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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출발점 등나무, 나팔꽃 인동덩굴과 같은 식물은 오른편으로 감고 오르며 자라며, 칡이나 강낭콩, 여주와 같은 식물은 자랄 때 왼편으로 감고 오릅니다. 그래서 칡넝쿨과 등나무는 함께 있으면 부딪힌다는 데서 나온 낱말이 갈등(葛藤)입니다. 즉 칡을 뜻하는 갈(葛)자와 등나무를 의미하는 등(藤)자가 합성된 낱말입니다. 우리는 식물에서 배울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다양성입니다. 각기 다른 종의 식물들이 함께 숲을 이룹니다. 산에 가 보십시오. 식물은 같은 종끼리만 살기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소나무, 참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상수 리나무, 갈참나무, 밤나무, 산딸나무, 산벚나무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무들과 들꽃들과 들풀들이 공생합니다. 참나무가 소나무에게 잎이 넓지 않고 빼죽하다고 탓하거나, 잣나무가 소나무에게 열매가 왜 그 모양이냐고 흉보지 않습니다. 감나무는 밤나무의 밤송이를 보며 가시가 있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함께 공생하며 자랍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어떻습니까? 종교와 이념이 자신과 다르면 배척합니다. 같은 사람끼리만 친숙하게 지냅니다. 제가 젊었을 때 나갔던 교회의 목사님은 설교시간에 예수를 믿지 않은 타 종교인을 두고 "잡혀 먹힐 짐승" 또는 "지옥의 땔감"이라 곧잘 말했습니다. 신앙이 미성숙했던 당시 저는 그 말을 불신자를 향해 자주 썼습니다. 얼마나 악한 극언입니까? 뒤에 그 같은 제 말로 인해 상처받았을 분들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푸른 숲처럼 건강한 사회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절과 골로새서 3장 21절, 로마서 15장 7절은 한결 같이 서로 용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서로 용납하는 것이며, 용납은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김상현 권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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