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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5년 6월 22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스바냐 3:17
설교제목 : 잠잠히 사랑하시는 분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교회가 저에게 허락해서 12일 여정으로 쉼을 가졌습니다.
쉼의 시간 속에서 목회로서 살아온 41년의 세월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복음의 본질에 충실한 목회를 했는가?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왔는가?
묻고 또 물으며 제가 주어진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또 시간의 근원을 고민했던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갈릴리의 복음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쇄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의 시간 속에 주님과 주님의 자녀인 여러분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기를 빌며
쉼의 여정을 마치게 됨을 하나님 그리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네덜란드는 여러모로 사람의 관심을 끄는 나라입니다.
풍차, 튤립 그리고 암스테르담과 같은 유명한 도시의 유람 등
네덜란드 여행에 빠지지 않는 정기 코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프랭크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그 관광은 모두 헛것이라 합니다.
삼층으로 된 그 집 꼭대기에 올라가면 책장이 있는데
그것을 살짝 옆으로 밀면 비밀 통로가 나타납니다.
그 통로 아래로 조그마한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은 게슈타포를 피해서
유대인 가족이 숨어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13살의 어린 소녀 안네는 일기를 썼습니다.
안네의 일기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의 세계가 어둠의 세력으로 점점 포위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공포와 죽음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공포와 학살과 죽음과 전쟁의 건너편에
우리를 향하여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빛을 바라본다.
우리는 이 하나님 나라가 바로 평화의 원인이다.
우리는 이 희망 때문에 작은 공간 속에서도 천국을 경험한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공포와 어둠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그 좁은 공간 속에서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라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소망이 없어서 맥을 놓고 체념한 채 하염없이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신뢰를 놓지 않고 끊임없이 소망 가운데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알면서 잊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신뢰한다는 것은 즉 기다린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어쩌면 성경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구절 가운데 하나가 오늘 본문인 것 같습니다.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의 뜻을 한번 상상 속에서 그려보면서 묵상해 보십시오.
사실 절망적인 순간인데 여호와가 우리 가운데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는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의 사랑이 지금 동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가운데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갑자기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 가슴 속에서부터 기쁨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고
그 순간 자연스럽게 즐거이 부르는 찬송이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서 불려지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미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누린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닙니까?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한 단어를 택하라면 '잠잠히'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잠잠히 바라보시는 하나님.
우리도 잠잠히 바라보아야 하지 않는가, 라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 가운데 가장 힘든 게 뭐냐?
저는 원래 숫기가 없고 내성적이라 표현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생각하기를
목사님은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라는 것.
목사님이 정말 나를 위해 기도할까,
그래서 목회가 참 힘들 때가 많습니다.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12일의 여정 가운데 교회를 떠나서 쉼을 갖는다, 라고 했지만
12일의 여정 가운데에서 한 순간도 여러분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강희숙 권사님이 용인에서 내려오셨을까?
서은숙 집사의 모친은 어떻게 됐을까?
내가 있을 때 주일날 우리 김옥례 권사님이 보이지 않았는데 권사님은 안녕하신가?
박종순 권사님은 건강을 유지하고 계실까?
김경자 성도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건강을 회복했을까?
김대중 성도는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그 시험이 어떻게 될까?
하루하루를 지나면서 매일 떠올립니다.
거기에서 느낀 것이 아~. 나는 나에게 허락한 성도들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구나, 라는 것.
그런 마음 속에서 생각하기를, 사실 쉼을 갖는다고 떠나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여러분 안에 그냥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의 이러한 마음을 성도들이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너는 내 마음을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성경에서는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이 자기의 육체의 질병을 놓고 기도를 드렸으나 응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은 목적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죠.
마침내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고난의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에 바울이 건강마저도 유지했다면 사실 그가 사역의 현장 속에서 이루지 못하는 일들이 없는데 얼마나 교만했을까?, 라는 것.
그래서 고난을 통하여서 자기의 약함을 알고 겸손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임할 때 우리는 고난 속에 묻혀있으면 안 됩니다.
고난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서양의 속담에 세계는 인내하는 자의 것이다,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마친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가 있었습니다.
토끼는 혼자 속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도 토끼가 거북이를 사랑하는 줄을 몰랐고
거북이도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토끼에게는 한 가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북이가 느린 걸음 때문에 너무 자기 자신을 자학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끼는 거북이의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거북이에게 말을 합니다.
거북아, 나랑 달리기를 해 보지 않을래?
그날 따라 거북이는 투지가 생겼습니다.
질 때 지더라도 토끼와 같이 달려봐야지, 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 한번 붙어보자.
그래서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토끼는 저만치 앞서 갑니다.
그러면서 뒤따라 오는 거북이를 생각합니다.
포기하면 어떻하지? 중간쯤 가서 기다려주자.
그런데 눈을 뜨고 거북이를 기다린다면 오히려 거북이가 자존심이 상할까봐 토끼는 누워서 자는 척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북이가 가까이 왔을 때 자기를 깨워주면서 같이 나란히 올라가자는 생각 속에 그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자기 옆을 지나면서도 자기를 깨우지 않았습니다.
자는 척하던 토끼는 눈물을 흘립니다. 결국 거북이가 이기게 되었습니다.
경주 후에 동네 동물 식구들과 후세의 사람들이 거북이는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들었고 토끼는 교만하고 경솔하다는 욕을 먹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그 모든 비난을 감수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거북이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잠잠히 사랑하는 그 사랑, 그래서 혼자 눈물 짓는 그 사랑이 훨씬 위대해 보이지 않습니까?
40년 동안 종교생활을 하면서 자기 중심적이고 신앙의 감각이 없어서 답답해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수녀원에 투신하여서 계율과 의무에 열중하지만 마음 속에 차가움과 공허함은 여전하였습니다.
어느날 복도의 길을 걸어가다가 주께서 헤롯의 뜰에서 채찍을 맞는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수백번도 넘게 본 그림이었으나 그 순간 자기에게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여인을 자신을 위해 고난 받고 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 참 후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새 영혼이 일어선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사랑의 빛을 진 심정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는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바다가 여인의 가슴에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성 테라사였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사랑을 느끼게 된다면
바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걷는데 마침, 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우산이 없이 처마 밑에 비를 피하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할머니는 초라한 옷차림으로 힘든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그 순간 그 할머니에게 다가서서 자기가 쓰고 있는 우산의 한쪽을 할머니쪽으로 길게 드리우면서 힘드시죠? 괜찮아요. 곧 그칠 거예요.
그 때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얼굴 속에 띠기 시작했습니다.
잠깐이지만 그 따뜻한 사랑 하나가 할머니에게는 비오는 날 작은 햇살과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잠잠히 바라보시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떠한 모습을 지닐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로마서 8장 38절, 39절에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은 그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떠난 여러 성도들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근데 제 마음 속에 그들을 향한 기도를 늘 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그들이 삶의 자리 가운데 잘 살았으면 좋겠다.
늘 행복한 모습을 갖고 살아서 그들이 나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면 좋겠다.
거기에서 느낀 게 있습니다.
목회란 기교가 아니라 가슴이요 사랑이다.
사랑은 결코 나의 산다는 게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를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를 향한 기도의 나무가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어떤 믿음이 좋은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대생은 항상 예수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오늘 제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나도 알아, 너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그때 그녀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그것보다 좀 더 위대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예수님도 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여러분 없이는 의미가 없고 살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잊지 마십시요.
우리는 하나님께 이토록 소중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저에게 날마다 기억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인데,
하나님께는 어떠하겠습니까?
제가 모든 사람 이름을 다 불렀는데
혹시 또 서운해 할까 봐 김태건이를 부릅니다.
제가 있을 때 감기 때문에 그 주간 못나왔어요.
이렇게 헤아리다 보면 설교 못하고 여러분 이름만 불러야 돼.
그래서 마음 속에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것,
사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라고 보내신 독생자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연약한 모습이 있어도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향한다면
우리의 허물과 죄의 모든 것을 덮어주시고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즉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가치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가운데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기뻐하시는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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