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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일시 : 2025년 4월 6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요한복음 10:11-15
설교제목 : 배워야 할 마음
설교실황 :
[요10:11-15]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4월의 주일 아침에 꽃들이 만개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예배당을 향하여 오면서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마치 자연 속에 핀 꽃들이 생명의 잔치를 벌이면서 봄의 정원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경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그것이 완성됩니다.
한 시인은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노래를 했습니다.
이 시인의 의미 속에서는 자연의 꽃들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중요한 것은 여러분보다 아름다울 수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것, 그걸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묵상을 해 보면서 강단에 이 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인간 속에 담겨져 있는 마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이 꽃들을 장식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당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여러분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이 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이 처소가 아름다운 것은 여러분이 오늘 이 예배 가운데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사순절 여정을 통하여서 묵상하고 앞날의 시간 가운데에도 이 예배의 처소 가운데 늘 여러분들이 참여해서 예배 처소를 통하여서 주어진 기쁨을 여러분이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삶이 되어 가기를 빌어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에 묵상하면서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와 상관없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왜 목숨을 버리셔야 했는가?, 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나는 선한 목자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랍비가 제자들을 데리고 시장에 갔습니다.
여러가지 물건을 파는 사람들로 인해서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랍비는 이렇게 외칩니다.
이 곳 가운데 영원한 생명을 얻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 잘 보거라.
제자들이 랍비와 더불어 시장을 걸어다닙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람들을 바라보아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스승에게 이야기합니다. 저기 약을 파는 저 사람입니까? 저 사람은 약을 통해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책을 펴놓고 파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입니까? 저 사람은 우리에게 지식을 전달해주지 않습니까?
아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허름한 옷을 입고 지나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스승이 바로 저 사람들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들을 쫓아가서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팝니까, 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우리는 아무 것도 팔지 않습니다.
그럼 뭣하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이 시장통에서 놀이를 하는 광대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은 보잘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쓸쓸한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화평을 가져다 주는 그 광대들의 바로 그 모습이 그들이 비록 비천할지라도 외롭고 쓸쓸한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그들을 위로하는 생명의 힘을 주는 그들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일컫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삶의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목자와 대비하여서 삯꾼이 대해 말을 합니다.
[요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여러분, 삯꾼 특징이 뭡니까?
삯꾼은 절대 자기가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양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순간에 오히려 목숨을 잃을까 도망을 갑니다.
선한 목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참 모습을 드러냅니다.
위기의 순간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때 드러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가 선한 목자인가 삯꾼인가를 분별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특별히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랑을 찬양하고 사랑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요.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랑에 여러분들이 진심을 담고 있느냐는 겁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모든 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예수님께 배우는 두 가지 마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온유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서 꼭 예수님께로부터 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온유한 마음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온유한 성품에 대해 많은 정의가 있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하는 온유한 모습은 뭐냐? 양을 헤아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볼 때 언제나 뜨거운 눈물과 그리고 그를 향한 늘 연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이나 원칙도 중요하지만 영혼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서 위로하셨습니다.
수가의 여인을 만나셨고 삭개오를 만나주셨고 간음하다가 현장에 붙잡힌 여인을 만나서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목회하면서 목회자로서의 가장 어려운 것이 뭐냐, 나의 기준의 원칙 그것이 아니라 정말 교인을 헤아리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는가,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한때 목회자들 가운데 신장을 기증하는 일이 많았던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도 제 선배목사님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신장을 기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봤습니다.
교인들이 결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나의 몸과 나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성경말씀을 통하여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를 믿는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라는 것.
여러분, 사랑 이야기하는데 여러분에게 그런 마음이 있습니까?
누가복음 10장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다른 각도로 보아야 하는 것은 만난 자를 돌보지 않고 지나간 제사장, 레위인이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온유한 마음,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 사실은 그런 일들이 자기가 지금 행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일 중심적인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워지겠습니까?
온유한 마음이라는 것, 다른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눈으로 이 공동체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바라보고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그런 마음이 여러분 안에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두번째로 엄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누구나 온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온유함이라는 이것이 때로는 방관이라는 얼굴로 나타날 때 우리 인생이 매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갑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23편에 다윗의 그의 삶에서 여호와의 목자되심을 찬양했는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서 지팡이와 막대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삶의 방향을 지시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 그 지팡이로 걸어서 우리의 발을 걸어서 넘어뜨린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를 질책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무섭게 질책하시기도 하신다는 것.
왜냐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온유라는 이름 가운데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다운 것이 아닙니다.
온유하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분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에 대해서 채찍을 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잘못된 삶에서 자신을 돌이키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건 분노가 아닙니다. 엄격한 사랑입니다.
그들의 영혼을 바라보며 참을 수 없는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마음 중에 하나가 엄격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삯꾼은 절대로 흉내낼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나쁜 평판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소리, 그것이 바로 그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프랑스의 한 고아원에 악한 아이들을 감화하는 실적이 가장 높은 고아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아원에는 특이한 규칙 하나가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잘못했을 때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 벌받는 것을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도록 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들이 한 순간에 싸움을 하다가 칼을 들고 한 아이를 찔렀습니다. 팔에 큰 상처가 났습니다.
그때 고아원 원장이 아이들을 불러서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아이들이 결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이 아이를 한 조용한 방 안에 일주일 동안 혼자 머물도록 결정을 하고 오직 한 사람만 그 방을 드나들며 양식을 공급해 주도록 결정을 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원장이 다시 아이들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아이의 남은 시간 대신 벌을 받아줄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칼에 찔린 아이가 내가 하겠습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고아원 전체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화되어서 새로운 인생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 엄한 사랑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남편을 내가 조금만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말했더라면
잘못된 친구, 그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정직하게 말했더라면
나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실상의 삶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며 엄하게 정직하게 말했더라면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엄한 사랑이 결코 영혼에 대한 둔감함, 영혼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엄한 사람 때문에 관계가 깨어지는 아픔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잠시의 평화를 위해서 잘못된 것을 교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큰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아름다운 마음 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다는 그 사랑 말입니다.
이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목회자로서 다짐해 봅니다.
여러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고통받는 삶의 자리 가운데 있다면
나는 어느 자리에 있든지 여러분을 향하여 갈 것입니다.
내가 비록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할지라도
함께 울며 함께 아파하면서 함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온유한 그리스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참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채찍을 드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알면 산다라는 것이 얼마나....그런데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가볍게 이야기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여러분이 마음에 되새기면서 사순절 기간 그리스도의 의미를 남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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