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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5 주일예배 -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일시 : 2026년 3월 15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마태복음 5:9
설교 제목 :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마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배가 전체적으로 좀 무거운 것 같습니다.
찬양을 부르는 사람도 울먹거리고 또 기도하는 사람도 울먹거리고
그래서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

김태성 안수집사가 어제까지만 해도 고열에 시달려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열이 좀 잡히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벌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며칠 있으면 회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이라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에게 다 다가옵니다.
오늘 아침에도 박종순 권사님이 몸이 힘들어서 못 오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정수경 안수집사님도 부친이 또 오늘 내일 해서
옆에서 아버님을 간병하느라고 또 오늘 이 시간에 참여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러한 순간을 맞게 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힘이 되느냐를 느끼게 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약속하십니다.

[렘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아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말씀을 붙드십시오.
서로 격려하며 기도하고 사랑으로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소망과 평안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 잊지 마십시오.
이 터 위에 굳게 서서 오늘의 삶의 모든 시련들을 이겨내실 수 있는 한 사람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52장 7절에

[사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뭐냐? 
평화를 전하기 위해 오셨다는 겁니다.
평화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는 부모를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 부르시고 계신 것을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보게 됩니다.

하지만 마귀는 본성과 전혀 다르다는 것. 어떻게든지 평화를 깨뜨리려고 합니다.
사람 사이에 이간질하고 하나님의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는 것을 방해하고
시기와 질투심을 불어넣어서 서로 싸우게 만듭니다.

오늘 많은 이들이 마귀의 속임에 넘어가 
자신도 모르게 공동체 안에서 또는 이 사회 안에서 이 세계 속에서
화평을 깨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 가정을 깨뜨려서 지옥을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런 일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의 궤계를 정확히 간파하고 죄 가운데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다툼과 분쟁과 싸움을 피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한 가지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삶의 어느 자리에 있든지 간에 허무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선 자리가 꼭 세우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평화를 세울 수가 있을까?
바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묵상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화평케 하는 화평의 교과서입니다.
그 십자가를 묵상할 때 우리는 평화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게 됩니다.

그 첫째,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평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십자가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메시지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화평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참 평화의 주인 되신 우리 마음을 지배하실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우리는 간직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참회록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만나기 전까지 내 마음속에 평화가 없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피조물인 우리 사이의 화평이 회복될 때 
우리 마음속에는 세상의 어떤 것도 무너뜨릴 수 없는
평안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27에서 말씀하십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알 수도 없는 이 평안을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이룰 때에
우리 마음 속에 찾아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일로 말미암아 낙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김태성 안수집사가 이제 치료의 그 과정 가운데 많은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뭐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은 다음에 그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님...
아무리 극심한 고통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분노하거나 그런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늘 희망을 담아 이야기하고 하수같이 흘러내리는 나의 인생 가운데에는 그분의 목적하신 뜻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하면서
아, 세상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련이 하나님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빼앗을 수가 없었다는 것
왜? 하나님이 그 마음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조류학자 존 보로스는 매를 공격하는 까마귀와 딱새무리를 만나게 될 때 매는 더 높이 날아오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까마귀와 딱새는 그냥 지쳐서 떨어지고 만다고 합니다.
그 광경 속에서 그가 느낀 것은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는 다툼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으로 그 마음을 채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도 그 마음을 파괴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예수님이 고통스러운 그 순간 특별히 자기를 찌르고 자기를 해하려고 하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러하오니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속에서 그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시면 좋겠어요.
하나님으로 늘 자기 마음을 채워서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길 빌어 봅니다.

두 번째로 이웃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평화라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위해 하나님의 본체의 영광을 포기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평화를 누리게 된 것은
바로 그 처참한 희생의 피값을 치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서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 사랑을 입은 사람으로서 우리도 그분의 자녀로서
우리 또한 그리스도처럼 희생을 통해 이 땅에 평화를 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53:3-4]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 선지자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오늘 우리가 화평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선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이들의 허물과 죄를 끌어안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음으로 다른 이들이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채찍에 맞음으로 다른 이들이 나음을 얻게 해야 한다는 것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 켐퍼스는 평화의 길을 걷기 위해서 4가지 조건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아 켐퍼스 4가지 조건>
첫째, 물욕 버리기(많이 갖기보다 적게 갖도록 노력하라)
둘째, 명예욕 버리기(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를 선택하라)
셋째, 경쟁심 버리기(자기의 뜻보다 남의 뜻 받들기를 힘쓰라)
넷째, 자존심 버리기(매사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앙망하라)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과감하게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버리지 않고서는 예수 믿는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려우면 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물욕, 명예욕, 경쟁심, 자존심을 버리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늘 물욕에 가득찬 사람이 어떻게 평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독수리는 70년을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위기가 언제 오냐? 40년 되는 때 위기가 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독수리의 부리가 휘어져서 자기 몸을 향한다는 겁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발톱이 자라 무디어져서 이제는 사냥도 할 수가 없습니다.
털도 자라나 무거워서 나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때 독수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이대로 죽을 것인가, 다시 살 것인가
독수리는 다시 살기 위해서 하늘을 올라가서 절벽의 바위를 향하여 돌진합니다.
그리고 부리를 완전히 뽑아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독수리는 새로운 부리가 자라나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부리가 나타나면 그때 발톱을 뽑아내고 그때 무거운 깃털을 다 뽑아냅니다.
그래서 독수리는 다시 가벼운 몸짓으로 비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낡은 습관을 버린다는 것, 참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결단해야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교회사 속에서 뼈아픈 집단 범죄가 있었습니다.
바로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것은 결코 신앙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살육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성스럽게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증오심과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미국과 이란 전쟁을 살펴보십시오.
액면 그대로 우리가 분석하면 이란이 미국을 도전했습니까? 아닙니다.
미국이 자신의 야욕을 감추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유발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전쟁의 승리로 군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자꾸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직 평화의 도구로서 영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겠다고 칼을 빼어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전쟁은 승리가 아니라 결국은 통곡과 파멸뿐이라는 것
그 어둠의 시절 십자군의 전쟁이 실패를 예견했던 그리고 평화의 사신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소수의 제자와 함께 평화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평화의 도구 기도문>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게 바로 아시시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사람이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고 권면합니다. 
이 화평의 대상은 예외가 없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닮지 않고 증오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주님을 뵐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 화평을 위해서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포기했던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이들을 용서할 힘을 구하고
화해가 필요한 곳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결단을 하십시오.
화평을 위해 오신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임하여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어봅니다.

화평하는 자의 복,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 복
바로 여러분의 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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