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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6 주일예배 - 이것이 복음이다 2**

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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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7월 26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누가복음 15:3-7
설교 제목 : 이것이 복음이다 2
설교 실황 : 

[눅15:3-7]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 곡은 김태성 안수집사가 20년도 더 된 곡인 것 같습니다. 
그런 시절에 예지의 능력이 있었는지 이 곡을 작사, 작곡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가대가 부르고 있는데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합니다. 
하나님, 지금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 나의 삶이 다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생명의 하나님이신 것을 나는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 도전할 겁니다.
그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고백대로 그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목자가 어떻게 잃은 양을 찾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잃은 것을 찾아낼 때까지 찾아내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표현은 찾아낼 때까지라는 것입니다.
목자는 한 두 번 찾아보다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며칠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고 돌아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는다는 것
이것이 목자의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의 사랑은 조건이 있습니다.
사랑하다가 실망하면 돌아서고 배신하면 관계를 끊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찾으십니다.

우리를 향한 목자의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첫째로, 목자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는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험한 산을 넘어야 합니다. 깊은 계곡을 내려가야 합니다.
가시덤불을 헤쳐야 합니다. 맹수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밤이 되면 자신의 생명도 위험해집니다.

그러나 목자는 자신의 안전보다 양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1986년 러시아 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정부에서는 그곳 주민들에게 다 그곳을 떠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버스가 들어오고 모든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그 때에 그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목회자가 타지 않습니다.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훗날 건강한 모습 가운데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목사님은 안 가십니까?
그때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곳에 거동이 불편해서 그냥 머물러 있는 노인들과 약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이곳을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들이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는데 나는 그들을 포기하고 떠날 수가 없다는 것
그는 방사능의 위험으로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끝까지 그들에게 음식을 공급해주기 위해서 자신의 안위보다 양들의 생명과 평안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바로 그러한 모습 가운데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까지 걸어가셨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잃은 양을 끝까지 찾아오신 사랑의 발걸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둘째로 목자는 잃은 양을 꾸짖지 않습니다.

드디어 목자가 양을 찾았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왜 도망갔냐?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다시는 그러지 마라, 이렇게 꾸짖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즐거워 어깨에 매고 라고 말입니다.

이 한마디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양은 이미 지쳤습니다. 굶주렸습니다. 상처를 입었습니다. 스스로 걸어갈 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을 걷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어깨에 매고 갑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여러분, 새끼 원숭이는 이동할 때에 어미 원숭이를 자기 힘으로 꼭 붙들고 갑니다.
자기 힘으로 붙들지 아니하면 새끼 원숭이는 떨어져서 그것으로 죽고 맙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종교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는 다릅니다.
어미 고양이가 입으로 새끼 고양이의 덜미를 물고 그 고양이를 이동시킵니다.
잠이 들었든지 힘이 빠지든지 상관없이 목적지까지 이끌고 갑니다.
구원은 새끼 원숭이처럼 우리가 악착같이 붙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연약하고 울부짖을 뿐인 우리를 하나님이 새끼 고양이를 안으시듯이 우리를 전적인 방법으로 안고 가신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 힘으로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고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품으로 데려가기 위함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너무 많이 실패했다. 하나님도 나를 포기하셨을 거야.
이제는 돌아가기 어렵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포기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도 다시 손을 내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빵을 훔친 죄로 19년간 복역한 장발장은 자신을 환대해 준 존 마리엘 신부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납니다.
결정적으로 경찰에 체포되어서 다시 신부에게 데려와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때 신부는 그를 향하여서 은촛대까지 내가 주었는데 왜 가져가지 않았느냐 라고 하면서
낡은 은촛대를 그에게 주며 경찰에서 풀려나게 합니다.
그리고 신부는 장발장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의 형제여,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 값을 치렀습니다.
이제 이 은제품을 가지고 가서 정직한 사람이 되십시오.

신부는 장발장의 도둑질 과거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은촛대를 쥐어주며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갈 미래를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베드로 자신은 나는 실패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세 번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베드로의 과거를 들추지 않습니다. 미래를 맡기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실패보다 은혜가 큽니다. 죄보다 용서가 큽니다. 절망보다 소망이 큽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전하면서 교회를 일구어 온 사람으로서 참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하여서 이렇게 살라고 실패를 지적하기보다 그의 삶의 미래를 열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는 어떻습니까?
심지어 지난 날의 모든 어두운 과거까지 회상하며 너는 그런 사람이다. 
너는 이 공동체에 있어서는 안 돼 하고
여러분, 그리스도의 품이신 교회를 떠나서 어디에 거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공동체가 품어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에 가서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 말씀 준비하면서 제발 우리가 진짜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짜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입술로는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면서 삶의 자리 가운데에는 오직 자기 자신, 거기에 얽매여서 남을 정죄하고...
그 교회가 생명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저는 교회가 그냥 이야기를 담고 그 이야기 속에 묻혀 살아가는 존재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자기를 부인했던 베드로를 품었던 그 모습 가운데에서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 속에서 길을 여시는 예수님을 찬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넷째, 양을 품에 안으십니다.

오래전 많은 성도들이 사랑했던 발자국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평안할 때 길을 걷던 모래사장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치자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발자국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은 내가 가장 힘든 때 왜 나를 혼자 버려두셨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 발자국은 네 것이 아니라 너를 안고 걸어간 내 발자국이니라.

비록 이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가 아니지만
선한 목자의 사랑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지친 성도를 버려두지 않습니다. 
품으십니다. 안으십니다. 끝까지 책임을 지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6장 4절에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다.

나는 너를 품는 하나님이다.

저는 김태성 안수집사의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많이 듣습니다.
우리나라의 최고의 명장이라는 사람이 김태성 안수집사의 근황을 알고
어떤 사람이 카페에 우리 함께 위로하고 사랑하며 서로를 껴안고 갑시다 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명장이라는 사람이 이전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그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업의 길을 걸어갔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김태성이는 잘못된 인생을 살아와서 저런 고통을 겪는 거야.
일일이 글을 올린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너도 김태성이와 길을 걸어가면 너도 그런 고통을 받을 거야. 

이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민낯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 가장 존경받는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적어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너무 아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그것이 그 사람만의 모습이 아닌가?
오늘 우리의 모습과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 공동체 안에 힘겨운 사람이 있으면 
제발 묵묵히 껴안고 함께 걸어가십시오.
그게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의 몸을 세우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망치고 있다는 것.

여러분, 제가 오늘 '제발'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게 애절합니다.

숫자가 애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애절합니다.
제발 진짜로 살자.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혹시 힘이 드십니까?
삶의 자리가 너무 힘들어서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어렵습니까?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찾고 있다. 나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어깨에 매고 돌아가겠다.
이것이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자녀를 찾아오시는 사랑, 품어주시는 사랑, 끝까지 책임지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삶의 자리 가운데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목자되신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를 찾아와 품으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는 선한 목자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어떤 절망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김태성이가 다시 일어나리라고 확신합니다.

나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이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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