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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끝에 서서, 마태복음 1:23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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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12월 25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23
설교 제목 : 인생의 끝에 서서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탄절 분위기가 아마 율동이 없었으면 안 났을 것 같습니다.
다들 보니까 무거운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 같은데
율동을 통하여 성탄절 분위기가 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설교 없이 율동만 하면 어떨까...
그러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기도자가 말씀을 하라고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렸으니까
말씀을 나눠야 되지요.
이맘때마다 성탄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또 듣습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증명하려고 많이 애써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빌라도 보고서라는 고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오심을 설득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을 우리가 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 예수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거기에 진정한 임마누엘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베스트셀러 '하나님 앞에서 울다' 저자인 제럴드 싯처의 이야기입니다.
음주 운전을 인해서 사고가 났습니다.
그때 자기 아내, 자기 어머니, 자기 딸 삼 대가 다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 앞에 울부짖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요.
사랑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와 같이 지옥 같은 현상을 나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까?
깊은 어둠 속에서 그가 하나님 앞에 울부짖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어둠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 순간 갑자기 이러한 내용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가장 깊은 밤이 되어야만 비로소 별이 보이기 시작한다, 라는 것입니다.
가장 깊은 밤이 되어야만 별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갑자기 자기 인생 속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는 그 사람의 심연 속에 들어와 계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상실이라고 하는 것,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인간의 상실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용량을 키워서, 키워진 그마음속에 하나님을 채우는 시간이라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로소 상실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제 그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함께 하나님과 걷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예배 드리고 있는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무거운 몸을 이기고 나와서 오늘 찬양을 해야 되고 예배를 드리는 것,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1974년 기소가 되어서 감옥에 들어간 콜슨이라는 사람이 감옥에서 C.S. 루이스의 순진한 기독교를 읽다가 거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서 열두제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두제자는 목숨을 걸고 생애를 다하는 날까지 40년 동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거기서 콜슨은 뭘 느끼느냐?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목숨을 걸고 40년 동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워터게이트 사건 속에 연루되었던 사람들도 열두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들은 그들이 한 거짓말이 3개월도 못 가서 다 드러나고 말았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제자들은 40년 동안 목숨을 던지고 그리스도를 전할 수가 없다는 것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신앙인이 간증하는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인생의 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겁니다.
평탄한 삶의 모습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라는 것
사실 그런 사람들은 제가 조사해보니까 3%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다
고난의 끝자락에서 바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자기 인생 끝이 아니면 하나님을 바라보기가 참 힘듭니다.
인생 끝이라는 것, 사실 힘들어하지만 바로 그 끝자락이 하나님을 채우는 순간이요,
우리 눈에 하나님이 비춰오는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게 그런 날입니다.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속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채우시기 위해서 오신 날
그것이 크리스마스라는 겁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복음, 기쁜 소식이 된다는 것.
그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
그것이 임마누엘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 물론 지식적으로는 알지요.
그런데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동행하면서
저는 성프란시스처럼 길을 가다가도 하나님과 넉두리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우리 고백교회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생명의 꽃이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라고요.
그 순간 순간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의 모습을 지닐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학자 로이데신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유명한 글을 남겼는데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이었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교육자를 보내주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건강이었다면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의사를 보내주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재물이었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업가를 보내주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즐거움과 쾌락이었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연예인을 보내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죄사함이라는 겁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고백합니다. 허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죄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요.
그런데 어젯밤에 잠을 자면서 그 어두운 속에 나타나는 겁니다.
그 꿈에서 깨어나면서 생각하기를
사람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평화로울 수 없구나.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가 없구나.
죄사함 없이는 절대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아니 나에게 보내주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메시지입니다.
어떠한 절망을 이야기하고 금수저 흙수저 논란 속에서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헬조선을 말하고 이 땅에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향한 메시지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 라는 겁니다.
어쩌면 인생의 끝에 들리는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의 든든한 후견자가 되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가 생각납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베어'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아기 곰이 표범을 만나서 그 앞에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달려들 것 같았던 그 표범이 한 순간에 급히 사라져가는 겁니다.
그때 아기곰이 뒤를 돌아다보니 아빠 큰 곰이 늠름한 모습으로 아기곰 뒤에 서 있는 것입니다.
표범이 달아난 것은 바로 아기곰 때문이 아니라 아기곰 뒤에서 든든하게 서 있었던 아빠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나님의 임재,
우리가 종종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고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것은 임재라는 확신, 고백,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걸 느끼고 살아가느냐 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느냐 라는 것.
여러분 느끼십니까? 그럼 예배 끝입니다.
성탄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마지막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어제 김봉규 성도님이 은퇴를 했습니다.
지난 주에 못 나와서 은퇴를 앞두고 있었기에 제가 며칠 전에 전화를 했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지난 주에 못 나오셨다고요?
목사님, 사실은 몸보다도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까 마음이 참 혼란스러워서
그래서 마음이 어려워서 못 나왔습니다.
그때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도님, 우리는 인생 끝날까지 분명히 함께 갈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때 얼마나 기뻐하던지,
큰 소리로, 그럼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가야죠
은퇴하든 안 하든 그사람과 내가 함께 가겠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분이 그렇게 기뻐하면서 표정이 밝아지고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게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케리 슉과 크리스 슉이 쓴 '당신이 메시지다'라는 책을 보면 아주 인상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세미한 소리'라는 표현이 참 좋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속삭이듯이 말씀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우리는 말을 많이 하고 듣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 세미한 소리가 무엇입니까?
임마누엘 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인생 끝에 있을지라도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죽음의 나락에서 죽음의 고통을 맛보는 사람들에게 심판이 아닌
나는 너희의 구원의 힘이 되어줄 거야, 라고
한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 인생을 돌아보니까 바닷가를 걷고 있는 자기 모습을 떠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바닷가의 진흙뻘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삶이 가장 슬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순간에 발자국이 하나만 보였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서 원망합니다.
내가 가장 슬프고 힘든 시간에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세히 보아라, 저 발자국은 내가 너를 업고 걸어가면서 피 흘리며 걸어간 발자국이니라.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가시가 박혔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품고 안고 고난의 길을 가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삶의 가치 자체를 제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을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약할수록 더 우리에게 강력하게 다가오셔서
함께하시며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어제 한 성도가 목에 감기가 걸려서 너무 힘들어하는 겁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몸이 아프냐고.
그랬더니 자기 아들이 한 달 동안 아파하고 있는데
그 아픈 아이를 한 달 동안 감당하려고 보니까 체력이 완전히 무너져서 몸살이 왔다는 겁니다.
거기서 느낀 게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사람이 가장 아프고 힘겨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다가오셔서
한 순간도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시구나.
오늘 크리스마스는 인생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끝자락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2025년 성탄절에는 바로 그분을 만나서
임마누엘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탄절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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