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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지 마라
(눅 9:49-50, 개정)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요한이 몹시 속이 상해 예수님께 돌아와서 아룁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 내고 병을 고치는 것은 제자들도 예수님께 권한과 능력을 받아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지도 않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 이름을 내세우며 마귀를 쫓아내고 있으니 속이 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에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했거나 어디선가 목격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마치 오랫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 예수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자기 병이 치유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처럼(마 테 9:21 참조), 그는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고도 마귀를 쫓아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이든, 이름이든 당신에 대한 믿음을 두고 행하는 선한 일에는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을 내어주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는 달리 "그들을 막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그릇은 작은 그릇을 담을 수 있어도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지,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것에 연연하면 본질적인 큰 뜻을 놓치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가 혼재해 있습니다. 배타적인 종교관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마저 작고 옹졸한 분으로 만듭니다. 예수님을 올바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외골수처럼 편협한 생각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큰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중심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금주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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