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 말씀을 통해 지체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성껏 정리하여 나눕니다
-------------
일시 : 2026년 9월 27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 본문 : 로마서 1:18
설교 제목 : 하나님의 진노
설교 실황 :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여러분에게 "명절을 잘 지내셨습니까?"라고 묻지 않아도 오늘 보니까 기도자가 차분하게 기도를 의미 있게 드리는 것을 보면서 명절 잘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렘브란트의 명화 탕자의 귀환이라고 하는 그 작품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그려낸 작품이라고 이야기 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오는 탕자의 모습을 발견한 아버지는 맨발로 달려 나가서 그를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탕자의 더러워진 옷이나 또 허물이 묻은 그러한 모든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끌어안고 있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말년,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의 특징 가운데에서 손에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작품을 보면 오른손은 아주 여린 여인의 손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 여린 손은 등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왼손은 아주 투박한 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 손은 상처받은 그를 받쳐주고 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랑이 뭔지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찬양할 때에도 사랑을 노래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사랑의 하나님을 부릅니다.
힘들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그 바탕 위에서 우리는 딛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오늘 로마서 1장 18절, 뜻밖에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명절날, 특별히 오늘은 또 우리 정수경 안수집사님이 어쩌면 마지막 예배를...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이사를 가게 되어 마지막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이 주제가 된다는 것, 참 부담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왜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이 첫마디가 되고 있을까?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는 중요한 복음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구원의 기쁨을 알려면 먼저 자기 자신이 어떠한 모습 가운데 있었는지 그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젯밤에도 두 분의 성도님과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내가 이런 모습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의 자기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오늘 나의 모습을 또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사에게 심각한 병에 걸린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환자의 다리는 이미 감염이 되어서 겉보기에는 붉은 정도로 부어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판단할 때에는 이미 속이 썩어가고 있었고 결국에는 이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십시오.
의사가 환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냥 한숨 자고 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듣기에는 좋죠. 그런데 만약에 그대로 방치한다면 목숨을 잃어버릴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진짜 의사는 환자에게 차가운 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지금 다리가 썩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수술을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과정을 이야기해 줍니다.
수술 직후에 상처가 아프고 의사의 처방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건강을 완전히 되찾을 때 환자는 깨닫게 됩니다.
의사가 자기에게 아픈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기에게 아픈 진실을 알려주고 치료의 길로 이끌어준 바로 그 엄중한 경고가 그리고 수술이 나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진짜 의사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사랑은 잘못된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요즘 목회를 그렇게 하고 있는가? 참 부끄러웠습니다.
성도들이 싫어하기에 좋은 것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착각 속에 있습니다.
나는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결국은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릇된 길에 머물러 있는 그런 목회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이 말 참 들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왜 필요한가? 십자가가 왜 필요한가? 예수님의 피가 왜 필요한가?
그것을 알려면 먼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를 제대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복음의 문을 열면서 먼저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겁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진노하십니까? 성격이 급해서 그렇습니까?
조금만 잘못해도 화를 내시는 분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화와 하나님의 진노는 다릅니다.
사람의 화는 때때로 자기 자존심을 건드리기 때문에 생깁니다.
내가 손해를 봤기 때문에 화가 납니다.
내가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화가 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납니다.
그래서 인간의 분노는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고 성경 속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보시고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박국 1장 13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합 1:13, 개정)
여러분, 여기에서 선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악을 싫어하심을, 죄를 미워하심을, 불의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
왜 그렇습니까?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예수 믿으면서 이것을 잊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니까 나는 어떻게 살아도 괜찮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동시에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사랑 때문에 죄를 그냥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하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가로등 아래'라는 책 속에서 제가 읽은 이야기입니다.
나무 아래서 한 아이가 어머니에게 호된 꾸중을 들으면서 무릎을 꿇고 어머니에게 눈물로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매를 들고서 마치 내려칠 듯하지만 차마 때리지를 못합니다.
그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참 엄한 어머니네. 아이를 저렇게 울릴 수 있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는 아이가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세상의 진짜 거친 폭풍우를 만났을 때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행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무관심은 눈물이 없지만 사랑은 눈물과 훈육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3장 12절 말씀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 3:12, 개정)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많이 징계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믿지 않는 이방 민족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 징계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워서입니까?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뭐냐? 함께 읽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를 향해 내리시는 거룩한 반응이며, 사랑하시는 자를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손길입니다.
여러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를 향해 나타내시는 손길이다.
여기에 우리의 질문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진노하신다면 왜 악한 사람들은 잘 살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업도 더 잘된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돈도 많고 자녀들도 잘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을 믿으며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힘든 일을 겪는 이유가 뭐냐?
그렇게 생각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정말 우리를 보고 계십니까?
정말 진노하시는 분이십니까?
왜 악한 사람들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진노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노하면 벼락 맞거나 병이 생기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사람이 죽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는 이런 것들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진노는 뭐냐?
네 마음대로 하라. 네 마음대로 하라.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려두셨다는 것이 로마서 1장 가운데 세 번 기록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롬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롬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 그대로 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노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버려둔다, 그때부터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한 교도관의 이야기입니다.
청소년을 다루는 교도관인데 한 엄마가 청소년 시설에 있는 아이를 면회를 옵니다.
그때 그 아이가 어머니를 향해서 외칩니다.
엄마, 제발 나를 가만 놔둬. 나는 내 맘대로 살고 싶어
아무리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을 해도 짜증을 부리면서 폭언을 쏟습니다.
그때, 엄마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 속에서 그래. 나는 너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버려둘게. 이제 끝이야라고 하고 돌아갑니다.
그 소년은 자기 방으로 돌아오면서 아, 이제는 나는 자유다라고 외치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아이의 마음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가 이제 나를 포기했구나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나를 변호해 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구나라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이제 자기 인생이 지옥 같은 삶이라는 것을 그가 생각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부모의 잔소리가 아니라 부모가 내게 관심을 끊어버리고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 죄를 아무리 지어도 양심에 가책이 없고 잘못된 길로 가는데 아무런 제동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데도 마음이 편합니다. 사람은 그것을 형통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묻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가?
두 번째는 진노를 쌓아두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즉시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착각하고 있어요.
지금 내 인생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괜찮아라고 말입니다.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개정)
무슨 이야기입니까? 마치 댐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댐은 물이 조금씩 흘러들어와 차기 시작합니다.
내일도 들어옵니다. 한 달 후에도 들어옵니다.
계속 쌓이던 물이 어느 날 수문이 열릴 때 비로소 사람들은 압니다.
그동안 물이 쌓여 있었구나라는 것을 말입니다.
죄도 그렇습니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바로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봐라. 하나님 아무 말씀하지 않잖아.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잖아.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으로 계속 죄를 쌓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들은 가장 무서운 말이 무엇입니까?
너 이리 와, 하면서 당장 혼을 내면 무섭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말, 즉, 무슨 말입니까?
그래 어디 두고 보자라는 것.
당장 맞고 끝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한데
어디 두고 보자라는 말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을 하나님의 무관심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은 심판할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진노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가만히 덮어두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다윗,
그 왕이 가장 편안한 시절에 밧세바라는 여인과 더불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때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이었던 우리야를 전쟁터에 보내서 전쟁에서 그가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꾸미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아무도 모르니까 이제 끝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그 말씀 속에서 다윗이 지었던 은밀한 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완전범죄라는 것, 그것은 우리 눈에만 성립될 뿐입니다.
세상이라는 거울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는 분,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사람에게서 숨겨졌다고 하나님께 숨겨졌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배우자도 모를 수 있습니다.
자녀도 모를 수 있습니다. 교회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롬2: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은밀한 것을 심판하는 날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까지 우리의 드러나지 않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것을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들키지 않았다고... 꼭 기억해야 될 것은 그 죄를 성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빨리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죄라는 건 오히려 사람에게 들키는 것이 복이다.
죄가 드러나 부끄러움을 당하고 회개하는 것이 오히려 은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친히 그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롬 5:9, 개정)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그냥 없던 일로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대한 진노를 그냥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예수님께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십자가를 예수님께 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흘려야 할 피를 예수님이 흘리게 하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나타낸 자리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죄인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죄를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며
죄인에게 살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늘 생각하는 게 뭐냐?
성도들의 삶의 모습은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납니다.
때로는 신앙에 무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먼 사람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회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길을 찾아서 제대로 살지 못하면 너무 아프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때문에 목회를 못 하겠다... 그런 게 아닙니다.
성도들 때문에 아파서 못 하겠다, 그게 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강조하는 것,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것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하나님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셨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그때도 나를 버려두지 않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실패 때문에 하나님을 찾았다면 감사합니다.
고난 때문에 기도하게 되었다면 감사합니다.
가난 때문에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면 감사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사랑의 손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 믿으면서 늘 이런 사고를 갖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잘되면 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지만 성경은 더 깊은 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이키시기 위해서 나를 힘들게 하시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까?
돈이 없는 사람입니까? 병든 사람입니까? 사업에 실패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르신 한 분이 찾아와서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
돈도 아니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무엇일까?
혼자 있는 고독이라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고독해서 못 살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관점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예수 없이도 모든 것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가?
예수 없이도 건강합니다. 예수 없이도 돈이 많습니다. 예수 없이도 사업이 잘됩니다.
예수 없이도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모든 것을 잘 사는데 예수가 왜 필요하지?
여러분, 저는 어르신의 모습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지금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그래서 가장 고독한 시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있는가?
이것의 중요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그때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도록 버려두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내 죄를 깨닫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고난 가운데 나를 부르셔서 감사합니다.
회개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받아야 할 진노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신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를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작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진노의 잔을 받으셨다는 것.
그래서 오늘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 이렇게 이웃들과 나의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 그들을 내버려두지 마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서 그 모든 이들이 십자가 앞에 돌아올 수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응답되는 그런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