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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7 주일예배 - 누구에게나 필요한 은혜**

누구에게나 필요한 은혜, 로마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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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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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12월 7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로마서 5:8
설교 제목 : 누구에게나 필요한 은혜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대림절 둘째 주일 두 번째 촛불을 밝히는 이날, 우리는 대설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대설의 시간이란 낮이 짧고 밤이 깊어간다는 절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도 이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밝음보다는 어둠이 더 많은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음습한 사회의 그 현실 가운데 말이 토대가 되어 신뢰할 때에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데
불신의 벽만 깊어가고 있습니다. 

대림절기를 통하여서 생명의 말, 사람을 살리는 말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서 
여러분과 그리고 여러분이 살아가는 그 삶의 터전을 새롭게 세워 나갈 수 있는
여러분 한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이론에 따라서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난 이후에 그는 죄책감 속에서 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때 매춘부 소냐라고 하는 신앙심 깊은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소냐는 매춘부의 삶을 통하여서 자기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소냐는 라스콜니코프를 조건 없는 사랑으로 그의 인생과 마음을 변화시키면서
그가 죄를 고백하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삶을 자백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라스콜니코프는 결국은 유죄 형벌을 받고 유형지에 유배가 됩니다.
그런데 소냐는 거기까지 따라가서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 사람에게 사랑을 쏟아부음으로써
결국 그 사람이 변화되어서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누군가 사랑했기에 누군가 희생했기에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변화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사실은 우리가 늘 듣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런데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공동체를 늘 생각하면서 바라보는 것이 뭐냐,
여러분은 이 교회 안에 일입니까? 아니면 영혼입니까?

물론 교회공동체는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행하는 데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의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을 통하여서 자기 주장을 강하게 어필함으로써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처받고 결국은 무너져 가는 사람의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
우리가 30년 40년 10년 20년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사랑은 일을 보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혹시나 넘어질 수 있다면 나를 버리는 게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세워갈 수 있는 모습, 그게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공동체가 좀 성숙했으면 좋겠어요.
소냐처럼 조건 없는 모습으로 모든 영혼을... 정말 그 영혼이 잘 되기를 갈망하는 모습으로 
나를 비우고 그를 위한 존재가 된다면 우리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서두에서 너무 강조하는 것 같은데
사실 소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40년 30년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말했는데
왜 우리 가운데에는 그러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까
여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외로운 존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아픔을 주는 존재, 거기에 머물러 있을까
그게 너무나 아파서 또 제가 이야기 가운데 또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리스도처럼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사람에게 정말 그리스도처럼 십자가를 지고라도 살리는 존재로서의 의미 가운데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로마서 5장 8절 말씀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죄인 되었을 때, 라는 말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선택해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니에요.
어느 누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은혜 이야기입니다.

민수가 6장 24절에서 26절을 보시면

[민6:24-26]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복을 주시고 평강을 주시기 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과정 속에서
얼마나 변덕스럽고 얼마나 불평했고 
얼마나 하나님 앞에 악한 모습을 드러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는 너에게 은혜를 주기를 원한다, 라는 것.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은혜는 사도바울에게도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러분, 사도바울처럼 사실 열둘 사도를 비교해 봤을 때 더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적 삶을 살았던 인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헌신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진 능력,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내게 임하셔서 그 모든 일들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김학필 장로님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김학필 장로님과 제가 가끔 회사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도 회사에 새로운 기계가 들어왔는데 고장이 났습니다.
그 기계는 대부분 독일제, 일본제이기 때문에 그 기계를 A/S를 신청하면 1-2달이 걸린답니다. 
왜? 일본, 독일에서 와야 되기 때문에
그러면 빵을 생산하는 그 공장에 큰 차질을 빚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김학필 장로님이 그 기계를 살핍니다.
그는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저는 사실 기계에 대해 배운 것도 없습니다.
또 기계에 대해서 제가 공부한 일도 없습니다.
처음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계를 바라볼 때마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라는 그 생각이 떠올라서 
그대로 수순을 밟아서 진행하면 그게 고쳐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내게 일을 하는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내가 이 일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 이후에 김학필 장로님이 성심당 대표를 만나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고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 대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고칠 수 없는 것이 없다고?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기계에 대해서 뭔가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얼마나 많이 사람들이 찾고 부르겠습니까?
그래서 김학필 장로님이 불러서 성심당에서 가끔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 식당 종사자들이나 여러 사람들이 이것도 갖다 주고 저것도 갖다 주고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다른 기술자들에게도 이렇게 대접하는가요?
그런데 아니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김학필 장로님의 모습이 참 성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배운 것도, 나는 그 기계를 연구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그 기계를 분석할 수 있는 지혜와 능을 주셨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야기를 할 때 그래서 사람이 대충 대충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오늘 나의 삶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때문에 이루어갈 수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을 고백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도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하고 끝납니다.
그리고 이 성경의 말씀의 이야기는 우리를 통하여서 계속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바로 교회는 그 은혜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반드시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임했다면 누군가에게도 그 은혜가 임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어두운 골목 속에서 아버지가 잔치를 열고 있는 그 쪽을 향하여서 바라보고 있는 큰 아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탕자의 귀향이라는 제목에서 본다면
사실은 둘째 아들 탕자에게 집중되어서 그림이 표현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그림 속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어두운 골목 속에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는 큰 아들의 모습입니다.
큰 아들이 아버지의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가 쏟아낸 분노의 말을 생각해 보십시요.

[눅15:29-30]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큰 아들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나는 늘 아버지의 종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만큼 수고했으니까 나를 이만큼 보상해 줘야 되지 않는가,
그래서 그는 아들이라는 개념 자체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둘째 아들은 어떻습니까? 
문제아였기에 나는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또 아들의 개념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탕자 비유를 보면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다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내세우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리는 것은 자격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지금도 가끔 제 지인들을 만날 때 부모님의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당신이 누구분의 자제이시군요 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참 생각해보면 성장하면서 제가 목사이지만 부모님을 아프게 한 그릇된 모습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럼 저는 자격이 없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면서 너는 내 아들이라고 너는 내 딸이야 라고 하시면서
그러시면서 끝까지 나를 껴안고 가셨던 부모님 그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자녀된 모습을 안고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은혜 없이는 우리의 존재가 오늘 이 땅에 설 자리가 없다는 것.
그래서 사도바울처럼 저는 여러분들이 은혜로 된 나라는 개념을 꼭 가졌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행위로서 우리가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까?

불교에서도 탕자의 모습을 그려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 잘못된 것을 그가 회복하기 위해서 고행을 시도합니다.
그는 그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서 똥을 치우는 일을 30년 동안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열반의 세계 가운데 들어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요. 얼마나 교만한 모습입니까?
사람이 행위로 완전해질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목사이지만 제가 완벽한 행위로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습니까? 아닙니다.
첫 째는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 가운데
두 번째는 여러분들이 저의 허물을 덮고 그래도 감싸주시는 사랑의 은혜 가운데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자격이 있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죄인 되었을 때라는 것.
그릇된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에게 사랑으로 다가오셔서 
우리의 삶의 역사를 감당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은혜가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하나의 도구라는 겁니다.
은혜 없이는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된 모습을 취할 수 있는 완성된 모습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이 정도의 사람이니까 이 정도 된 거야, 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꼭 기억하십시요.
사도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하나님이 내게 생명 주시는 은혜 때문에 오늘 내가 살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신 은혜 때문에
내가 오늘을 딛고 갈 수 있다는 것

오늘 아침에 박종순 권사님으로부터 전화왔습니다.
목사님, 교회 나오려고 나가다가 너무 몸이 아파서 되돌아 갔습니다.
저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걷는다 무언가 이룬다 이 모든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가 있을 때 이룰 수 있구나.
자만하지 마십시요.

그래서 인생을 살아갈 때 저는 여러분들이 겸손한 모습 가운데 정말
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 은혜 가운데 하나님을 향하고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이 되어서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 가운데
은혜의 강이 흐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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