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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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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2월 22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베드로후서 1:5-7
설교 제목 : 참된 경건
[벧후1:5-7]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지난 주 설 다음날이 절기상으로 우수라고 합니다.
우수는 언 땅이 녹아서 계곡으로 흘러가 활기를 되찾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수의 참 뜻은 녹는다는 겁니다.
저는 이 우수의 절기를 맞아서 여러분의 일상도 맺혔던 모든 것들이 풀리는
그런 시간의 절기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 그게 바람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힘써 행하며 익히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를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신앙 삶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탈리아의 거장 파가니니가 사후에 자신의 바이올린 캐논을 고향 시청에 기증을 하면서
절대 연주하지 말고 보관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 당국은 그의 뜻을 받들어서 유리관을 만들고 습도가 조절되는 케이스 안에서 보관했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잘 보관된 악기는 겉모습 가운데에는 찬란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 케이스를 열고 바이올린을 분석해 보니까
바이올린 내부가 완전히 충치에 삭아들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나무 바이러스에 완전히 삭아서 악기를 연주할 수 없는 나무조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악기는 연주할 때 생명력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진동과 마찰음이 멈추는 악기는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
이 악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전시용 신앙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교회 안에서 화려한 직분과 경건한 모양을 갖추고 있지만
삶의 현장에서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유리 케이스에 보관되고 있는 바이올린이 아니냐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장로다, 내가 목사다, 내가 권사다...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목사, 장로, 권사 왜 세웠습니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까?
내가 장로인데, 내가 목사인데... 아닙니다.
교회일을 돕기 위해서! 교회가 누구입니까?
사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성도들의 연합이 교회 아닙니까?
진정으로 오늘 우리가 참된 직분을 가졌다면
우리는 교회 일 하니까, 청소하고 마당 쓰는 것... 아니에요
직분을 가진 자들은 늘 성도들을 살피는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그 분량의 크기를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잖아요.
성도 한 사람이 아프고 힘들면 하나님은 신음하신다는 것
목회자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고 세워졌는데
우리는 가끔 생각해보면 전시용으로 지낼 때가 너무 많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악기처럼 사용될 때 그 생명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참된 경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분의 신앙은 전시용입니까?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용입니까?
아니면 내 가슴을 울리는 하나님의 악기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늘 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목에 건 사람들이 질투나 행실이 왜 그렇게 험할까?
기도도 잘하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한다는 사람들이 왜 그들의 가정을 살펴보면 행복하지 못할까?
오늘날 성도들의 삶이 왜 같은 성도가 보기에도 신실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더 나아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도대체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이 뭘까?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두 가지 경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거짓 경건, 무늬만 있는 경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건한 것 같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겉으로 보면 참 경건합니다.
성경책 들고 다니지요. 가끔 기도회에도 참석하지요.
또 아주 신앙적으로 다른 사람 보기에는 좋은 일만 골라서 하지요.
남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체험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해득실이 문제가 되어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선택을 한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자신도 똑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저는 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밤새도록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한국교회처럼 싸움을 많이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한국교인들 가정처럼 분란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저는 하원이를 바라보면서 기타를 치고 하영이를 바라보면서 성가대에 서고
오늘 아침에도 하율이가 저를 딱 보고 짜증난 모습이 아니라 기쁜 얼굴로 목사님 안녕하세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자녀들이 교회를 꺼려한다는 것, 힘들어 한다는 것
여러분, 그런 가정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무늬만 있는 전형적인 신앙의 모습이 아닌가
여러분, 무늬만 있는 신앙은 자녀들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거짓 경건은 감상적인 경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목사님, 오늘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참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가슴을 먹먹해 하기도 합니다.
감동을 받으며 가끔은 십일조도 하고 감사헌금도 하고 기분 좋게 지냅니다.
심지어는 기분이 좋을 때에는 몸에 십자가를 새기기도 하고 성경말씀을 새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삶의 모습 속에서는 실천적인 사랑의 모습을
아니, 십자가의 사랑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입술을 가지고 남을 비방하고
찬송을 부르던 입술로 남을 저주하고
성령충만은 혼자 받은 듯 하면서 삶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종교적인 감상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경건이 뭐냐?
야고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약1:26-27]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여러분, 참된 경건은 첫번째로 말조심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은 헛것이다.
여러분, 내가 아무리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을 해도 부정적인 말 가운데에서 함부로 말을 하면
그 사람의 경건은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헛것이다.
여러분,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제일 먼저 혀를 봅니다.
혀는 우리 몸의 상태를 다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에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혀라는 것은 육체의 병증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삶의 병증도 잘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사람은 늘 사랑과 진리를 이야기하고
보통 사람은 시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작은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유 감독님을 쭉 보면서 한 번도 남을 비방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늘 나라의 이야기, 아 참 저 사람은 마음이 밝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감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인가 묻고 싶습니다.
큰 사람입니까? 아니면 보통 사람입니까? 아니면 작은 사람입니까?
우리는 매일 많은 말을 하면서 말로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하기도 하지만
말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도 하고 말로 자신의 영혼과 인격을 더럽힐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진실한 말, 꼭 필요한 말, 유익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
말을 조심하지 않는 사람은 그는 결코 경건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혀에 재갈을 물릴 줄 아는 사람만이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
적어도 고백공동체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말조심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한 사람이기를 빌어 봅니다.
둘째, 참된 경건은 연약한 이를 돌보는 것입니다.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경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려움에 처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입니다.
참된 경건은 늘 남에게 관심을 갖고 남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저는 고백교회를 이루면서 꿈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좀 더 정상적인 모습을 갖고 살아간다면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되면 보육원을 나와서 혼자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습니다.
저는 교회가 제 목회 가운데 좀 더 성장한다면
그들을 위한 거처를 만들고 그들이 재활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재활센터를 만들어서
그들의 길을 열어주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늘 갖고 있습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거기에 동참하는 것이 경건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아파하면 저는 언제나 함께 아파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면 여러분과 함께 항상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경건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기심, 자기중심주의, 저만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경건은 늘 남을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형제들을 배려하는 것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배부르니까 종놈아 밥짓지 말라.
그런 못된 주인도 있다는 겁니다.
내가 배부를 때 배고픈 이를 생각하며
최부자처럼 남의 등을 따뜻하게 해 주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생각합니다.
우리가 건강한 공동체라면 형제 가운데에도 실패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고
인생길 가운데에서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결코 그리스도의 한 몸을 통하여
그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 형제의 삶을 파괴할 수 없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갈 것이다.
그것을 늘 말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참된 경건은 자신을 지켜 성결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 사람처럼 살지 않는 것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백성 가운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어느 날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죄가 많고 유혹 많은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우리 자신의 삶을 지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스승이 제자를 데리고 생선시장에 갑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가 놓여 있습니다.
수족관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선이 있고
소금에 절인 고등어가 있습니다.
스승은 이야기합니다.
자 봐라. 짠물 속에서도 살아서 움직이는 물고기는 전혀 짠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죽은 생선은 몸 속 깊이까지 저려진다는 것,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정말 여러분의 모습 가운데 그리스도가 살아 있다면
죄악 많고 유혹 많은 세상 속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늘 세상에 쩔어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우리 삶에서 세상적인 것 외에는 찾을 수가 없다는 것
그걸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흐른다면
우리는 세상에 절여지지 않는다는 것
그걸 꼭 잊지 마십시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는 스무 살에 6대 생활수칙을 정했습니다.
그걸 벽에 놓고 날마다 묵상하며 살았는데
그 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 한 번 다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첫째, 아침 기도
일찍 일어나 5분씩 기도하여 정신을 말게 한다.
둘째, 침묵
불필요한 잡담을 금한다. 말이 많으면 적이 많다.
셋째, 태도
겸손한 태도, 열정적 행동, 진실한 대화의 자세를 갖는다.
넷째, 말씀
매일 성경 4장을 묵상하며 영혼을 살찌운다.
다섯째, 의탁
하나님께 인생을 맡긴다.
의지할 곳이 있는 자는 매사에 너그럽다.
여섯째, 반복
이 수칙을 하루 두 번 이상 소리 내어 외친다.
보고 외친다는 겁니다.
왜 외칩니까? 잊지 않기 위해서
경건은 헬라어로 εὐσέβεια (eusebeia, 유세베아)인데
좋다라는 eu (εὖ)와 예배하다라는 sebomai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경건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저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경건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배는 뭐냐? 예배는 경건의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경건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에 동참하는 것은 예배에서 은혜를 받고 가르침을 받아서
우리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경건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배는 경건의 시작입니다.
예배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마십시오.
이제 세상에서 나아가 가난하고 외로운 이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을 오직 자신만을 위해 다 쓰지 마십시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권력과 젊음도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빨리 사라진다는 것 꼭 잊지 마십시오.
우리 인생은 결코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언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야, 이제 가자 하고 부르시면 우리는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가자 할 때 그분 앞에 설 때에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고 우리의 삶이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십시요.
이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면서 세상에 나가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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