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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눅 9:18-20, 개정)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아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런저런 궁색한 대답은 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대답은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질문이 어려우면 스스로 '나는 나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어 보면 어떨지요? 이것 역시 이런저런 대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설령 나 자신이 누구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것이 진정 나인가? 라고 다시 물으면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이렇게 자신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쭈어보면 어떨지요? 그것 역시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실까 하고 이것저것 추측해 볼 수 있지만, 나에게 깊이 와 닿는 진정한 대답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들은 사실 같은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누구이신지를 깨달으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나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를 알면 주님께서도 누구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으면 다른 두 가지 대답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안고 사는 이런 근원적인 물음은 어느 날 한순간 은총으로 깨달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화두처럼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물음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물음에 대한 온전한 대답을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 안에 해답이 있다.'라고 하듯, 이런 물음을 안고 사는 자체로 이미 우리 삶 깊은 곳에 그 답을 안고 살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를 두고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2)”라고 하셨지요. 우리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 온전히 드러나는 날,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복음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는 물음 속에 이미 하나님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금주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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