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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세상을 이겨내는 비결, 마가복음 8:21-29 윈도우 XP 익스플로러8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윈도우7 이상 지원됩니다. 윈 XP 환경에선 구글크롬(Chrome)을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가능 환경 : WINDOWS7 이상(익스플로러9이상), 크롬, 사파리
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
일시 : 2022년 7월 31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마가복음 9:21-29
설교제목 : 어려운 세상을 이겨내는 비결
설교실황
[막9:21-29]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떼쩨의 찬양가운데 생명의 샘물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생명의 샘물 찾아서 어둔 밤 중에 떠나리
오직 목마름 따-라 오직 목마름 따-라
우리는 지금 무엇에 목마른 사람입니까?
폭력이 지양된 세상의 꿈은 하나님의 꿈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생명의 샘물을 찾아가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다 오리라 불리는 북극 지방의 바다 새들은 바위가 많은 해안의 절벽에서 수천 마리가 좁은 지역에 함께 모여 삽니다.
많이 혼잡한 상황 때문에 암컷들은 알을 한 줄로 줄을 지어 가지런히 낳습니다.
그럼에도 어미 새가 자기 알들을 분간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알을 하나 꽤 떨어진 곳에 옮겨 놓아도 어미 새는 그것을 찾아서 본래의 자리에 도로 갖다 놓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도 우리를 훨씬 잘 알고 계시고 친밀하십니다.
우리의 감정과 결정 등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개인적인 관심을 나타내주고 계십니다.
이 영광스러운 사실에 압도되어 시편기자는 놀라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시139: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참새 한마리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은 새보다 훨씬 더 소중하므로 하나님의 지속적인 보호를 받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많이 받고 친절한 인생이 된다라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에게 집중하고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속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친밀함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신 후의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고 내려옵니다.
제자들은 황홀하고 신성한 그곳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마주친 것은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막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변화산에서 정상적인 시간을 보낸 후에 현실의 세계로 내려오자마자 그들은 쉴 틈 없이 오늘의 문제 가운데 직면하게 됩니다.
예수님게서 누가복음 9장의 사건에서 제자들을 향해 처음 하신 말씀이
[막9: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예수님이 제자들과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일부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논쟁 중이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달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애원을 들어주지 못하고 곤경에 처한 것입니다.
무엇을 변론하느냐 물으신 것은 그 상황을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막9: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늘 문제에 집중하느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해석하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오늘 내 앞에 닥친 여러가지 문제들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강조하시는 것은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문제의 상황 속에 놓여 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 집중해야 하는 순간은
예배할 때보다 예배를 마치고 삶으로 돌아갈 때라는 것입니다.
예배 드릴 때보다 더욱 절실한 것은 우리가 삶의 상황에 부딪힐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설적으로 예배에는 집중하면서 삶의 문제 가운데 놓여 있을 때는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합니다.
한 추장이 자신의 추장직을 아들 중 하나에게 물려주기로 했습니다.
추장은 아들 셋을 데리고 사냥터에 나아갔습니다.
큰 나무 위에 독수리가 앉아았습니다.
추장이 아들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무엇이 보이느냐
첫째 아들은 하늘과 나무가 보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둘째아들은 나무와 나뭇가지와 독수리가 보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막내는 독수리의 두 날개가 보이고 양 날개에 가운데 독수리 가슴이 보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추장은 막내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 곳을 향해 화살을 쏘라
막내 아들은 독수리를 명중시켰습니다.
추장직은 막내의 몫이 되었습니다.
사냥에 나온 사람은 사냥에 집중해야 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바라봐야 목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은 언제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초점을 맞출 만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려면 오히려 초점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의 초점은 우리의 삶을 집중하게 만듭니다.
무기력하게 하지 않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신앙의 집중이 무엇입니까?
많은 신앙 프로그램?, 많은 예배?
그런 것들이 집중에는 도움을 주겠지만 그것 자체가 집중은 아닙니다.
집중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에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집중하기로 하는 순간 놓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집중하는 것이 놓치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의미의 추구라는 책을 저술한 빅터 프랭클린 박사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유태인 중 하나 입니다.
열악한 음식과 환경, 아무 의료시설 없는 곳에서 동료 유태인들이 죽어갔지만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석방된 후에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지 않고 있는 어떤 힘이 있었는가? 하고 생각하며 질문합니다.
프랭크 박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떤 마음 자세를 갖는가, 내 선택에 달린 일임을 나는 항상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선택하기 위해 내가 간절히 원하는 어떤 하나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내 아내의 눈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가슴과 가슴을 맞댈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다른 포로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식사가 국 한 그릇, 완두콩 하나 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쓸모없이 자기에 닥친 불행에 절망하기보다도 그 대신 희망에 내 삶의 에너지를 다 쏟겠노라 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살아남아야 할이유를 주었으며
그 이유에 집중함으로써 실제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음을 증언했습니다.
믿음은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귀신에 들린 아이 아버지가 애원합니다. 할 수 있거든 고쳐주세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집중하지 못하고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는 불신앙에 대해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 아버지는 절망합니다.
[막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본문 23절에 이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집중해보겠습니다.
[막9: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주님께 집중하는 믿음을 가질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통하여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라는 것은 소원을 두고 비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루기를 원하는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전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릴 때 그 기도의 내용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최고이신 그 분을 따르겠다는 결단이며 모든 것을 일임하겠다는 신앙적 위임입니다.
귀신에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온전히 주님을 믿겠다고 결정하고 고백했을 때 일을 행하신 것은 주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막9: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행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온전히 믿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께 집중하는 것이 왜 믿는 자의 특권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여러가지를 직면하고 부딪힙니다.
좌절하고 어둠에 빠지기도 합니다.
목회의 여정 가운데에서 젊은 날 실패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어려운 일을 직면할 때 끊임없는 생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생각에서 생각.. 불행한 모습 가운데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더 큰 어려움을 초래한 것을 지금도 생각하면서
뉘우치고 예수님께 집중하며 기도할 때 그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 어두움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그런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삶이 어렵고 고달플 때 문제에 집중해서 더 큰 고통을 겪지 말고
이 때야말로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시간임을 기억하시면서
예수그리스도 그 분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이 어려운 시간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지체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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