으러 찾아 다닐 것입니다.

저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느낀 게 아..
하나님을 저렇게 찾아야 되는구나.

저저가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갈급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죽음이다.
이런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야 된다는 겁니다.

시편기자의 마음으로 1절 말씀을 다시 한번 바라보십시요.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어느 집에 가난한 소년이 정원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집에서는 그 소년엔게 정원을 가꾸는 일을 맡깁니다.
그 소년은 매일 나와서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잔디를 깎으면서 정원을 깨끗하게 꾸며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그 정원에 변화를 주기 위해 생각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정원이 모든 이들이 보기에 아름답게 꾸며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주인이 그 소년을 불러 이야기했습니다.
“너는 월급 받고 사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그 때 그 소년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 마음에 간절한 소원은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정원을 꾸밀 수 있을까? 날마다 거기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졌을 때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소년이 바로 어떤 사람이냐?
세계적인 조각가 미켈란젤로입니다.

갈급함과 애절함이 없이는 우리는 우리 인생 가운데 우리가 가슴으로 찾는 그것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자가 된다는 것은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갈급한 영혼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번이 아닙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을 갖고 나아가서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고 그 안에서 위로와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삶. 이것이 진정한 에배자의 삶입니다.

오늘 말씀의 고백자인 다윗은 낙심과 불안의 심연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에게 배신을 당한 아버지. 생각해 보십시요.
그 사람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사람이 아닙니까?

아들에 쫓겨 목숨을 부지하려고 떠나가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길 가운데 그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을 찾아야 되겠다.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하여서 찬양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애절함을 가지고 하나님이 지금 내 인생 가운데 나타나지 아니하시면 나는 여기에서 끝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재하시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인 고백이나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순서에 따라 드리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목이 타 죽을 정도로 갈급한 사슴이 물을 냄새 맡고 정신없이 뛰어가 시냇물에 처박고 물을 마시는 심정. 그 갈급함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것. 이것이 예배입니다.

갈급함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주변을 돌아보거나 고려할 여유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함이란 그런 것입니다.
다른 것은 고려할 가치가 없습니다.

예배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배 가운데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애절하게 갈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자의 모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삶에 목말라 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 속에서 이 부정한 여인을 에수님이 왜 만났는지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삶은 갈급함 속에 있었습니다.
갈급함 속에 있는 이 여인을 예수님께서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그 갈급함 가운데 예수님을 만난 것은 생수를 얻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때 그 여인의 삶은 변화되기 시작했고
변화된 그의 삶은 그의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삶이 강박하여 매말랐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가 물을 길어왔던 양동이를 내려놓고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과거의 모든 것을 그대로 지닌 채 동네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갈급함을 해결해 주신 그분이 누군가의 갈급함도 해결해 주실 것이라 믿었기에
그 놀라운 소식을 마음 속에 감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실은 어떤 삶을 우리에게 줍니까?
살아하면서 느끼는 것이, 살아갈수록 우리는 자꾸 낙망한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내가 무력하다는 것.

그래서 삶을 살아가면서 주저앉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과거의 현재를 비교할 때마다 점점 내 모습이 초라해져가는 것을 느껴가면서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예외없이 똑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목마른 사람처럼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왜 나왔습니까?
그저 주일이 되면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한 종교인의 모습을 갖기 위해 나왔습니까?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예배에 나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저 여러분이 형식적으로 나와서 예배 드린다고 만나지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배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이 아니면 죽음이라고 애절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찾아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저 교회 나왔다, 그것으로 내가 무엇을 기대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오늘 현실에서 삶 가운데 낙심이 됩니까?
불안하기 때문에 잠을 설칩니까?
마음의 상처가 날마다 여러분에게 고통을 줍니까?

생각한다고 삶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애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애절한 마음으로 예배하십시요.
애절한 마음으로 찬양하십시요.
예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요.
애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십시요.

그것이 없이는 여러분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가도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참된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바닷가에 저녁 노을이 찾아들면서 어부들은 대개 바닷가 가까이 얕은 물가에 배를 댑니다.
하지만 바다의 풍랑이 일기 시작하면 
어부들은 다시 그 배를 풀어서 바다 한가운데 깊은 곳으로 가서 닻을 내리고 돌아옵니다.

그 때 여러분 태풍이 불어닥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선창가 가까이 매어 놓은 배가 다 파손이 되는데
깊은 바다 속에 매어 두었던 배는 전혀 상함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안식이라는 것은 예수님 마음 가운데 깊이 들어가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깊이 들어가시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기쁨 이 모든 것들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 속에 들어가면 여러분이 세상에 어떤 풍파가 임한다 할지라도 절대 인생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런 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11절 말씀 다시 한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2024년 이제 새롭게 시작합니다.

여러분! 애절한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보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십시요.
거기에 여러분 인생에 이제 갈등에서 벗어나서 끝이 된다는 것.
그것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기도자가 오늘 목회자를 위한 축복을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장로님의 그 기도를 들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 자신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제대로 하나님 만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기쁨을 가지고
날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저는 행복할 것입니다.

2024년 한해 그런 삶의 역사가 일어나는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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