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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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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6월 28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열왕기하 7:1-4
설교 제목 : 은혜의 문을 여는 결단
설교 실황 :
[왕하7:1-4]
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이제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신실한가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흐트려졌던 마음을 다시 한번 부여잡고 하나님 앞에 바로 다시 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성전임을 깨달아 어느 곳에 있듯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의 미래는 바로 우리의 모습 속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향기와 평화의 기운이 임하는 그런 자리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과는 달리 수십 년 전만 해도 한센병은 하늘이 내린 천형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병은 두 가지 커다란 고통을 줍니다.
첫째는 육체적인 고통입니다.
나균이 신경 조직을 마비시켜 나가기 때문에 코가 떨어지고 손가락이 없어져도 고통을 못 느낍니다.
문둥이 시인 한화운 시인이 그의 시 가운데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손가락 한마디
밤새 머리를 긁다 땅에 떨어진 손가락 마디를
아깝게 붕대로 싸서 주머니에 넣으며
날이 따뜻해지면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겠다
라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고통은 두 번째, 정신적 고통입니다.
철저한 고독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염병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했고
아무리 높은 지위와 재물이 있던 사람도 가족과 사회로부터 쫓겨나 이름마저 잊힌 채 살아가야 했습니다.
다른 병은 가족의 간호를 받지만 문둥병은 홀로 괴롭게 있다가 죽어가는 고독의 병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화운 시인은 보리필이라는 시에서
인간사 그리워 그리워 하며
절절한 외로움을 부르짖었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는 나병 환자의 두 가지 선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선택은 목숨을 건 선택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은 성문 어귀에 나병 환자 네 사람이 있다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채 성문 밖에서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을 먹고 생명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2,800년 전 아람왕 벤하닷이 사마리아성을 포위하면서 성 안의 보급로가 끊기고 성 내부조차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러니 성 밖의 문둥병자들은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네 사람은 생명을 걸고 결단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 가만히 앉아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성읍에 들어가서 죽을 것인가?
여기서 죽는 것, 이제 성 안에서 죽는 것, 모두 어차피 죽는 것인데
그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목숨을 건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준비하셨습니다.
아람 군대는 갑자기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군대는 연합군대가 이제 왔구나 하면서 살 길을 찾아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나병 환자들은 성 안에 들어갔을 때 싸움도 없이 군인들이 남기고 간 풍족한 양식들을 그들은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완벽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네 문둥병자가 싸워서 얻은 승리가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그들의 능력이나 지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한 시간에 아람 군대에게 역사하셔서 그들은 은혜로 풍족한 양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끔 착각합니다.
내 머리가 좋아서 성공했다고
하지만 여러분이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 모두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 삶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문학계의 거장이었던 이어령 교수는 평생 무신론자로 살았지만
인생의 마지막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다고 고백하며 세상을 떠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 그는 날카로운 지성과 학문을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딸인 이민아 목사가 실명 위기와 암 투병, 그리고 사랑하는 딸을 먼저 떠나보내는 깊은 아픔을 겪으면서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생 황혼기에 이르러 그는 마침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자신 또한 암투병하며 죽음에 마주하는 순간까지 깨달은 진리를 그는 전하였습니다.
특히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병상에서 눈물로 남긴 고백은
평생 지성으로 살아온 그의 삶과 대비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줍니다.
나는 내 평생 내 지식과 힘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소.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와 보니 그 무거운 가방은 내가 맨 것이 아니었소.
뒤에서 나를 안고 가방까지 받혀 들고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분의 은혜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니
돌아보니 내 삶 가운데 은혜 아니었던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삶의 모든 순간이 은혜였음을 깨닫자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마치 어머니가 부르는 집으로 돌아가는 소풍처럼 느껴졌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나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똑해서 성공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아주 잘해서 여기까지 살아남은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136편에서 무려 26번이나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러분, 우리가 계획을 잘 세운다고 해서 모든 일들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할까?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목회의 여정 가운데 한 젊은 날에는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어떻게 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또 예배 이후에는 성경공부를 전교인을 대상으로 파트를 나누어서 시도해 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때부터 느낀 것이 뭐냐? 아! 은혜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구나.
그래서 성경말씀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것.
그리고 은혜를 저에게 허락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했던 그 순간, 즉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교회를 싸매시고 이루어가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에 대해서 염려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면서 오늘도 여러분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 선택은 은혜를 나누는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선택은 살기 위한 도박이었습니다.
두 번째 선택은 매우 성숙하고 아름다운 선택이었습니다.
네 문둥병자가 진영에 도착하자 남겨진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그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금은보화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배고픔을 떠나서 안정되자 그들의 머릿속에 여전히 굶주리고 있는 동족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네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합니다.
[왕하7: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여러분, 그들은 변변한 대접조차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발견한 보물을 숨겨두면서 풍족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깨달았습니다. 이건 잘못된 일이다.
저 밖에는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만 풍족함을 누리는 것, 그건 옳지 않도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실 인생은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달음을 실천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중요한 건,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런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멋있는 인생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행동이 없음으로 그 모든 말들은 결국 사라지는 말이 되고 맙니다.
네 문둥병자들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밤중에 달려가 그 모든 소식들을 자기 동족들에게 전합니다.
비록 육신은 병들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선한 양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외모는 초라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어떤 사람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지금 그 위기 속에 있습니다.
빈부 격차의 극심한 심화 속에서 오늘 이 세상 가운데 낙심하며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4년 일이죠. 2월 어느 추운 겨울날 서울 송파구 석촌동 한 지하 단칸방에서 60대 어머니와 30살을 넘긴 두 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비극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12년 전에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막대한 병원비를 빚으로 남기게 되었고
세 가족은 그때부터 세 가족은 벼랑 끝에서 고달픈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박씨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렸고 큰 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인해 병을 앓고 있었고 작은 딸은 만화작가를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그래서 세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가정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어머니가 빙판길에 쓰러져 팔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유일한 수입원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가 쓰러지자 집세와 공과금이 밀렸고 약값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복지 제도는 부양가족이 있거나 몸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은 지원받기가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우리는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점점 더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번개탄을 피우고 마지막으로 하얀 봉투 하나에 현금 70만원과 짧은 편지를 썼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며칠 뒤 집주인에게 발견된 세 모녀의 방 안에는 번개탄 연기가 여전히 가득했습니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없었지만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집세와 공과금을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묻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지하방에서 누군가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있지 않을까?
작은 도움만 있어도 한 달을 더 살 수 있는 절박한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남보다 조금 더 가졌다고 해서 타인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결코 선한 행실이 아니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을 잘 세우고 올바른 선택을 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문둥병자들도 자신의 처지 속에서 민족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받은 우리는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 저는 목회하면서 여러분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화려한 음식을 별로 제 삶의 자리 가운데에서 가져 본 적이 없는 그런 모습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항상 저의 모습 가운데에서 여러분들이 바라볼 때 목사님이 추하지 않나, 심지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삶의 원칙이 있습니다.
내가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옷을 입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다 보면 그 삶을 살아가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작지만 그 안에서도 작게 살아야...
제가 늘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정말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작은 자를 돌보고 살 수 있다고 하는 것.
먹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잖아요.
오늘 살아있는 생명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저는 목회 가운데 모두가 그렇습니다.
절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난 때문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쓰러지는 사람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우리 공동체는 병든 공동체라는 것.
그래서 지난 번 제직회 때 교회가 결의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너무 힘겨운 가정은 교회가 책임지고 돌보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 고통받는 이들에게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어 주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 문둥병자가 가졌던 모습들
내가 가진 것,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정말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 민족 안에서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한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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