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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2 주일예배 - 숨어계신 하나님**

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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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7월 12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출애굽기 3:13-14
설교 제목 : 숨어계신 하나님
설교 실황 : 

[출3:13-14]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3세기에 뛰어난 신학자이고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그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비를 묵상하면서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모래에 구멍을 파고 한 아이가 뭔가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 한 번 그림을 띄워 주시길 바랍니다.

그때 그 꼬마는 신학자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지금 바닷물을 퍼서 이 작은 구멍에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합니다.
그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이야,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야.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어 라고 말하였더니
그 아이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잖아요. 선생님의 작은 지식의 머리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담으려고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토마스 아퀴나스는 큰 깨달음을 얻고 고개를 숙였다가 고개를 드는 순간 그 아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뭡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려 하면 갈수록 하나님을 모르겠다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때마다 어떤 분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신앙에 회의가 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마다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어 왔는데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적이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될 부분은 하나님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만 머물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 불신앙과 공존하고 있는 신앙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에서 하나님을 아는 일,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고 하는 그러한 겸손한 인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저의 신앙 고백이에요.
사실은 여러분들이 저에게 상담도 하고 그렇습니다.
왜 합니까? 목사님이 많이 알 거니까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 무엇이냐?
신앙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고백은 그겁니다.
정말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신 분이기 때문에 저의 작은 머리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연구하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한 노학자가 있었습니다.
임종을 앞둔 그에게 제자가 찾아와서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스승님, 평생 하나님의 신비를 연구했는데 지금 어떤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때 노학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자네 앞에 고백할 수밖에 없네.
평생 쌓은 지식도 하나님의 신비 앞에서 먼지 한 톨 만한 작은 것에 불과하였다는 것입니다.
충격을 받은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스승님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노학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아니네, 이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라네.
내 작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제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되었다네.
하나님을 모른다는 고백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더 크신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바람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도라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저를 주님의 품에 안아 주옵소서.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모른다, 그것은 믿음이 없다는 고백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나를 넘어서서 그분에 대한 세계가 얼마나 크신지 그것을 인정하는 하나의 모습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인생계획이 분명했던 한 부상병이 병상에서 간절히 기도했던 기도문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 한번 같이 한번 읽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겸손을 배우도록 연약함을 허락하셨습니다.
행복을 위해 건강을 구했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하도록 질병을 허락하셨습니다.
부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지혜를 얻도록 가난을 허락하셨고, 
인생을 마음껏 즐기기를 원했지만, 삶 자체에 감사하도록 생명을 선물하셨습니다.
그의 계획과 시간표는 모두 어긋났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눈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구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모두 받았습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장 복된 길로 인도받았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계획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더 좋은 것으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

하나님께 의문을 제기한 대표적인 인물이 본문에 나타난 모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 다 해소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제한된 이해로 하나님을 만나도 온전히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은 모세의 소명 이야기입니다.
호렙산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자기의 뜻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종으로 모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그분이 어떤 분인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백성들이 너를 보내신 하나님이 누구냐 물으면 어떻게 내가 대답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자신을 이렇게 알려줍니다.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밝히신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 영어로 I am who I am. 곧 나는 곧 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 의해서 존재되는 분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해서 영원히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대상을 알아가죠.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경험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논증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경험하면서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유명한 랍비 마르쿠의 어린 손자 에이엘이 울면서 달려왔습니다.
랍비는 그 이유를 아이에게 묻습니다.
그때 아이는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는데 내가 저 끝에서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기를 찾다가 포기하고 그냥 가버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서글프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랍비가 생각을 합니다. 아 하나님의 마음이 이러하겠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를 찾기를 기다리시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다른 곳에 가버리는구나.

숨어계시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떠나셨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도록 부르시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처음에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어머니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로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성경교사 하워드 헨드릭스 박사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수업에서 찰리라는 아이가 링컨의 업적과 년도에 대해서 줄줄이 외웠습니다.
그때 수업을 참관했던 노신사가 그 아이에게 묻습니다.
너는 정말 링컨에 대해 아는 게 많구나. 그런데 너는 링컨 대통령의 눈물을 본 적이 있느냐?
링컨 대통령이 기도할 때 손이 떨리던 그 모습을 잡아보거나 또는 그분의 숨결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찰리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는 것은 지식의 정보였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신사는 링컨의 개인 비서였습니다. 
링컨에 대한 지식은 잘 모른다 할지라도 링컨이 울고 웃었던 그 삶의 모습을 그는 직접 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링컨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안다고 해서 하나님을 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 그것은 사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맺어질 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길은 그분의 음성으로 귀를 기울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는 이유는 삶에서 극적이고 비범한 사건만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에서 극적인 장면만 생각하고 찾아갑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부분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집회에 참석해서 황홀한 체험만을 집중하다면
그런 사람은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부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 여러분, 일상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특별한 일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새집으로 이사가면 그 만족감이 얼마나 갑니까? 한 석 달이나 갑니까?
승진이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뿐, 이내 또 스트레스로 시작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일들을 통해서만 기쁨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의 자리에 계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인 마틴은 가족을 모두 잃고 슬픔 속에 잠겨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날 성경을 읽다가 잠이 든 그에게 주님께서 음성을 들려줍니다. 
마틴아 내일은 내가 너를 찾아갈 거야 라고. 너를 만나러 가겠다는 겁니다.
다음 날 마틴은 설레는 마음으로 창문을 바라보면서 일을 하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뜻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추위에 떨며 눈을 치우는 청소부, 얇은 옷을 입고 굶주린 아기를 안은 어머니 그리고 사과를 훔치다 붙잡혀 울고 있는 소년
마틴은 주님을 기다리는 중에 그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노인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어머니에게 수프와 외투를 내어주었고 소년에게는 사과 값을 대신 치러주며 용서를 구하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해가 저물도록 마틴은 하나님을 기다렸지만 그의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얼거립니다. 결국 오늘도 주님은 오지 않았구나. 
바로 그 순간 방 안의 어두운 구석에서 낮에 만났던 노인, 어머니, 소년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합니다.
마틴, 내가 누군지 모르겠느냐? 바로 내가 너를 찾아갔단다.
놀란 마틴은 펼쳐진 성경을 바라보자 이런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제서야 마틴은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특별한 모습으로 멀리서 오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 나의 삶의 자리에서 가장 작고 평범한 모습으로 이미 나와 함께 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슬퍼하는 자와 병든 자, 죄인들의 곁에 가셨습니다.
바로 그 자리가 주님을 만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특별한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일상 삶의 자리에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고통스러운 삶의 고통의 자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강조하는 것,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자리, 모든 곳에 동행하고 계십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겁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의 길 가운데에서 늘 생각하는 것이 뭐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 가운데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좁은 머리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없지만 
나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삶에 좋은 결과를 주신다
이 한 가지 사실만을 여러분이 늘 머릿속에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중요한 겁니다. 내 뜻이 아니라 나보다 크신 뜻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그분은 나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반드시 우리의 삶의 자리 가운데 하나님이 뜻한 좋은 결과를 나타내주시는 분이라는 것
그것을 여러분들이 신앙고백으로 삼고 오늘의 삶의 자리를 이겨나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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