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
일시 : 2026년 5월 24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에베소서 6:1-3
설교 제목 : 부모님께 잘 합시다 (김상현 권사)
설교 실황 :
[엡6:1-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안녕하십니까. 김상현 권사입니다.
저는 평신도로서 여러분과 함께 무슨 말씀을 나누는 것이 은혜로울까 고민했습니다.
마침 5월이고 해서 5월이 가기 전에 5월이 가정의 달인데
오늘 본문에서 봤던 것처럼 부모님을 한번 생각하는 그런 말씀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제 주일마다 교회 나오지요. 그래서 교회에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교회 앉아 있는 것은 내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울에 우리 모습을 비춰보듯 말씀에 내 모습을 비춰보면서 나를 만나는 시간이 예배드리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제 우리 권사님이 읽으셨던 본문 한번 띄워 주시지요.
우리 다 같이 한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엡6:1-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우리가 이제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이 있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마음에 찔림이 있는 사람이 은혜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에 화살처럼 와서 찔리는 그러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봤듯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계명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첫 계명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은 하나님의 그림자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라는 말을 자주 쓰지요.
은혜는 무엇입니까? 은혜는 값없이 거저 주는 것이다. 거저 주는 선물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지요.
그런가 하면,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로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40조 개나 되는 세포와 270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이 몸을 거저 주신 겁니다.
그래서 무지해서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없다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 없고 부모의 은혜를 입지 않고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시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입니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날 때 손가락이 열 개이지 않습니까?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이다. 이렇게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 우리가 뱃속에서 몇 달 뿐이겠습니까? 그 열 달만 은혜 입는 건 아니지요.
우리가 태어나서 부모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는... 그 부모는 평생 동안 자식을 잊지 않고 삽니다.
그래서 자식은 늘 부모의 근심 덩어리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잘 모르지만 자식을 키워보면 알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부모의 근심 덩어리입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한번 하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도시에 계시고 집에 안 계셔서
시골에서 사는 저는... 초가집에 이엉을 우리 집은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엉을 올리지 못하니까 지붕에 풀이 자라고 골이 지고 그래서 비가 오면 방에 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런 밤이면 어머님은 마른 곳에 자식들을 이렇게 눕혀놓고 어머니는 그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앉아계셨습니다.
특히 이제 여름에 장마가 지면 밖에서는 비가 오면 방안에서는 폭포처럼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장마가 끝난 후에 누워서 천장을 보면 지붕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어서 그 사이로 별들이 보였습니다.
그때 저는 '비오는 온돌방'이라는 짧은 글을 써서 학교에서 발표를 했는데 온 반 애들이 그 글을 듣고 울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94세에 소천을 하셨는데 그때까지 저는 어머니 곁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셨습니다.
어머니의 방은, 제가 들어가는 문간에 있었는데요. 마치 제게는 지성소와 같았습니다.
그 어머니의 방에 귀를 기울이면 늘 기도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분은 일 년에 성경을 6번이나 읽으셨는데요. 어머니의 마음은 늘 자식을 하나님께 맡기는 그러한 신앙의 어머니였습니다.
병석에 누워계신 어머니의 마른 기침에서 아들을 염려하는 따뜻한 소원이 묻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또 어땠겠습니까?
제 이 시집이 어머니의 살강이라는 시집인데요.
2003년,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에 어머니께 헌정한, 어머니에 관한 시를 쓴 책입니다.
그때 제 어머니는 팔순이셨는데요. 딱 제 나이지요. 딱 팔순 잔치에 제가 어머니께 이 책을 드렸습니다.
그 때 제가 쓴 시가 이런 시가 있어요.
어머니 몸이 너무 아프시니까 기도하실 때 하나님 빨리 저를 데려가세요,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럼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기도하지마세요.
올 해 안에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신다는 어머니
새벽녘에서야 겨우 잠에 드신다.
어머니, 아픔의 세월이 삭을 대로 삭아 나는 당신 냄새를
누가 역겹다고 하겠습니까?
인자하시기가 그지없으시다가도
추상 같으신 당신 모습이 검버섯 핀 이 자그마한 얼굴이십니까?
그러나 어머니 올해는 안 됩니다. 기도하지 마세요.
실타래 같은 어머니의 잔주름을 내려다 보다가 문득
새벽녘에 창을 바라봅니다.
어머니, 혼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못하도록 창틈을 바릅니다.
이런 시인데요.
그때 제 마음은 하나님이 어머니 기도를 응답해서 불러가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을 했습니다.
그 옛적 이야기인데요.
아들이 노부를 깊은 산에 내다버리려고 지게에 어머니를 지고 갑니다. 고려장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의 지게 위에서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서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산에다가 계속 내려 놓습니다.
깊은 산에 아들이 어머니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들아, 내려갈 때 길 잃어버리는데 내가 솔가지를 꺾어놓았으니까 그것만 따라 가면 길 잃어버리지 않고 집에 갈 수 있다.
이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마음이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차에 태우고 저 시골에 갖다 버렸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신고를 해서 노모를 파출소에서 데려갔습니다.
그래서 경찰관이 물어보는 겁니다. 어디 사냐고? 어머니가 말을 안해요.
왜 말을 않겠습니까? 혹시 아들이 처벌 받을까봐 말을 안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들리는 이야기는 멀리가서 외국에다 부모님을 내려놓고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런 세태에 살고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는 그래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신앙의 척도는 교회에 잘 나오고 기도 열심히 하고 봉사 잘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그러면, 부모는 하나님의 그림자라고 아까 말씀드렸는데
보이는 부모에게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저는 이걸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찔려요.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마음이 찔립니까?
보이는 부모에게 못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이다.
그럼 본문으로 돌아가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되고 오래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잘 살기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곳에서 버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투잡을 갖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빚을 내서 부동산에 투기하기도 하고 또 주식에 투자하기도 하고
누가 돈을 벌었다고 하면 귀를 세우고 듣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원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하냐면, 돈을 따라서 지옥까지도 가겠다는...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돈이 많이 생기면 잘 사는 것일까요?
성경에 말씀하는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를 이야기한다기보다 행복한 것.
그럼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합니까? 돈의 무게만큼 근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산다는 것은 행복한 것을 의미하는데
성경은 부모에게 공경하라 그러면 행복하다 잘 산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돈 벌려고 막 발버둥치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가버려요. 그게 뭐 잘 산 게 아니지요.
그보다 부모를 섬기는 것이 공경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장수한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어떻습니까? 장수하기 위해서 막 좋은 것을 찾아먹고
건강에 좋다면 여기저기 가서 찾아먹고 보약을 먹고 비타민을 먹고 그러죠.
다 오래 오래 살려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오래 삽니까?
하나님이 이제 그만! 하고 오라고 부르면 끝입니다.
보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약속한 그 말씀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오래 오래 장수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부모에게 잘 하면 오래 산다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약속된 첫 계명입니다.
신앙이 있는 우리들은 그렇게 막 오래 살기 위해서 좋은 것 찾아먹고 하는 것보다
부모에게 잘 하면 오래산다는 말씀입니다.
제게 84세인 바로 위의 누나가 있는데요. 홀로 사세요. 매형이 돌아가시고
그런데 남매가 있어요. 아들은 소 닭 쳐다보듯이 무심하다고
그래서 내가 늙으면 딸에게 의지해야 되겠다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게 전화가 왔어요.
그런데 내가 몸이 좀 아프니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딸이 바쁘다고 그러면서 병원에 바라다주지 않았는데
그 딸이 키운 개가 아프니까 그냥 직장도 중간에 나와서 허겁지겁 개를 안고 병원으로 가서
그걸 보고 저희 누나가 울었대요. 내가 딸을 의지하고 살려고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애. 그렇게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누군가 그런 말을 했어요.
개한테 한만큼 부모에게 하면 정말로 복 받는다. 효자다.
개 목욕시키듯 부모님 씻겨드리고
개 이빨 닦아주듯 어머니 이 보살펴 주고
개 안고 다니듯 부모님 업어드리고
개 미용실에 가서 손질해주듯 부모님 머리를 빗겨드리고
개 잠자리 봐 주듯 어머니 잠자리를 봐 준다면
더할 것도 없이 개한테 한 것만큼만 한다면 효자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 친구가 갈마동에 나진 요양병원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입원해 있습니다.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가다가 요즘에는 2주에 한 번씩 갑니다.
저녁식사가 오후 4시에 한대요. 빨리 식사 차려드리고 거기 일하는 분들이 퇴근하려니까 저녁식사를 4시에 한대요.
나한테 나 4시에 저녁식사하고 그 뒷날 아침 9시에 아침을 먹으니까 너무 배고파.
그래서 제가 갈 때마다 1~2주일 동안 먹을 것을 싸들고 갑니다.
그런데 내가 물어 봤어요. 너는 딸이 넷이나 되는데 왜 안오냐?
그랬더니 얘가 갈 때마다 분노로 가득 차 있어요.
딸만 넷인데 딸이 아무도 안 온다는 거예요. 전화도 안 받는다는 거예요.
제가 지난 주에 물어봤어요. 왜 딸들이 안 오냐고 했더니
자기 막내 동생이 목사인데 저 전라도 광주에서 목회를 하는데 조그마한 교회를 하는데
그 막내동생의 아들 둘이 또 목사래요. 그런데 돈이 없어서 아버지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대요.
그런데 생각을 했대요. 내가 이제 남은 돈이 1억 5천인데 내가 죽을 때가 다 되었나 보다.
내가 돈을 그 조카들을 주면 둘이 이렇게 해서 월세라도 얻어서 목회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되어서 기도를 했대요. 그랬더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아~ 하나님의 뜻이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해서
큰 딸에게 전화를 했대요. 내가 혹시 죽으면 너한테 맡겨둔 내 돈 1억 5천,
그거 조카들 주라고. 내가 조카들에게 전화했으니까 오면 주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대요
그 뒤로 딸들이 다 이제 아버지가 우린 자식인데 뭐하고 조카에게 돈 주기로 했다고 서운해서
그 뒤로 발길을 끊고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 세태가 정말로 부모에게 뭘 바라고 부모가 줄 것이 없으면 내다버리는
그런 세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가면 똑같은 말을 해요.
나한테 글 잘 쓰냐고 해서 글 잘 써진다고 하면 그럴 거야.
자기가 딱 두 가지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너 건강하고 너 글 잘 써 가지고 책 써서 대박 나라고 매일 기도한다고 해요.
그래서 고맙다. 네가 기도해서 건강한가 보다 했어요.
원래 가족 면회시키고 그런데 저는 그 병원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가족은 안 오는데 친구가 계속 오니까.
제가 전화하면 목소리만 듣고는 아~ 친구 분이지요. 이야기하면서 면회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런데 이게 다 말세의 징조예요. 자식이 부모에게 못하는 것.
디모데후서 3장 1절에서 5절 말씀을 보면
[딤후3:1-4]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런 말씀이 있어요.
우리가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우리 이영하 권사님을 보면은요. 정말 신앙이 깊다고 생각을 합니다.
신앙의 척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어머니를 모시고 오잖아요.
식사 때 되면 어머니 앉혀 드리고 밥을 타서 어머니 갖다 드려요.
그래서 저는 정말로 장로님 내외분을 존경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부모님 어디 계십니까?
제가 시간이 되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지금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님에게 어떻게 해드리고 있습니까?
제가 80 평생을 살다보니 인생이란 한 권의 책과 같아서 죽을 때까지 한 쪽 한 쪽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일생에서 자신의 일생이란 책 속에서 부모가 없다면 세상 헛산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의 일생에 부모님이 없다면 세상 헛 산 겁니다.
제가 성당의 미사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뭐냐면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요 하는 그런 부분이 있는데
그게 성당 미사를 보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의 가슴에 이제라도 잘 하자. 부모님께 잘하자.
이렇게 가슴 치는 그런 마음이 있다면
오늘 제가 준비한 설교에 여러분들이 은혜 받은 겁니다.
이제 설교를 마칩니다.
일주일 내내, 아니 금년 내내, 더 욕심내면 일생 내내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부모님이 늘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쓴 칼럼 부문을 보면
카라 어머니의 여행이라는 칼럼을 하나 쓴 게 있는데요.
우리 마음에 그리운 사람이...
부모님 돌아가시면 그립지요. 그럼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것이지요.
내가 죽으면 비로소 그분도 죽습니다.
내가 죽으면 비로소 그리운 그 대상이 죽습니다.
딱 한가지만 더 말씀 드릴게요. 저희 어머니 이야기 또 하네요.
저희 어머님이 94세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새벽 2시에 저희 집 사람이 막 나를 깨워요. 어머니가 유언을 하시겠대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 방에 갔어요.
저와 제 집사람 불러놓고 어머니가 유언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 집사람에게 애미야. 니가 참 나를 일생동안 보살펴 줘서 고맙다.
그렇게 이제 칭찬을 하시는 이야기이고
저를 이렇게 보더니 너는 참 화로 같았어.
화로 있잖아요. 저는 유언 하면, 영화 같은 거 보면 좀 무게가 있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너는 화로 같은 남자였어 하셔서 제가 킥 웃었어요.
그랬더니 아니야. 네가 내 방에 들어오면 내 방이 환했어
그게 우리 어머니의 유언이었어요.
여러분들도 우리 어머니 마음처럼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