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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2 주일예배 - 믿음의 한계를 극복하라**

믿음의 한계를 극복하라, 창세기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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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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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3월 2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창세기 16:1-2
설교제목 : 믿음의 한계를 극복하라

[창16:1-2]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재의 주일을 앞둔 이번 주일을 주님의 산상 변모 주일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수난의 길을 떠나시기 전 주님은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 빛 가운데 머무시는 자신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후에 제자들이 맞이하게 될 긴 영혼의 밤을 밝히는 빛이었던 것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지금 역사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고 모두 각자 풍요로운 삶을 한껏 살아낼 수 있는 세상이 요원해 보이는 듯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을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심한 듯 보이는 하나님께 언제까지 그러실 것입니까? 하고 불평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언제까지 그럴꺼냐고 묻고 계십니다.
이제는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희망을 심는 작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서 참 어처구니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까? 그것은 사래의 월경이 끊어졌다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이었습니다.
사래의 나이가 들어 자연적 현상 가운데에서 월경이 끊어졌습니다.
이 순간, 사래의 마음속에 있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아기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믿음이 사래의 마음 속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싹을 틔우시고 계신 것을 살펴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라고 사래는 단정합니다.
그래서 자기 몸종인 하갈에게서 아이를 낳자 그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흔들립니다. 사래의 몸이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자신의 나이도 이제 85세가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빨리 몸종을 통해서라도 아이를 낳자고 하는 사래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하게 되었고 곧 하갈은 이스마엘을 임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가정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갈이 아기를 낳지 못한 사래를 멸시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브라함 부부 사이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게 되었고 하갈은 사래의 학대를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아브라함 부부의 흔들리는 모습을 봅니다.
아브라함 내외는 두려워하고 당황하고 조급해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믿음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래의 몸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믿음이 좋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조카 롯에게도 여유있게 대했습니다. 소돔땅에서 재물을 다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래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순간 그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이 든 것입니다.

14년이 지난 후 창세기 18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년에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래가 어이가 없다고 웃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창18:11-12]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이제는 아브라함마저도 아이를 낳게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한계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사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라가 임신이 가능해야 하나님께서 잉태해주실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참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믿음에 대해서 우리는 잘 파악을 못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믿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게 되면 갑자기 그 믿음이 무너지게 된다는 겁니다.
이제는 끝이야,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을 거야. 저 사람은 안돼.

하나님께서 못하실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머리로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식 속에서는 전혀 다른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능력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된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의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척장신 골리앗 앞에서 사울왕과 군사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골리앗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사울왕과 군사들의 믿음의 한계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하지만 눈에 보이는 큰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믿음의 한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내가 무엇을 하지 못하리오.
그래서 나가서 골리앗과 싸워서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고 하는 이 사람들이 그들은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 풀불무 속에 던져넣으려고 하는 느부갓넷살 앞에 담대하고 섭니다.

[단3:17-18]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어떻게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할 수 있었습니까? 저는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는 신앙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믿음의 한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아브라함과 사래를 불가능한 나이까지 데려가신 후에 아이를 주신다고 했을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태를 통해서 결국은 신약성서에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서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라는 하는 믿음의 예표를 삼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믿기에는 믿음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다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브라함은 그 과정을 지금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한계를 깨뜨려야 합니다.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믿음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이 진짜 믿음의 사람이고 또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동부에 유명한 성공 연구가인 지그지글러 박사는 벼룩 훈련법을 연구해 낸 사람입니다.
벼룩은 땅바닥에 놓으면 천장까지 뛸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벼룩을 병에 넣고 뚜껑을 덮습니다. 그 병속에서 벼룩은 뜁니다. 하지만 뚜껑에 부딪혀서 또 주저앉고 또 주저앉고 반복되다 보면, 아 나는 이 정도 밖에 뛸 수 없구나 하고 의식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 병뚜껑을 열어놓아도 천장까지 뛰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밖에 뛰지 않는다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즉 자기 스스로 난 이것 밖에 못해, 라고 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 밖에 못해 자기 스스로 의식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벼룩과 같이 우리 자신을 의식화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나는 돈이 없으니까 나는 배우지 못했으니까 나는 능력이 없으니까 나는 늙었으니까 못한다고 자기 스스로를 의식화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때로는 가능성을 비추어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 위치까지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아이, 목사님... 대부분 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뜻이라면 이제 마음에 간직하고 가보겠습니다. 그런 사람 거의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 스스로를 나는 이것 밖에 될 수 없어, 라고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목사님이 어떤 교회에 부흥집회를 약속했는데 그 교회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회 사무직원이 부흥회 주제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그리고 성경본문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성경 본문이 시편23편이고 그리고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직원은 전화기 속에서 제대로 듣지 못하고 목사님, 이번 주제가 뭐라고요? 목사님이 다시 이야기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런데 사무직원이 다시 묻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가 전부입니까?
그래서 묻자 목사님이 짜증을 내면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면 다 됐지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고 소리를 칩니다. 사무실 직원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부흥회에 가서 전단을 보니까 부흥회 주제가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면 다 됐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여러분, 믿음의 한계를 깨뜨린 말이 아닙니까?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면 다 됐지, 더 필요한 것이 뭐가 있느냐?, 라는 것.
신앙이란 여호와가 나의 목자라는 걸 느낄 수 있다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당대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욥이 당시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소와 나귀와 약대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까지 다 죽었습니다. 
그때 욥이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욥기 1장 21절입니다.  아주 유명한 말씀이기 때문에 여러분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욥1:21, 쉬운성경]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어머니 태에서 벌거벗은 채로 나왔으니, 벌거벗은 채로 그 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 여러분 어떻게 욥이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자식도 다 죽었는데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나까? 욥은 믿음의 한계를 두지 않았다는 것.
자녀들의 죽음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 뉴턴은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과학의 한계를 신앙으로 극복해 낸 인물입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고 기도를 통해서 용기를 얻었다고 그는 후에 기도생활에 대해서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가지고 있는 망원경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망원경을 옆에 놔두고 방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무릎을 꿇은 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러면 세상에 있는 어떤 망원경이나 기구로 볼 수 없는 것보다 더 가깝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고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믿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절대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그러기에 나는 순종하겠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두려워서 이 고백을 하지 못합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계산은 하나님이 하신다.

사람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때가 어느 때인지 그걸 하나님이 계산하신다는 겁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시편 55편 22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55:22, 쉬운성경] 여러분의 짐을 여호와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을 돌보실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로 의로운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내용이 뭐냐?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짐과 문제를 정말 하나님께 맡겼습니까?

많은 분들이 여전히 자기가 끌어안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수가 없어요. 맡겨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 현장 속에서 이걸 목사님께 맡기면 내가 이루어줄게.
그런데 박정순 권사님, 목사님이 그렇게 이야기해도 목사님께 부탁하고 맡깁니까?
안해요. 안합니다. 그러면서 끙끙 앓고 있어요.

우리가 잘못된 신앙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맡길 수가 있어?
그런데 그리스도는 우리의 짐을 담당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바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 일을 감당하라고 또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잘못 생각하고 하나님의 종은 저 높이 올려다 놓고 그저 잘 섬기기만 하면... 아니예요.
하나님의 종은 종 그대로 잖아요. 잘 부려먹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잘 부린다는 것이 뭡니까?  맡기는 거예요.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도 무슨 문제가 있으면 들고 와서 '목사님!' 하면서, 참 자신의 문제를 '이제 목사님 앞에 던집니다'하고 탁 먼저놓고 '난 모릅니다'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누가 고민합니까? 제가 고민해야 돼요. 제가 해결해야 돼요. 
그런데 해결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자신의 짐을 잘 맡기는 신앙이예요. 그게 믿음입니다.
그런 저도 간혹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목회선상 속에서 말기암 환자들을 대할 때가 제법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 한 때 불신이 싹이 틉니다. 내가 기도한다고 낫겠어?
물론 제가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데려가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도 말기암 환자는 못 고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건 불신입니다.

며칠 전에 박정순 권사님이 전화를 해 주셨습니다.
사실은 제가 심방 과정 속에서 전화를 드려야 되는데 또렷한 목소리로 목사님 하고 얼마나 반가운지.. 저분을 바라볼 때보다 느끼는 게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계산을 한다면 저분은 벌써 세상을 떠났어야 됩니다. 근데 아닙니다. 저분에게 무슨 하나님의 뜻하심과 이유가 있구나.
저는 우리 권사님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절대 믿음, 절대 순종은 고백하면서 고백한대로 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고백하는 자가, 저는 확신합니다. 그 고백 속에서 다시 서게 되고 결국 믿음 안에 서게 된다는 겁니다.

제가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이루시는 교회다.
사실 이것을 이야기할 때 맨 처음에는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다가 외쳤습니다.
근데 지금은 확신이 있습니다. 이 고백공동체를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 그걸 믿고 교회와 함께 걸어갑니다.

고백하십시요.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 것,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고백할 때에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믿음이 이제 싹이 트고 그래서 그 싹을 통하여서 믿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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