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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하고 기뻐하라, 누가복음 15:25-32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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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6월 28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누가복음 15:25-32
설교제목 :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눅15:25-32]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오늘 기도자가 고백한 것처럼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새로운 절반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두움 후에 빛이 있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난다는 찬송가의 시구처럼
지금 우리는 내란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민족에게 새로운 목표를 주시는 하나님의 시간 가운데 우리가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꿈을 주셨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서 새로운 이 민족의 날들을 위해서 힘써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기를 먼저 빌어봅니다.
미국 언론인 노만 카슨스라는 사람이 50세에 온 몸이 시멘트처럼 굳어지는 강직성 척수염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99 퍼센트가 장애인이 되거나 죽게 되므로 그는 깊은 실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잠언서 17장 22절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로 작정하면서
그냥 하루에 눈을 뜨면 '하하하' 라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웃으니까 마음에 기쁨이 차오릅니다.
이런 생활을 매일같이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치유된 후에 그는 웃음과 건강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교수가 되어 유클라대학에서 75세까지 웃음과 건강에 대해서 강의하면서 질병의 해부라는 책을 쓰고 웃음학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시면 죽었다고 생각했던 동생이 돌아왔는데
큰 형은 그저 아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화가 납니다.
아버지가 그 동생을 위하여 소를 잡고 잔치를 베푸는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이 너무나 다르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느낄 수가 있습니다.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그런데 마땅한 일을 마땅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큰 아들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왜 큰 아들은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그리고 은혜를 누리지 못했을까?
아버지의 은혜가 그에게 없었던 것일까? 아니라는 겁니다.
아버지의 은혜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가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을 써서 죄송합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교회에 가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교회는 죽어 있다. 이 교회는 살아있다.
그런데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들입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는데 아버지는 말을 이렇게 합니다.
[눅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큰 아들은 늘 아버지의 은혜 가운데 살았는데 그 은혜를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큰 사건을 통하여서 은혜를 간증합니다.
오늘도 3시에 사랑숲교회에서 최용덕이라는 작곡가가 간증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중요한 것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거나 즐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가운데 가장 기뻐하는 순간이 어느 순간인지 아십니까?
주일날 여러분이 예배에 나와서 함께할 때 그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예배를 드릴 때 그 시간을 통하여서 더 목회에 힘을 얻습니다.
많은 분들이 착각합니다. 목사님께 뭘해 드리면 기쁠까?
아닙니다.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여러분이 보이지 아니하면 그때부터 고민합니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또 아프지는 않을까?
또 삶의 여러가지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건강한 모습 가운데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그것을 느낍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하는 행동에 보상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큰 아들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의 칭찬을 받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열심히 산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전히 그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의 은혜를 그는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저희 사위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그 사돈이 며칠 전에 폐에 고름이 차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 폐에 고름이 찬 것을 걷어내고 벽을 거두어 내려고 노력했지만 다 거두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처음에는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겁니다, 라고 이야기해서 그 아이가 참으로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제가 전화를 했더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가 고름을 걷어낸 그것도 아직도 불안정한데
오른쪽 폐마저 염증이 있어서 숨을 못쉬고 있습니다. 우는 거예요.
이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그동안 큰 기쁨인지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쓰러지고 나니까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걸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늘 나는 너와 함께 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큰 아들은 뭐라고 이야기합니다.
작은 아들에게 행한 것처럼...
나는 늘 아버지와 함게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나에게 염소새끼 한 마리라도 주어서 벗과 즐겁게 놀라고 행한 적이 있습니까?
아들은 오히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 힘겨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아버지와 너무 달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이런 걸 많이 느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예배전에 나타나서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고 기쁨인지.
그런데 여러분은 때때로 목사님은 나를 생각하고는 있을까? 나에게 관심이나 있을까?
나를 위해서 정말 칭찬 한 번이라도 해 준 적이 있어?
율법과 은혜가 뭔지 아십니까?
율법은 무언가로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누르는 것입니다.
은혜는 내 속에서 흘러나오는 모습 그대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강희수 권사님을 예배전에서 만났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건강하시구나.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을 기뻐하지 못하고 잔치를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작은 아들이 큰 아들의 삶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건 이건데 너는 그렇게 살지 않았어.
둘째는 아버지와 관계가 그동안 친밀함보다는 옳은 행위를 가지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모습이 좀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있는 모습 그대로...
저도 부족합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서로 받아주고 그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게 아닙니까?
부족하다고 신앙인이 아닙니까?
셋째는 아버지가 동생에게 베푼 은혜를 보면서 분개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이야기 가운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그 기준이 전부 '나'라는 것입니다. 나.
자기 기준에 합당치 않는 자를 형제라고 부를 수 없다,라는 것.
그래서 그는 동생을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예배드림을 즐긴다는 것, 그것이 뭡니까?
온 회중에 함께 어울려서 기쁨 가운데 함께 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제가 휴가기간 동안에 다른 교회를 가지 않고 혼자 우리 교회 영상예배를 드렸습니다.
혼자 영상예배를 드리면서 예배다운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권사님이 아주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한 성도는 정말 예배의 시간을 통하여서 그렇게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혼자 예배를 드린다. 아 이 말씀 참 좋다.
그런데 마음 속에 누리는 기쁨이 없습니다.
왜 초대교회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감격하며 기뻐했습니까?
초대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더불어서 함께 교제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예배시간보다도 초대교회는 교제하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공동체 안에서 함께 했던 기쁨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를 한다면 축하한다, 축하한다 계속 그말을 합니까?
생일 축하합니다, 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함께 파티를 열고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을 있게 하신 하나님 때문에 너무나 감사해서 그 감사를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을 체험하고 은혜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나타난 현상이 뭡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 교회를 바라보면서 너희는 대낮부터 술취해 보인다고 비난을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요.
잔치에 참여한 사람은 보통 때의 모습과 좀 다르지 않습니까?
저는 교회 안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의 모습을 보면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무슨 정신병자 같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을 봅니다.
술취한 사람과 하나님의 은혜에 취한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거침없이 행동하고 거침없이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을 모르고 기뻐했다고 성경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책망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후회한 것이 아니라 그 기쁨을 모르는 사람을 오히려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술먹는 사람 보면 거침없이 표현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하고 제가 술을 마셔보면 어떨까, 그럼 무슨 말을 할까?
교회 안에서는 늘 거룩한 이야기를 하고 좋은 이야기를 하는데
혀가 꼬부라졌을 때 무슨 말을 할까?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 화난 취객 경험을 해 보셨을 거예요
매우 공격적이고 또 슬픔에 잠긴 취객은 통곡하고
기뻐서 취한 사람은 행복한 듯이 행동합니다.
술은 인간의 기질대로 과장되게 행동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에 취하게 되면 기질이 과장되게 나타나고 표현되게 됩니다.
자신의 기질이나 상황에 따라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따라서 반응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어느날 우연히 할머니 몇 사람이 양지에서 햇볕을 쪼이는 가운데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할머니들은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존 번연의 가슴이 뜨거워져서 그 자리에서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존 번연의 마음 속에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서 새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의 위대한 신앙은 바로 기쁨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기쁨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 은혜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초월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서 은혜로 동행하고 계시는데 여러분들이 그 은혜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여러분들이 은혜를 멀리서 찾지 마십시요.
큰 것으로 여러분, 생각하지 마십시요.
지금 우리가 어떻습니까?
건강한 모습으로 이 시간 이 예배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도 은혜가 아닙니까?
은혜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고 건너지 못할 강이 없고 넘지 못할 산이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 입니다
[살전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상 기뻐하라.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은혜를 어떻게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쉬지 않는 기도 가운데 우리는 그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날마다 감사함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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