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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2년 5월 22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마가복음 14:3-6
설교제목 : 신앙생활이란
설교실황
[막14:3-6]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생명의 힘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는 평안하기가 힘듭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다 할지라도 어둠에 사로잡혀 살아가지 말자는 의미로 말씀을 드립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생명의 빛을 드러내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유태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가르칠 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적군이 우리 가정에 쳐들어와서 우리 가정 모든 것을 빼앗고 불에 사를 때 어떻게 할 것이냐?
자녀는 말합니다. 집에 있는 금은과 귀중한 물건들을 챙겨서 도망칠 것입니다.
부모는 이야기합니다. 그것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지혜란다.
지혜는 시련을 당할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고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에게 명예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방황하면서도 절망하지 않았던 것은 지혜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가정들을 봐 왔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최대한 많이 물려줄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들이 1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다 무너집니다.
자녀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지혜를 물려주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것을 느껴봅니다.
그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막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는 좋은 길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일들이, 우리가 선하게 생각하면서 했던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일까요?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 때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 교인들이 저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세상에 치우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곳 가운데 많이 드러나게 될 때에 이 공동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막14:4-5]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잘못되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이 여인을 향하여서 허비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좀 상세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이 잔치자리에 왔을 때 주변 사람들을 전혀 개의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향유옥합을 깨뜨려 붓는 것이 이상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녀는 주변사람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에도 이세종 선생, 이영필 선생같은 사람들.. 이들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을 때에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냉랭한 심령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병마를 겪고 있는 한 지체를 위해 사랑을 담은 헌금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서 우리가 전달해준 것에 오히려 더하여서 예물로 드렸습니다.
우리의 사랑의 수고가 헛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지체는 말했습니다.
교회 모든 지체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은 도저히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할 때에 나의 소중한 것을 그분께 드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래서 예물을 드렸습니다.
병마의 고통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에 젖어 그 사랑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 그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동기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일부로 불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순종하는 이유가 뭘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우리가 그 분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영적 삶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겠습니까?
그분과 하나가 되어서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어야 합니다.
옆사람과 이야기를 하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이 우리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마음을 우리에게서 다른 데로 빼앗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삼상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그 이전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셨지만 그는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특별한 때만 듣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때는 우리의 마음이 다른 곳에 팔려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로 사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성스럽고 놀라운 일들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속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진정한 사랑은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라는 것, 그것은 그 분에 집중하고 그 분의 사랑에 겨워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과 평행구절이 누가복음 7장에도 나와 있습니다.
[눅7:36-38]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사람들이 수근거립니다.
[눅7: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눅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죄사함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사랑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흘리는 눈물 속에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바라보시면서 너희 죄가 사해졌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베풀어주었거나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녀의 눈물속에서 결국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 여인이 주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라는 것을 우리는 찾아보게 됩니다.
온 천하에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이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향유를 부은 행위가 아니라 얼마나 그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했는가 그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막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똑같은 잔치에 참여하고 있으나 사랑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를 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하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함께 했고 무덤을 찾던 그 사람들 중에 이 여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한다고 나무랐던 그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는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정말 이 교회가 절박한 시기에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을 통해 계속 전파됩니다.
자신을 포장해서 이야기하고 누군가의 헌신을 비난해도 하나님은 분명히 아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입니다.
그 여인은 죄사함의 감격속에서 그 삶을 살아갑니다. 이게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주일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나와서 예배드리고 그렇게 반복되는 삶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나를 구속하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그 사랑에 감격해서 나를 드리고
그 사랑을 주님께서 받아주시고 그 사랑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발견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헌신이 있고 헌신이 있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입고
그 사랑을 입었기에 또 헌신하고.. 이 사이클이 깨어지면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고민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이 감격을 매일 경험할 수 있는가?
이전에 오르간을 연주할 때에는 그 오르간에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연주가 가능했습니다.
어느날 연주회가 있었는데 그 오르간에 바람을 넣어주는 사람이 병이 들었습니다.
유명한 작곡가가 나서서 자신이 오르간에 바람을 불어넣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제가 음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절대 초라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섬길 수 있는 보잘것 없는 일도 보잘것 없는 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미한 일이라 할지라도 감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최고이신 그 분을 사랑하기에 그 사랑 때문에 계속되는 감격을 경험하며 살아가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적 의미를 잘 되새기면서 예수님을 잘바라보시고 예수님을 잘 느끼십시요.
여러분이 어느 자리에 있든지 그 사랑으로 오늘의 삶을 살아내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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