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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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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1월 18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베드로후서 1:5-7
설교 제목 : 너희가 힘써 더하라
[벧후1:5-7]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평화를 원하는 우리는 상처를 입곤 합니다.
지난 주간에 내란에 대한 첫 선고가 있었습니다.
판사는 검찰 구형량보다도 형량을 반으로 줄여서 선고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초범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내란이라는 게 재범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얼마나 판사가 안이하게 내란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판사의 안이한 마음이 오늘 내란으로 인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서 상처 입은 자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오늘 상처 입은 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싸매주고 그들을 위로하는 한 사람이 되기를 빌어 봅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에서 7절 말씀을 읽으면
우리는 아주 중요한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둘째로 믿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셋째는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사람은 믿음의 토대 위에 신앙을 건축해야 된다는
세 가지 논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은 선물이다
베드로후서 1장 1절 후반부에서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 역시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 배가 난파가 되어서 한 사람이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거친 파도속에서 허덕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물 속에 빠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배 한 척에서 그에게 줄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는 그 줄을 붙잡고 무사히 구출 되었습니다.
그때 선장은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이처럼 건짐을 받은 것은 당신의 힘입니까? 무엇입니까?
그때, 나의 힘이 아닙니다. 배에서 던져 준 밧줄이 나를 구조하였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노력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던져준 밧줄, 그리스도를 우리가 붙듦으로 말미암아
그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믿음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죽으신 바로 그 희생을 통하여 얻은 것이라는 것
그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로 믿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구원받았으니까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도 나는 천당 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구원파들입니다.
그들은 거짓말하고 법을 어기면서도 마음 속에 죄책감이 없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지요. 그때 배에 탄 승무원 가운데 대부분이 구원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열다섯 명의 구원파 사람들이 그 사고를 겪고 난 이후에 그들은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딱 한 사람만 나는 죄를 범하였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부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5장 1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이제 끝이라 하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무슨 말입니까?
구원받았으니까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삶을 제대로 이루어가자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 아니라는 겁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받았다 하는 순간
종점이 아니라 거기에서 이제 출발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래서 사실은 지금부터 최선을 다하여서 구원의 길을 걸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를 생각해보면 사후의 천국만 강조하느라 세상의 삶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거짓말과 사기,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등 믿지 않는 이들보다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2년 전이지요. 우리 동구청 식구들이 김상현 권사님을 찾아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김상현 권사님이 말씀을 전해주면서 신앙생활할 때 뭐만 조심하면 된다?
장로와 권사와 목사만 조심하면 된다.
장로와 목사와 권사...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사기꾼이 대부분이었다.
저는 그 말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람들의 의식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늘 천국행 티켓을 따 놓았다고 확신하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구원받았으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셋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더하라고 외칩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솔로몬의 시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 시편 127편 1절, 2절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시편 127:1-2, 개정)
1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람들이...
맞아. 하나님이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하시면 우리가 밤낮으로 일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수고하지 말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가만히 지켜보자,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러니 지켜보자, 이 해석이 맞습니까?
손놓고 놀고 먹자...
얼핏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지만 틀렸습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의 노력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헛되다는 것이지
수고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즘 성도들 가운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하나님만 들볶는 사람들이 있어요.
성경은 끊임없이 기도하라, 사랑하라, 섬기라, 인내하라고 명령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믿음을 주셨으니
이제 우리는 수고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너희가 힘써 더하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제는 그 믿음 위에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인격과 인품을 갖추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베드로후서 1장 5절에서 7절말씀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후서 1:5-7, 개정)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 7가지 덕목을 더하게 될 때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사도바울은 이야기합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여기에서 이루라는 말은 계속해서 일하라.. 계속해서 일하라..
그런데 이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빌립보서 2장 12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우리가 힘써 일해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니까 우리도 끊임없이 일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가정 안에서 부모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나는 그 옆에서 빈둥빈둥 놉니까? 아닙니다.
부모님이 일하고 계시기에 나도 일해야 참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됩니다.
심리학자 스카펠스라는 사람이 영적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여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모여 앉아서 인생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일을 통하여서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를 설계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절대 패배하지 않도록 설계하셨다.
여러분, 패배하지 않도록 설계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김을 가질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일은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역경과 시련을 만날 때 불평하기보다는 나를 성숙시키기 위한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보배로운 믿음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한 알의 겨자씨는 여러분이 대단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 알의 겨자씨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금값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값비싼 금이라 할지라도 10년 100년 1,000년을 가도 금이 변합니까?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금덩어리에 비해서는 하잘것없이 생각하는 한 알의 밀알을 땅에 심어 보십시오.
한 해가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면 그 씨앗은 숲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겨자씨 한 알 속에 숨겨져 있는 놀라운 비밀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강조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이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겨자씨 한 알을 시시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한 권사님을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측면 속에서 참 많은 세월 가운데 목회에 많은 경험들을 합니다.
때로는 200여 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부교역자들이 네 다섯 명씩 되기도 하고
그런데 42년이 지난 지금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뭐냐?
여전히 내가 목회에 대한 허무감을 느낄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권사님과 이야기하면서 제가 강조한 게 있습니다.
어떤 측면 속에서 내가 원했던 것은 정말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과 영성과 삶의 모습을 가진 한 사람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겁니다.
교회가 사십여 년을 지내오면서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그 순간이 바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본성, 자기의 악한 성품을 드러내는 일에만 모두 급급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 가르침과 교훈 안에서
우리는 지내온 시간이 없었다는 것, 그게 마음 아팠습니다.
어떤 측면 속에서 앞으로의 목회 여정 가운데 제가 갈망하는 것
그리스도를 닮은 한 사람, 그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
그런데 그건 제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하나의 뜻이 아닌가라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고백공동체에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잘 살고 못 살고... 아니에요.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말.. 김경자 하면 아 저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구나, 칭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드러나서 그들을 통하여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얻고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정말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는 것.
우리 공동체는 서로 얼굴을 대할 때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하고
형제의 눈 속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발견하고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이런 축복 가운데 나날을 살아내는 고백공동체 모든 지체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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