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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5 주일 2부예배- 영적 예배**

영적 예배, 로마서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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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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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2년 5월 15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로마서 12:1-2
설교제목 : 영적 예배
설교실황

[롬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가정의 달인 5월, 교우들의 가정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쳐나기를 빕니다.
세상에서 지친 사람은 늘 어머니 품을 그리워합니다.
세상에서 쓰러지지 않으려 몸부림칠 때마다 따뜻한 품을 그리워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 시)

고향이라는 품은 저 편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가정을 더 이상 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학대받고 방치된 아이들도 많습니다.
이 고단한 세상 속에서 이길 힘을 어디에서 얻겠습니까?

이제 성경에서 길을 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기초를 어떻게 세우시는지 살펴보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영국의 소설가 프로렌스 루이자 바클레이는 자기가 일곱 살 때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자신의 일생에 걸친 신앙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그때는 사순절기 중 어느 주일이었는데, 플로렌스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예배에 참석했을 때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의 성경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이 체포되어 끌려다니다가,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말씀이었는데, 그 내용들을 읽을 때 어린 플로렌스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른들은 모두 예배에 방해가 된다는 듯이 이상한 눈초리로 플로렌스를 바라보았습니다. 
플로렌스의 어머니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왜 그러니?" 하고 낮은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이때 플로렌스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 하면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철모르는 소녀의 흐느낌이 고요한 성전에 울려 퍼지자 처음에는 다들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여기저기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 소녀의 순진한 울음이 어른들의 습관적이며 불감증이 된 굳은 마음을 각성시키는 큰 울림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플로렌스는 성인이 되고 사회의 저명인사가 된 뒤에도,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자기의 어린 시절의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진정한 예배자가 될 때 일어날 일이 얼마나 놀라울지?

예배자가 된다 라는 것을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미국의 퀘이커 교도들이 참으로 신령하게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듣고 외국의 어떤 목사가 그들의 예배를 배우려고 찾아갔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도만 하고 예배를 시작하지 않아 언제 예배를 시작하느냐고 옆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예배는, 이 예배당을 나가는 순간부터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드가 프랭크(Edgar Frank)는 ‘크리스천 센츄리 ‘지에 ‘제단’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공장 작업대를
늘 제단으로 생각하였고,
어떤 이는 상점 계산대를
제물과 거룩한 봉사의 장소로 삼았으며,
어떤 이는 일상 사무 보는 책상을 강대상으로 알고
일반 사무를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의 사업으로 여겼으며
우리 중 마르다는 부엌 조리대를 성찬 테이블로 여겼다.
우편배달부는 일상 다니는 길을
성전 안에서의 발걸음으로 생각했고
매일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과의 속삭임이 되었으며 ...
평범한 환경이 길가의 성전이 되어야 하리라.

삶의 자리가 예배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는 진정한 예배자라 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로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설교의 흐름을 잡지 못하면 꼬박 밤을 새기도 합니다.
설교를 앞에 두고 컨디션을 조절해야 하고 얼마나 긴장하는지.
그런데 그렇게 힘들다가도 설교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설교하는 게 힘들다는 것. 그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힘든 것은 설교자로 사는 것입니다.

문맥상으로 보면 오늘 본문 1절에 이어서 2절을 보면 우리 몸을 산제물로 드린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한 번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십시요.
우리에게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 말씀은 다음 말씀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양식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필립스는 너희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너희를 둘러싼 세상이 너희를 세상의 틀에 집어넣지 말게 하라.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먼저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켜야 우리가 세상에서 크리스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세상과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인가?

로마서5:8을 보면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역사는 우리의 행동의 결과가 아님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예배자리에 앉아 있는 것,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롬12:1-2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에게 예배자가 된다라는 것이 무슨 말씀인가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이미 예배자로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은 참된 예배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의 삶을 변화시켜 가도록 마음을 준비하십시요.

오늘 말씀은 크리스찬이 되는 것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크리스찬으로서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능력있는 삶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는자로서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자로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가시도록 자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결심이 깨어지고 삶이 흐트러지는 것은 예배자로서의 삶이 흐트러지면서부터 비롯됩니다.

예배자가 갖는 특권이 무엇입니까?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갖게 됩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예배자가 되면 필연적으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고민하지 않는 신앙은 늘 편의적인 신앙의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예배라는 것은 완전을 향하여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입니다.

고민하지 않는 것은 어느 순간 우리의 신앙이 습관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착각을 합니다.
내가 기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겠지
그 순간부터 나의 기쁨과 하나님의 기쁨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게 됩니다.

선하다라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 내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선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서 정죄의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선한데 나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가 나오는 말씀은 누구를 위한 말씀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전도하는데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실상 이 이야기는 하나님을 모르고 떠난 탕자를 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도 하나님과 함께 있는 기쁨이 무엇인지, 그 기쁨을 잃어버린 큰 아들을 향하여서 말씀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눅15:29-32]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큰 아들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무엇이 가장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하나님께 부름받은 유대백성이 큰 아들처럼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기쁜데 그들은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의롭다 생각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배자가 된다라는 것은 아버지의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와 기쁜데 전혀 기뻐하지 않는 큰 아들의 모습은 잘못됨을 지적하는것입니다.

[약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의 말씀은 이미 교회 뜰앞에서 예배처소를 떠나고 있는 예배자들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야! 이제 예배가 끝났구나.
옆사람이 이렇게 대꾸합니다.
이제 부터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의 은총을 받는 경청은 주의하고 앞뒤를 살핀다는 뜻입니다. 

돌아서 기억하고 행하고 깨닫는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까지 속속들이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씨뿌린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들을 말씀하실 때 말씀하신 그 깨달음입니다.

참된 의미의 예배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예배자가 된다라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의 분별은 삶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가 예배자가 된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 우리의 삶을 맞춘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오르테가의 찬양 중에 Give me Jesus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예수님을 내게 주소서.
이 세상을 다 가지셔도 되오니 예수님만 제게 주소서
제가 외로울 때 예수님만 내게 주소서. 
이 세상을 다 가지셔도 되오니 예수님만 제게 주소서
또 죽음이 이를 때 예수님을 내게 주소서.
이 세상을 다 가지셔도 되오니 예수님만 제게 주소서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드리는 하나의 형식적인 관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제가 지난 날을 살아오면서 한 사람의 신앙의 영향력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삶은 참으로 고달픕니다. 그분은 언제나 환한 모습으로 저의 인생 가운데 모습을 비추어줍니다.
그래서 언젠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고달픈데 어떻게 기뻐하십니까?

그 분은 데살로니가전서 이야기를 하면서 항상 기뻐하라 주안에서 감사하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기쁨이구나 라는 것.
그래서 삶의 자리가운데 아무리 힘겨워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했더니
옆에 사는 사람이 제가 보기에도 당신의 삶은 너무나 힘겨운데 왜 그렇게 기뻐하십니가?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은 당신도 예수님을 만나보십시요. 라고 말했습니다.
옆에 사는 분이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 때부터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가서 예배를 드릴 때에 삶의 기쁨을 회복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예배라는 것,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렇게 모여서 드리는 형식이 아닌 것입니다.
삶이 예배라는 것. 꼭 기억하시고 오늘 말씀을 듣고 오늘 나아가는 그 순간부터 말씀이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오늘 여러분이 드리는 그 예배가 영적예배의 모습으로 드러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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