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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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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11월 9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여호수아 2:9-11
설교 제목 : 결단의 문제다
[수2:9-11]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오늘 아침 우리 박종순 권사님, 강희수 권사님, 윤순옥 권사님을 비롯해서 모든 분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참 감사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지난 주간, 한 주간에 소천하셨다는 분들의 소식이 세 건이나 왔습니다.
그 중에는 저와 아주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함께 해 왔던 고석수 목사님이라는 분이 소천하셔서 제가 조문을 갔습니다.
거기서 느낀 것이 뭐냐,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있지만 이별의 아픔은 어쩔 수가 없구나.
그래서 이별의 슬픔을 간직하면서 돌아와서 성도 한 분 한 분을 헤아려 보면서
얼굴을 맞댈 수 있다는 감사, 그걸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 다시금 강조하지만,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잘 관리해서 서로 함께 얼굴을 맞대고 긴 시간 건강한 모습 가운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부디 제 소망이 이루어지길 빌어봅니다.
'내 생의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때에 해럴드 러셀이라고 하는 특수부대 용사가 전쟁에 참여했다가 폭탄 파편으로 인해서 두 팔을 잃게 됩니다.
그는 두 팔을 잃은 몸으로 고향에 돌아와서 절망합니다. 나는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 말씀 앞에 서게 될 때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아직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그런 순간에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줍니다.
그는 남아 있다는 생각 속에서 의수를 훈련하면서 타이프를 치게 됩니다.
전쟁 속에 일어났던 일들의 모든 이야기를 타이프로 기록을 했는데
그 기록이 영화가 되었고 그는 그 영화에 출연해서 최선을 다해서 연기를 합니다.
결국 그는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게 되었고 많은 상금을 받게 됩니다.
그는 그 상금을 상이용사들에게 전부 기부하면서 그들의 삶을 치유하고 재활하는데 쓰여지기를 바랬습니다.
한 기자가 찾아와서 절망할 일이 없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야기합니다.
저는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내가 남은 것을 향하여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십 배, 백 배 보상해 주셨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잃은 것에 집착하면 절망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반드시 그 모습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새롭게 열어 가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인생들이 가슴 아픈 것은 뭐냐, 지나간 잃은 것들에 집착하고 아파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결국 그의 생애를 스스로 불행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가운데 무엇입니까? 기생 라합의 이야기지요.
그는 믿음을 선택합니다. 그의 삶에서 선택은 계속 이어집니다.
믿음이라는 것, 그 가운데에서 그는 어떤 생애를 살아갈까,
그는 두 가지의 방향 속에서 하나님의 뜻하신 일을 선택했다는 것.
하나님을 선택한 결과, 그의 인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그런 삶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핵심은 그녀가 어떤 믿음을 가졌느냐, 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본문 9절에서 11절 말씀
[수2:9-11]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기생 라합만이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닙니다. 여리고 사람들도 다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지나온 시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다 들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른 모든 사람들은 흘러보냈고 기생 라합만 하나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여리고 성의 모든 사람들은 싸울 의지도 다 상실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되짚어보면 기생 라합만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똑같이 들었다는 것, 그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었다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상황 속에서 기생 라합만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11장 31절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기생 라합만 생명을 걸고 하나님 편에 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두 사람의 정탐꾼이 들어왔습니다.
사실 두 사람만 생각하면 여리고성 모든 사람이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리고성 사람들은 왜 두려워했습니까?
두 정탐꾼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서 나타내실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갖게 되었던 것을 우리가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우리가 다시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이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이냐 아니면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냐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은 언제나 너는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어제 늦게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사실 저는 얼마 전에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습니다.
피해를 입었으면 절차를 밟아서 보상을 받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 마음 속에 스며드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피해를 입었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믿음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
그래서 믿음의 길이 과연 무엇인지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인생 살아가면서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까?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뭐냐,.
저는 내 인생 가운데 큰 아픔과 손해가 있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우리 교회가 건강하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피해를 입었는데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그 사람을 고발해서 적정한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지요.
그런데 그 이치를 넘어서 이 문제 속에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본고 계시다는 것
여러분,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라는 것은 우리가 결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생라합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믿는다는 건 고상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믿는다는 것은 결단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을 보면 신앙생활을 고상하게 하시는 분들이
우리 교회를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한국교회에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공동체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냥 예배만 드리고 갑니다.
심지어 온라인으로 이체해서 헌금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주일날은 예배를 빨리 해치우고...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라합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붉은 줄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건 단순히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면서
생각 속에서 끊임없이 그 생각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작은 부분이라도 따르는 거에요.
저는 오늘도 우리 교회가 또 성경통독을 합니다.
성경통독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구약성경, 신약성경을 몇 번 읽었다 그것입니까? 아닙니다.
한 말씀이라도 붙잡기 위해서 그래서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성경통독 하는 것 아닙니까?
라합은 짧은 시간에 하나님의 소식을 들었지만 그것을 붙들고 행동했습니다.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믿음이란 선택의 문제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결과가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한 청년이 대기업 취업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그가 아프리카 봉사 활동을 가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배움이 없이 문맹 가운데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
그는 대기업 취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위해서 길을 걸어갈 건가,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아프리카를 향해서 갔습니다.
그의 삶은 초라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그가 들어가서 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배움을 전달하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 가운데에서 아 돈을 버는 일에서 찾을 수 없는 자기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크게 발견하고 그는 참으로 내 인생의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을 내려놓고 뜻을 선택했던 그의 삶이라는 것,
결국 그 인생의 삶은 이 세상 속에서 정말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존재감을 드러내주게 되었다는 것, 그걸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결국 믿음은 결단입니다.
행동없는 믿음은 야고보서에서 결국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신앙이라는 것은 관념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추상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헌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그건 미래의 세계일수도 있고 또 현재의 세계일수도 있지만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구원받는다는 그 추상적인 생각 속에서 오늘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이루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뭐냐? 성경을 쭉 보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고백하는 언어를 통해서 여러분을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교회를 예수님께서 세우신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조금 지나서 내가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리라고 이야기할 때 베드로는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그건 안됩니다. 명령하듯이 이야기합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그리고 너는 너 자신만 생각할 뿐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로다.
행동이 드러날 때 그 순간 그가 어떤 모습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은 믿음을 판단하십니다.
주는 그리스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것으로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라합은 멸망 직전 여리고성에 살던 낮은 신분, 기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그녀는 목숨을 걸고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온 이스라엘 정탐꾼 두 명을 숨겨주었고 탈출을 도와주었습니다.
사실은 민족을 배신하는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의 행함이 그의 믿음을 증명했고
결과적으로 그녀와 가족, 여리고성의 10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라합은 단순히 지식에 머물지 않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구체적인 행동으로 그의 살아있는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결실 있는 믿음이란 구체적인 믿음의 행위를 통하여서 얻게 된다는 것,그 한가지만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결단하고 믿음의 모습을 취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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