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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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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6월 7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이사야 40:27-31
설교 제목 : 끝까지 견디며 바라보라
설교 실황 :
[사40:27-31]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아침에도 어떤 분이 이야기를 할 때 앞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고 모든 것들이 희미하게 보인다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앞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품고 다른 세계를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제가 권면을 했는데 오늘 아침에 제가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특징이 불확실성입니다.
불확실성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뭐냐? 두려움을 안고 산다는 것
두려움이 많은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세상의 권력과 재물 뒤에 숨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재물과 권력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인생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것은 세상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갇히면 눈앞의 문제만 보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를 더 깊고 넓은 시야로 인도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힘들고 고단한 시간을 그저 버텨야만 하는 시련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시련의 시간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로 삼아야 합니다.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주님의 은혜가 흔들리는 여러분의 삶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그런 역할을 하길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한 상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인 모를 화재가 가게에 일어나서 하루아침에 그 가게가 전소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가게를 지나면서 참 아쉽다, 성공했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무너졌구나.
그런데 그 다음날 그 가게 앞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에 탔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일부터 새롭게 출발합니다. 주인 백.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상실해 버린 그 순간에서 다시 용기를 갖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그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면서
이 정도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물건을 외상으로 대주기도 하면서
그 상인을 도와서 그 상인이 금방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것들이 다 타버린 그런 잿더미 위에서 포기하지 않는 결단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처칠이나 링컨 같은 위인들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서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도 참 힘이 듭니다.
지난 주에는 베델교회 송재환 목사로부터 부고가 왔는데 그 부고의 내용이 자녀상이었습니다.
불확실한 삶의 자리 가운데 일어나 그 사건을 바라보면서 참 힘들겠다 라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희망을 보고 어떤 사람은 어둠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어두움 밖에는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가능성이 보이지만
불가능에 매몰된 사람에게는 늘 그에게 비춰오는 것은 안 될거야. 절망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됩니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세상이 미래라는 것을
그리스도인이란 눈 앞의 절망적인 환경과 자신의 연약함을 뛰어넘어
그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7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말 믿음이 뭐냐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을 한번 같이 읽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 이사야서 40장은 유대백성들이 가장 고통받는 시절에 선포되었습니다.
약 2,500년 전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했고 백성들은 흩어졌으며 지도자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70년의 세월이 흐르는데 광복의 희망은 희미해졌고 세월이 갈수록 기대를 품기에는 더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고국을 기억하는 1세대들은 세상을 다 떠나갔고 2,3세대만 남은 상황 속에서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지쳐 있는 이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신 것이 바로 이사야서 40장부터 66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40장 말씀을 통하여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 가운데 첫 번째는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을 향하여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중 낙심하던 사람들 가운데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난 날 자신들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절망하고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우리의 죄 때문이야. 우리는 망해도 싸 라고...
이들은 절망 가운데 자기의 죄를 돌아보면서 미래를 아예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사40:1-2, 개역한글]
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영국의 한 남자는 젊은 시절에 양을 훔친 대가로 이마에 ST, 즉 Sheep Thief, 양도둑이라는 낙인을 찍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이마를 바라보면서 멸시에 그리고 그에게 온갖 핍박을 강하게 몰아부칩니다.
그럼에도 그는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오히려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이제 열심히 살아감으로써 그들에게 갚아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을의 가장 고된 일을 담당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병든 노인들과 고아들을 돌보며 수십 년 간을 묵묵히 살아갑니다.
세월이 흘러서 백발이 된 노인을 본 한 여행자가 아이에게 묻습니다.
저 노인의 이마에 새겨진 ST가 무슨 의미입니까?
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마을 어른들은 저게 Saint, 성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유대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회개보다는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과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는 망해도 싸!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서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는 정답게 내 백성에게 말하라 너희 모든 죄가 다용서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죄의 대가를 다 치르었느니라
그러니 희망을 가져라, 용기를 가져라.
많은 사람들이 역경을 당할 때 죄의식에 사로잡힙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지만 때로는 내 삶 속에 정녕 몰아치는 그 아픔의 순간이 다가올 때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정죄함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내 스스로 죄의식 때문에 고통을 더 가중시키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가지를 잃어버렸더라고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특징은 뭐냐? 무한하시다는 겁니다.
뭐가 무한하십니까? 사랑과 은혜가 무한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로 설 수 있기만 한다면
우리 인생이 범한 모든 죄도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허물로 인해서 내려졌던 인생의 외로움을 다 거두어 주시며
여러분의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긍휼의 하나님이라는 것
저는 여러분들이 지난 날 어떤 죄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긍휼의 하나님을, 용서의 하나님을 꼭 잊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빕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서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구원해 주실까 기다리다가 지쳐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어.
하나님은 결코 우리 자신들의 사정을 돌아보시지 않는 분이야, 라고 절망합니다.
이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0장 27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40:27]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500년 전 바벨론 땅의 유다 백성들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
내 사정을 돌아보시지 않는다, 나를 잊어버리시고 계신 것이 아닐까, 똑같이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잊었다고 통곡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서 이사야서 49장 14-15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고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나며,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겠다.(이사야 49장 14~15절)
제가 목회하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상담 이야기 가운데서 많은 부분들을 이야기할 때 자녀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여러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다른 아이들보다도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좀 부족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부족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아이, 내 아이... 내 아이가 정말 어떻게 될까 울부짖으며 통곡합니다.
아, 거기서 느껴지는 것이 부모란 저거구나.
부모에게는 부족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뭐만 생각합니까? 내 아이, 내 아이.
부모에게 있어서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존재, 끊임없이 추구하는 존재가 아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면서
하나님도 우리를 향하여서 그러한 모습을 갖고 계시구나.
그래서 성경에 내가 하나님을 잊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너를 잊지 않는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이 이 말씀 따라 살아갈 때, 지치지 않게 하시고
신앙이란 모든 것이 한 순간 한 순간 바로 바로 이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달라요.
우리 김태성 안수집사도 빨리 빨리 치료의 여정이 이뤄져서 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의사는 생각이 달라요. 기다려야 됩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게 빠르게 이뤄지길 갈망하는데
그러나 의사의 입장에서는 그 환자가 정확하게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조급함과는 달리 자꾸 딜레이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이 뭐냐
하나님이 포기한 게 아니라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 그 한 가지 사실만을 기억하면서
지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 런던 한 길 모퉁이에서 아버지가 빚으로 감옥에 갇혀 집안 살림을 도우려는 구두닦기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구두를 닦으면서도 늘 밝은 노래를 부르면서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이 그에게 묻습니다. 구두 닦는 일이 뭘 그리 즐겁느냐?
그 소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 저는 구두를 닦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세계적인 작가 찰스 디킨스입니다.
아무리 먹구름이 짙어도 그 뒤에서 빛나는 태양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련 속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어린 찰스 디킨스가 반짝이는 구두 위에서 희망의 별빛을 보았던 것처럼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꼭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자신의 무능을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세 번째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환경이 너무 어렵고 환경을 헤쳐 나가기에 너무 자기 자신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문제는 너무 큰데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다는 것, 그래서 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오늘 본문입니다. 자 같이 읽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사40:28-31]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창세기 첫 머리에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피곤치 아니하신 분이시며
피곤한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오늘 성경 속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능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신앙생활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에 실패한 사람은 모든 일에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
그 한 가지 꼭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한 의대 교수가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은 외도, 아내는 심한 폐결핵, 이 가정에 네 아이가 있는데 한 아이는 죽고 세 아이는 가망이 없다.
그런데 그 아내가 또 임신을 했다. 뱃 속에 있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한 학생은 의료윤리에 의존하여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낙태해야 합니다.
그때 그 교수는 그 학생을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네는 지금 그 유명한 베토벤을 죽인 거야.
베토벤은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어렵다고 함부로 인생을 판단하지만
삶은 우리가 보는 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잖아요.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곳에서 기적을 만드시는 분이신 것을 잊지 않는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당당하게 끝까지 견디며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바로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적의 미래를 열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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