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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0 주일예배 -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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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5월 10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이사야 55:6-9
설교 제목 :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설교 실황 : 

[사55:6-9]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어린이날 저는 단종과 엄홍도를 그린 왕과 사는 남자라고 하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세상에 등을 돌리고 시퍼런 권력 앞에서 공기마저 얼어붙게 하던 그 시절 유배지에서 
엄홍도의 발걸음은 단순한 충성을 넘어서 우리가 가야 될 길을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지켰던 것은 한 명의 군주가 아니라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외로운 영혼들이었던 것입니다.
계산된 의리로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그 곳, 자신의 안위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타인의 아픔을 제 몸처럼 입었던 그의 숭고한 선택은
2천 년 전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셨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찬란한 정오에 빛나는 것이 아니라
칠흑 같은 깊은 밤 속에 증명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끝까지 머물러 준 엄홍도의 그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 앞에 드려야 하 가장 진솔한 신앙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림은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이 그의 삶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다시금 메아리칩니다.

이제 우리도 스스로 누군가의 엄홍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에 구석진 곧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가서 기꺼이 곁을 내어주는 사랑
세상의 권력보다 강한 것은 결국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머무름의 신비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도 그 좁고도 영광스러운 사랑의 길을 함께 걷는 그런 한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영국의 한 유명한 신학교수가 시골길을 걷는데 한 노인이 성경책을 보면서 감동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이 노인은 문맹에 가까운 사람인데 그 가운데 성경책을 보면서 그가 흠뻑 그 감동의 말씀 속에 젖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는 호기심에서 그 노인에게 다가가서 묻습니다. 성경의 오묘한 진리를 깨닫고 계십니까?
저는 학자이지만 아직도 성경의 모든 말씀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 때 노인은 수줍은 듯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머리가 나빠서 어려운 교리는 하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하나는 압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면 내 몸이 따뜻하다는 것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 몸을 따뜻하게 하는 햇빛의 구성 성분을 일일이 내가 알아야 됩니까?
저는 성경의 교리나 지식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을 저는 느끼면서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는 복잡한 신학이론에 매몰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우매한 인간의 지식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서
하나님이 이해되면 믿겠노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그 좁은 소견과 논리는 생각하지 못한 채
자기가 이해할 수 없다면 안 계시다고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간이라고 하는 것, 다 저마다 지식의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학문의 세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비한 세계가 이 세상 속에 널려 있는 것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깊은 숲 속에 땅바닥만 기어다니는 개미에게 세상은 평평한 땅과 장애물이 전부였습니다.
어느 날 소나기가 내린 뒤에 개이면서 하늘에 무지개가 떴습니다.
나비가 다가와서 개미에게 고개를 들고 아름다운 무지개빛을 바라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개미에게는 고개를 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직 검은 땅바닥과 장애물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개미는 그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거짓말 마! 그런 것이 어디 있어?
내가 보기에는 흙 바닥과 나뭇가지 장애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무지개라는 것, 그건 네가 가지고 있는 환상일 뿐이야 라고 콧방귀를 끼었습니다.

여러분, 개미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무지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개미라는 생물학적 한계에 갇혀 있는 그것에 세상이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개미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는 가시광선 영역 밖의 자외선과 적외선을 우리 육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박쥐가 듣고 있는 초음파나 땅의 진동을 느끼는 미세함을 우리는 느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시속 10만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자전하며 우주 공간을 유영하고 있지만 오늘 우리는 그 속도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린왕자라는 책 가운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아, 라고 말입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서 9절,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사55:8-9]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방식은 우리의 짧은 지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들의 역사관보다 넓습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월리암 케리의 일화입니다.
인도 지역에 선교하러 들어갔는데 각 지방마다 언어가 다 다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4억 인구인데 수많은 부족들로 이루어졌기에 인도 안에서 각 지역마다 언어가 다릅니다.
그들을 선교하기 위해서 성경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각 부족 언어로.
그래서 어느 정도 집대성을 해서 인쇄소에 맡겼는데 그날 인쇄소가 불이 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끝났다, 이제는 그의 선교의 모든 것은 문을 닫아야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영국과 유럽의 전역에서 그 소식을 듣고 각지에서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후원금 덕분에 월리암 케리는 시간을 갖고 더 성경을 정교하게 번역할 수가 있었고
그리고 더 훌륭한 성경책을 그가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실패했다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 순간,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달았던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어리석은 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것보다 더 지혜롭다.

온갖 이치와 지혜로 친구들의 입을 막았던 구약시대의 욥은 하나님 앞에 엎드러 겸허하게 고백합니다.

이제까지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렸던 자가 누구였습니까?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말을 했고 영문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였습니다.
당신께 대하여 소문만 듣다가 이젠 눈으로 뵙고 나니까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는가 돌아보며 회개하나이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베토벤, 유명한 작곡가이지요.
그런데 그가 귀가 먹었을 때 이제 모든 사람들은 그의 음악 인생은 끝났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잘 찾아보십시오. 베토벤의 음악은 귀가 먹은 뒤에 그때에 비로소 위대한 음악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의 육체의 귀가 막힐 때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서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남길 수 있는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생후 6개월 만에 안과에 가서 눈을 치료받다가 결국 시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의 인생은 시작하자마자 비극으로 끝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혀를 찹니다. 그 때에 장애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삶을 의미하느냐?
평생 동안 구걸하면서 살든지 다른 사람의 짐이 되는 인생 외에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의 육체의 눈이 감긴 그 자리에 하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는 대신 오히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만일 시력을 내일 당장 되찾을 수 있다 할지라도 나는 거절하겠다.
내가 천국에 가서 처음 보게 될 얼굴이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얼굴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력이 끝난 그 자리에 그녀에게 찬양시를 선물로 주셨고
그녀는 평생동안 8천 편이 넘는 찬송가 가사를 썼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수많은 곡 가운데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또는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인애하신 구세주여
바로 이러한 곡들이 그녀의 어둠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시력을 잃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다면 오늘 전 세계 수억 명의 성도를 위해서 불렀던 찬양은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장애라는 끝을 영광으로 새롭게 바꾸어 주셔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 사람으로 그녀를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신약성경의 절반을 쓴 바울은 간질병 환자였습니다.
종교개혁의 거장이었던 존 칼빈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일컬어지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연약함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로 역사의 남는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을 후세에 남기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할 때 정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도 살아가면서 힘겨운 순간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목회자이기 때문에 그걸 구체적으로 언급은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긴 시간 동안 기도했는데 또 무너졌습니다.
기도를 멈춰야 되는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기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말씀드리는 것은 사람들은 너무 쉽게 절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요기도회에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기도의 응답이란 가장 중요한 것은 끝과 시기를 우리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단 두 가지입니다. 믿고 가느냐 그리고 두번째는 뭐냐 정말 인내하느냐인 것입니다.

조금만 환경이 어려워도 금방 포기하는 
하나님은 인간이 끝났다고 하는 그 자리에 전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시는 분이라는 것
사람들이 포기하고 절망한 눈물을 흘리는 거기에서 
소망의 씨앗을 심는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같이 읽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믿습니까?
오늘 절망의 순간이 다가와도 좌절하지 마세요.
좌절은 우리의 짧은 생각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담겨 있다는 것

여러분, 하나님을 함부러 판단하지 마세요.
좁은 머리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제멋대로 비판하지 마십시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도로 소망을 이어가던 한 유대인 구두 수선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간수가 와서 그 수용소 안에서 구두 수선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던 그의 모든 도구를 부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노인은 절망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번만은 하나님께서 틀리셨습니다.
도구를 잃어버린 노인은 가장 힘든 하수구 처리장으로 다시 배치를 받아서 
오물을 뒤집어쓴 채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용소에 전염병이 몰아닥칩니다. 
그 때 독일군은 수용소에 있는 구두 수선공을 비롯해서 모든 포로들을 가스실로 보내서 모든 사람을 처단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물처리장 그곳은 너무 추악하고 더럽기에 그들이 그 대상에서 제외를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은 그 노인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제가 틀렸습니다. 도구가 부서진 것은 저주가 아니라 저를 살리기 위한 가장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 다 잊어도 좋아요.
요즘 제가 딱 한 가지 강조하는데, 이 한 가지만 잊지 마십시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이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내 삶의 끝이다... 절망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신호라는 것,
믿고 참음으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 가운데
정말 여러분도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삶에 어떤 경우가 여러분에게 있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용기를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꼭 잊지 않는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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