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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5년 12월 14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마태복음 18:21-22
설교 제목 : 불공평한 은혜
[마18:21-22]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세 번째 주일을 맞아 초 세 개를 켜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기다림의 시간이 매우 힘들기만 합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광주에서 도서관 신축 현장에 노동자 네 명이 살려고 일하러 갔다가 죽음으로 돌아왔았습니다.
40대 젊은이가 투신 자살함으로 아홉 살 난 아들까지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은 너무나 척박하기만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기는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한 걸음씩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삶을 찾아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 없는 기다림은 허망하기에 이를 데가 없습니다.
날로 어지러워 가는 이 세상 위에 빛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
그때 생각나는 것이 뭐냐, 참 불공평하다는 겁니다.
피해 입은 우리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 그 자체를 사실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해 주는 일과 용서받는 일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용서의 이야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제자 베드로가 주님께 나아가서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당시는 율법에 따라서 일곱 번 용서하면 된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곱이라고 하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고
용서의 핵심 원리를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큰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작은 잘못을 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복수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이것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 비유의 핵심입니다.
왕에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그 빚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았는데
탕감받은 그 사람은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큰 용서를 받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작은 용서를 받아들이고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주기도, 오늘 아침에도 우리가 함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삶 가운데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 기도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서서 너희가 기도할 때 누구에게든지 섭섭함이 있거나 앙금이 남아 있다면 먼저 그 사람을 용서하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C. S. 루이스를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그분이 용서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
주기도문의 가장 핵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그 구절을 접목시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이 뭐냐
만약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고
그는 단호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 가운데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을 보면
여러분, 정말 오늘의 삶의 자리 속에서 용서라는 그 의미를 실천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마음 속에 어둠의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의 마음이 여전히 불편하고 누군가에 대한 앙금을 가지고 있다면
C. S. 루이스는 이렇게 던진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지 못했다, 그걸 확인해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C. S. 루이스가 강조하고 있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
그것은 억지로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억지로 잘해 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C. S. 루이스가 강조하고 있는 용서의 개념은
나에게 아픔을 주었던 그 사람이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용서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저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용서한다는 것, 참 어렵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해답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자, 저는 예배시간에 고개 숙인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더라고요.
오창연 장로님? 자기를 미워합니까? 사랑합니까?
사랑하지요. 그런데 왜 자기를 사랑합니까?
자기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요?
간단하게 말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오창연 장로님이 치아가 안 좋아서 인플란트로 치아를 거의 다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4200만원이랍니다.
그런데 저에게 찾아와서 한 번도 4200만원이 아깝다 말한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면 내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어떻습니까?
박종란 권사님?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50만원을 내가 던져 주어야 겠다, 쉽게 던져 집니까?
아마 제가 생각할 때는 백 번은 더 생각할 거예요.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이야기가
내 몸이라는 것과 타인이라는 것이 구분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신 의미는
타인 같이 생각하지 말고 내 몸, 내 몸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를 향한 내 삶의 모든 것을 던져 사랑할 수 있는 모습 가운데에서 뭘 드러내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그것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 잡지인 라이프지에 아름다운 참 사랑의 이야기가 기사와 함께 사진 한 장이 실려 있었습니다.
라이프 사진 기자가 어느 날 영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에서 지하철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데
자기 앞자리에 왠지 가난하게 보이는 노 부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정스럽게 손을 잡고 주문을 합니다.
남편은 비스켓을 주문했고 부인은 차 한 잔을 주문합니다.
비스켓이 나오고 차 한 잔이 나왔습니다.
남편은 비스켓 하나를 들고 반절쯤 먹었을 때
갑자기 자기 이에서 틀니를 빼고 그것을 닦아서 아내에게 줍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그 틀니를 끼고 자기도 그 비스켓을 먹기 시작할 때
남편은 아내가 먹던 차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아내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 저게 사랑이구나
눈시울이 뜨거울 만큼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서로 제 몸처럼 생각하면서 아끼고 기다려주고 기꺼이 나누는 참된 모습을 그 안에서 발견하면서
비록 그들이 가난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그러한 기사를 실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에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의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 나가서
일을 찾지 못해서 거리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불러서 일을 맡깁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열 두 시에 또 나가니까 빈둥빈둥 또 거리를 헤매며 노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또 생각해서 그들을 불러서 일을 시키며
또 다섯 시에 나가서 보니까 이제 또 여전히 일거리를 찾지 못해서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도 불러서 일을 시키는데 그 사람은 결국 한 시간밖에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모든 사람에게 늦게 온 사람이나 일찍 온 사람이나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씩 다 품삯을 주었습니다.
이때 일찍 온 사람들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일찍 와서 열심히 일했는데 어떻게 늦게 온 사람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느냐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이 잘못 했습니까?
주인은 약속대로 그 모든 것을 지킨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씩 주겠다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불평 불만합니까?
거기에서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내가 받은 것을 확인하고 받은 것에 감사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 다른 사람과 날 비교했다는 겁니다.
나는 일찍 왔는데 저 사람은 늦게 왔는데
나는 더 많이 수고했는데..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빈둥거리면서 있던 나를 불러주신 그 은혜를 잃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뭐냐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비교의식이 강한 사람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지금도 사람의 숫자를 헤아리지 않지만
목회자들의 모임에 가보면 저보다 더 큰 목회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가서 그 사람들을 비교해서 불행에 빠진 일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서 이 목회의 여정을 진행한다는 것
그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기쁨을 오늘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자 폴 호크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우울증과 열등감으로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호크 박사는 우울증이나 열등감은 단순히 심리적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울증은 수술하거나 특별한 의사의 의술로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결국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결국은 자살을 시도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서 자기 자신을 어둠 속에 몰아가는 위험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호크 박사는 왜 우울증이 생기는가
여러분, 남과 비교의식 속에서 자기 가치를 찾지 못할 때에 그러한 결과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교의식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파괴하는 악 중의 악이라는 표현을 그는 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인생을 살아가면서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게 주신 은혜만을 생각하면서 그 은혜 속에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여러분, 반드시 어둠을 뚫고 인생을 세워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격이 없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는 겁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는 것, 용서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 아닙니다.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공평하냐 공평하지 않냐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고자 하시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 신앙에서 용서란 바로 그런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마음
그 사랑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요즘 제가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형식적으로 예수 믿지 말자.
정말 예수의 사람으로 예수의 사람답게 좀 살자.
제가 바라는 것은 오늘의 이야기처럼 나에게 죄를 적게 지었던 사람이든 크게 지었던 사람이든
예수님처럼 그들을 용서함으로 말미암아 정말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작은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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