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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
일시 : 2026년 4월 5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로마서 6:6-9
설교 제목 : 부활
[롬6:6-9]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이미 그 청소년들을 통하여서 메시지가 전달됐고 성가대를 통해서 메시지가 전달되었는데
제가 또 설교해야 되나요?
제가 볼 때에 오늘 오창연 장로님이 찬양을 하면서 부활절인데 얼굴들을 왜 그리 무겁냐고?
그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죄가 크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렇게 조금 항상 무거운 모습으로 설교하고 여러분들을 뵙다 보니까
어떤 분이 그래요. 우리 고백교회는 너무 목사님을 닮았다고
그런데 여러분들이 표현할 수 있을 때 표현하는 것 그건 건강한 삶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가물었던 그 대지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를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뭐냐?
우리 교우들에게도 은혜의 단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묵상을 하면서 제 마음을 붙들고 있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달라고 하는 간구
하지만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순종의 기도
그 두 문장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여기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상황, 어떤 순간에도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나의 욕심이나 의지보다는 주님의 뜻을 구하며
묵묵히 살아내시는 우리 고백교회 모든 공동체의 일원들이 되기를 먼저 소망해 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복음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
그것이 복음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는 모든 것은 헛것이라고 강조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부활절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이라는 하나의 단어 앞에 우리는 머뭇거리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죽음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결코 죽음을 미화하거나 다 괜찮은 거야, 절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5절을 보면 죽음의 비극 앞에서 예수님께서 함께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픈 사랑을 전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죽음의 슬픔을 예수님께서 아시기에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데
세 가지 원리를 여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신앙이 흔들릴 때 왜 흔들립니까 하고 질문을 던지게 되면
아직 내가 죽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여러분들이 잘 읽어보십시오.
이미 우리는 죽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옛 습관으로 돌아가서 죄악 가운데 머무르는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죽었어' 라는 그 인식 속에 살아가야 되는데
죽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누구도 악임을 알면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악행이라는 것은 어느 때 저지르게 되느냐
이것이 선인지 악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한 벌목꾼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 벌목꾼은 산에서 열심히 나무를 베어서 겨울을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땔감으로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는 늘 '나는 착하게 살고 있어'라는 생각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왜 심었느냐,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서 산에 나무를 심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여름철에 되었을 때 큰 홍수가 나면서 마을 전체가 산사태로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잠시 생각을 해보면
이 산림목이 땔감인가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것인가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무지함 가운데 큰 재앙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바로 그 벌목꾼처럼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일 때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우리는 죽었다고 그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아직도 모르게 살아가고 있기에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새로운 존재, 새롭게 태어난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남북전쟁 직후에 한 노예시장 경매대에 평생 채찍과 고난 속에 살아왔던 노인이 경매 물품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제 나는 또 팔려서 또 끔찍한 고통을 당하겠지 하며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찾아와서 그를 아주 비싼 값에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노인은 생각하기를 비싼 값에 나를 샀다는 것은 나를 더 비참하고 참혹하게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인을 산 신사는 바로 문서를 받은 이후에 그 문서를 찢으면서
그 노인을 향하여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지금부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당신이 자유롭게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런데 그 노인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점차 이제 내가 자유인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을 때
노인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 신사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주인님, 주인님이 저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함을 통하여서 나는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고 내가 스스로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너희는 모든 죄에서 나음을 입었도다.
그러므로 더이상 우리는 죄에 매여서 종노릇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참 부활절을 맞이하여서 제 목회 가운데에서 기쁨을 갖는 것은
물론 다른 시간도 많았습니다만
우리 성도들 중에 삶의 모습이 변화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김봉기 성도님의 빛나는 얼굴을 볼 때가 참 많아요.
야,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정말 저 분은 저 분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여러분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잊지 마세요.
두 번째로, 믿는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리 가운데 신앙을 힘있게 만드는 요소가 뭐냐,
지속성이라고 이야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서 여긴다는 것은 계산한다는 것입니다.
계산한다는 것은 사실 그대로를 인지한다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입니다.
기억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늘 인식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젊은 날에 방탕하며 그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패륜적 존재로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의 변화를 가져 왔는데
어느날 길을 걷는데 방탕했을 때 함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며 기쁨을 즐겼던 여인이 나타나서 어거스틴을 알아본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을 어거스틴을 향하여 이름을 부릅니다.
그때 어거스틴이 외면하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자 그 여인이 다시 다가와서
당신은 나를 모르는가, 지난 날 당신과 함께 내가 그런 모습 가운데 산 사람입니다.
그때 어거스틴이 이런 유명한 말을 합니다.
그때의 어거스틴은 이미 죽었습니다 라고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모든 사람 앞에서 옛사람 그 사람의 모습이 이미 죽었다 라는 것
그 모습 속에 있는 나를 더 이상 찾지 말라고 분명하게 선언을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신앙은 항상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속에서
새사람 되는 모습을 가지고 날마다 우리의 삶의 자리 가운데에서 실천하고 살아가는 자리가 바로 신앙의 자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여러분들 마음 속으로 옛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 속에 머물러 있었던 나는 죽었다 라고 하면서
그러면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늘 여러분들이 연상하며 그 길을 걸어갈 때
아, 정말 신앙이 주는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는
그러한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세 번째로 이제는 산 자로 살아야 된다는 것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5-38 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히11:35-38]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는 정말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는 정말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한 성도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제 모습이 너무 교회 안에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그분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제가 매주 보내는 문자를 읽을 때마다 그 말씀과 그 문자를 붙들고 살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미워할 수밖에 없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신앙이란 사랑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래서 사랑해야지 하면서 오히려 그 사람을 껴안았을 때 그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변했지?
그러면서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가끔 빵을 나누어 갑니다.
빵을 가지고 가면 집 근처에서 어린 아이들을 만나면 그 빵을 나누어 주면서
그 모습 속에서 자기가 기뻐하고 있는 삶의 모습을 느낄 때에
아 정말 내가 변화되었구나 라는 것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고 해서 고난이 비껴가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모든 사람 앞에서 웃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신실하게 평생 헌신한 노 목사님이 임종을 앞두고 극심한 투병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를 간병하던 제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스승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일평생 부활의 소망을 전하며 사셨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토록 고통을 겪으셔야 합니까?
하나님이 원망스럽지도 않습니까?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그 제자의 손을 잡고 스승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합니다.
부활을 믿는 건 폭풍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알기에
거친 파도 속에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고통은 웅덩이가 아니라 빛으로 나아가는 터널일 뿐이다.
나는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뚫고 생명의 문으로 길을 걸어가는 중이야.
그래서 이 통증 넘어 나는 웃을 수 있는 거야 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공포로 가두려고 하지만
부활의 소망을 진짜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랬잖아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라보면서 제 목회 가운데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과정 속에서도
어떤 분은 목사님, 저는 하늘나라 갑니다. 그리고 운명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간경화로 심한 고통 중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내 눈에는 하나님 나라가 보입니다 하면서 아주 평안한 모습으로 운명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느낀 것이 정말 부활의 신앙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이나 세상의 어떤 것도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
저는 바로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부활은 머릿 속에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 그대로 살아감으로써 체험을 해야 진정한 신앙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 성도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십시오. 살아내십시오.
살지 않는 사람은 결코 부활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10독 했다 20독 했다 의미 없습니다.
한 성도님의 이야기를 좀 더 한다면
자기는 부모님이 공부를 시키지 않아서 사실 공부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
교회 와서 살다가 보니까 예수님을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었고
교회 와서 믿음의 길을 걷다 보니까
정말 내가 성경을 잘 읽지 못하지만 부활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의 그 의미를 볼 수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살아가는 자에게 주어진 믿음의 역사라는 것.
살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체험할 수 없는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해서 여러분들이
이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매일 매일 삶의 자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냄으로써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자의 삶이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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