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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십시오 요한복음 14:26-27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2년 7월 17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요한복음 14:26-27
설교제목 :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십시오
설교실황
[요14:26-27]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오늘의 현실은 우리를 숨가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 가계에 부담에 가중되고 있고 전세계가 침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곡물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가난한 나라는 도산위기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운 세태속에서도 지향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샬롬의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께서 주의 열심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살아가길 빌어봅니다.
한 소년은 집에 불이 나서 2층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불이 번져가면서 열기와 연기가 위쪽으로 올라왔습니다.
아버지가 아래쪽 집 앞에서 소년에게 아래쪽으로 뛰어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소년은 연기 때문에 아버지를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이야기했습니다. 너는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너를 볼 수 있단다. 안심하고 뛰어내려라.
그 소년은 연기속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래서 살아났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현실을 보지 않고 전능자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그 분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사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성령이 누구입니까?
요한복은 14장 26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성령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고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를 증거합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나님이 믿는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자꾸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령께서 자꾸 생각나게 하시고 변호하시고 필요한 상담자가 되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살아가는 자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넘어지기 쉬운 세상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라비아 사막길을 잘 안내하는 유명한 가이드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넓은 사막에서 결코 길을 잃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사람 비둘기라고 불렀습니다.
광할한 사막에서는 사방이 사막이고 지평선뿐인데 환경이 수시로 변합니다.
모래 폭풍이 불면 목적지가 보이지 않고 지형이 다 변합니다.
그래서 길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때 그 가이드는 비둘기를 날립니다.
비둘기는 머리에 자성을 띤 물질이 있어서 한 쪽 방향으로 날기에 그 가이드는 길을 잃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을 때만이 어둠이 가득한 이 세상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찰스 프라이스가 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여 계신다면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 증거를 반드시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관하여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의 경험 속에서 입증될 때 가치가 있게 됩니다.
내가 방문하고자 하는 도시로 가는 버스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 시간표는 정확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표가 우리를 그 도시로 데려다주지는 않습니다.
시간표가 진실이면 그 정보를 얻는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간표가 정한 시간에 따라 버스를 타야 그 도시로 갈 수 있습니다.
그 때, 그 시간표의 정확성을 우리는 인지하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경험하는 것보다 진리를 믿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진리에 견고한 기초를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 속에서 진리를 경험함으로써 진리가 살아서 역사하는 것을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합니다.
성령의 내주에 대한 첫번째 증거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자 하는 열망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성령께서 내주하시지 않거나 소멸하고 있거나 근심하는 상태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산다는 것은 그 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미 박쥐가 동굴안에 있는 수천마리의 새끼들 중에서 어떻게 자기 새끼를 찾아내는지 아십니까?
아기박쥐는 어미가 올 때쯤이면 입을 열어 초음파를 냅니다. 그 많은 새끼들마다 다른 초음파를 냅니다.
그 초음파를 감지하고 어미는 자기 새끼를 찾아내 젖을 물립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외국 잡지에서 번역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전쟁에 나갔던 약혼자가 전쟁에서 사망한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져있는 여인이 동네 강가의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그 다리를 지키던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서 그녀를 붙들고 잠깐만 이야기하자면서 다리를 관리하는 사무실로 그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 중년 남자는 하나님! 이 여인에게 실의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 여인은 말할 수 없는 평화를 누리며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녀는 지난날 밤의 일을 생각하며 인사를 다시 하려고 그 중년남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사무실도 없었고 그 남자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예수님이셨음을 알고 감사했습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진리는 평안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평안을 뭔가를 채우는데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이 없을 때 돈이 생겨야 평안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불의한 돈이 찾아왔을 때 여러분 마음 속에 평안을 느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운다라고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함은 진리 가운데 서 있을 때 찾아옵니다.
존 번햄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겨서 옥에 갖히게 되었습니다.
옥사장이 잠시 시간을 내어드릴테니까 가족을 만나고 돌아오십시요. 라고 목사님께 시간을 내어주었습니다.
존 번햄 목사님은 나갔다가 바로 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잠시 후에 옥으로 와서 존 번햄 목사가 있는 것을 보고 돌아갔습니다.
옥사장은 자신이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하면서 존 범햄 목사님께 고마워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기도 하시고 오시기도 하십시요.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내 고집과 방법대로 살아가지 마십시요.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사십시요.
양심에 비춰본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 살아가십시요.
병원의 신생아실을 가보면 한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들이 따라 울기에 평화롭게 잠자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모태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었더니 모든 아기들이 다 평온한 가운데 잠에 들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심장고동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믿는 사람들에게만 들려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 평안을 찾아누릴 수 있습니다.
신생실의 아기처럼 성령의 고동소리를 들으세요.
그 순간 평안의 비둘기인 성령이 여러분 가운데 내려앉을 것을 믿습니다.
신약성경 절반은 사도바울의 서신입니다.
그의 서신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과 기사와 표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성령의 능력 따위는 필요없다는 투로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성경의 내용과 배치되는 것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성령의 능력, 표적, 기적이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사라진 교회는 관념적으로 성경을 이해하여 지식으로 쌓아두고 있기에
예배의식이나 신앙행위를 반복하는 종교인들만 남아 있는 모습을 봅니다.
성령의 구체적인 능력과 기적이 우리 교회 안에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 질환에서 벗어나고, 그런 모습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드러낼 수 있는 교회됨을 통해 성경을 증명할 수 있는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모든 것들을 자의적으로 생각하고 인본주의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제가 지난 한 주간동안 한 교회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11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교회였습니다.
어느때부터 짧은 시간동안 목회자가 자꾸 바뀌고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이제 사람의 소리를 멈추고 성경이 말씀하시는대로 살아봅시다 라고 제직회에서 결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 주 한 주 살아가면서 하나님 말씀가지고 이렇게 살았더니 이런 역사가 나타났더라 매주 간증을 했습니다.
지금 그 교회는 살아서 하나님의역사를 이 땅에 증명하면서 이 사회에서 역할을 감당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철석같이 믿는다고 하지만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의 능력과 기도로 증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딱딱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면 성령이 여러분 안에 내주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길고 직분이 높아도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려는 사람이 되려면
종교인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날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그러한 모습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우리는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롬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라고 선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간절히 바라는 기도는 우리 고백교회 모든 성도들이 성경의 지식속에 빠져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한 구절을 삶으로 살아가심으로 성경이 우리 삶의 자리가운데 역사하시는가를 이 땅에 드러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시는 성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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