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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7 주일 2부예배-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무엘상 1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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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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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4년 3월 17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사무엘상 15:22-23
설교제목 : 이것이 믿음입니다

[삼상15:22-23]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벌써 사순절 다섯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순절 여정 가운데 꼭 만나야 할  그분을 만났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순례란 하나의 중심을 향해서 나아가는 길이라고 이야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순례라는 것은 어떤 장소를 향하여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찾기 위해서 떠나는 자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헤맸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던 그날
예수님의 옷자락 그것을 성배라고 이야기합니다.

옷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이지요.
그런데 성배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찾는 것,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 막바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남은 시간 동안
그 여정을 통하여서 주님의 마음을 여러분들이 깊이 접촉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자신의 소년 시절을 기억에 떠올리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번은 아버지와 수영장을 갔습니다.
그 수영장에서 키에르케고르는 발 하나를 수영장 밑바닥에 딛고 온몸을 기울여서 수영을 하는 척 액션을 취하면서 “아버지 날 봐요! 날 봐요!”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한 발로 땅을 짚고 헤엄치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믿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걸 시험되지 않은 믿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험되지 않은 그런 믿음이기에 이런 믿음은 죄의 유혹이나 또는 경제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자기 삶에 시련이 다가올 때 바로 그 순간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은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험을 통과한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종종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척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겨울날 한 아버지가 두 딸을 데리고 눈이 덮힌 산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딸 하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제가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저를 꼭 잡아주세요.”
그런데 한 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손만 내밀어주세요. 그러면 내가 아버지 손을 꼭 붙잡고 가겠습니다.”

신앙에도 이처럼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자신이 붙들고 가려고 하는 사람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가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붙잡는 신앙은 그 믿음의 근거가 자기에게 있습니다.
자기에게는 믿을 수 있는 권리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는 권리도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이와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이 종교를 선택하고 자기 신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필요가 응답되지 않을 때 그것을 가차없이 버린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된 기독교는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드시는 그 하나님에게 응답하는 거예요.
나에게 구원의 근거가 있지 않고,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나를 붙드시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그 사실에 둔다는 것입니다.

[왕상17: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시내가 말랐을 때 그릿 시냇가의 마실물과 까마귀를 통하여서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하십니다.
엘리야는 그러한 체험을 통하여서 그 순간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그것을 직접 경험을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그 순간 내가 이제 의지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가 정확하게 체득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 순간 사실은 엘리야를 도울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절박한 순간
내 인생에 무엇인가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엘리야는 경험했습니다.
“아 나를 도울 사람이 없구나!”

그 순간부터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고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하여서그의 인생을 먹이시는 놀라운 사건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매우 잘 아는 말씀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오늘 이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처음 왕이었던 사울에게는 인정에 대한 욕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도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까? 
사람들의 인정에 그가 주려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내가 어떤 왕인가 뭔가 드러내고 싶어하는 그의 모습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순간부터 그에게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변명해도 제사를 드리려고 재물을 구분해 놓았다 해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가 제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죄가 아닐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피터월슨이라는 사람이 쓴 책, ‘하나님인가 세상인가’에서
다른 사람의 사랑과 인정이 자신의 깊은 욕구를 채워주리라고 기대하며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운명이 있다고 그는 지적을 합니다.

첫째 평범하게 될 운명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 인정에 굶주리는 사람은 늘 대중을 따르기 때문에 평범한 인생밖에 살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과 대중을 따르는 삶이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대중이 아니라 그 분을 따르라고 말씀하시는데 때로는 세상과 어긋난 모습 가운데에서 세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고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그런 역행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을 때로는 화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요.
대중의 인정에 대해 목마른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못합니다.

피터월슨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21살 때 어느날 하나님이 그의 기도 가운데 다가와서 교회를 개척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청년사역을 담당했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교회 길에서 지나가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21살인데 설교할 수 있을까? 21살인데 그가 인생을 알 수 있을까?
아니야.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할꺼야.
그 이야기를 듣고 그는 돌아와서 낙심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정말 내가 뭘할 수 있을까?
절망 가운데에서 그가 다시 하나님 앞에 기도 자리에 설 때에 그의 마음 속에 갑자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너는 왜 내가 아닌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정말 인정할 수 있을까에 거기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사람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면 그는 평범한 인생 그 이상은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평범함을 극복한다는 것은 뛰어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그런 운명은 탈진하게 될 운명입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행동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아십니까?
남들을 생각하며 쏟아붓는 에너지는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서 뭔가 만족을 찾으려면 잘못됐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완벽하게 다 실현할 수 없습니다.
실망감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질문하는 게 있습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일에 헌신하고 있는가?
오늘의 삶의 자리 가운데 늘 그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흔히 하는 이야기 가운데 착한남자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것은 목회자의 모습 가운데에서 자주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목회자는 늘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돌봐주어야 한다고
아니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켜주어야 한다고

그런데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뭔가 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행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가겠습니까?
얼마가지 못해서 탈진하고 맙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후에 고된 일로 인해서 그가 시달리게 됩니다.
그는 모든 일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지도자가 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런데 어느날 장인 이드로가 찾아와서 이렇게 제안합니다.
“백부장, 천부장을 세워서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 더 좋겠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받음으로 존재를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ㅍ결코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적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에 깨달음을 갖고 너무 거기에 매달리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겁니다.

누군가 믿고 맡길 수 있을 때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서 더 자유로움 가운데 지치지 않고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실망과 거절을 경험할 운명이라는 겁니다.

인정에 중독된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정받으려는 그러한 욕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가 많이 아프고 시련을 겪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이 문제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서 특별히 많은 어려움을 주는 것이 뭐냐? 바로 장로 선거입니다.

장로 선거로 인해서 교회가 갈라지고 무너지고 깨어지는 일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장로가 되면 마치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되지 못하면 인정 밖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감에 빠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어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문제가 일어날 때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책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장로가 뭡니까?
교회를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자기 생애를 바치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약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요.
문제가 일어나면 그런 사람들이 성도를 쉽게 떠나 버립니다.
교회를 쉽게 옮기거나 아예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서약했던 모든 내용들이 거짓된 것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만나는 인간, 사실은 아무도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고 여러분 자신도 불완전할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인생 가운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불완전하고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느냐?
슬픔을 스스로 자초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 한가지 묵상으로 이제 말씀을 이제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베드로 하면 반석이라고 하는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반석처럼 살았습니까? 살지 못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예수님께 인정받으려고 했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위를 걸어보았지만 그는 곧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마당에도 예수님 우편에 앉아 권력을 휘두를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남들은 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해도 자신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맙니다.
닭의 울음속리가 들렸을 때 그가 얼마나 비참하게 내려앉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새벽 끌려가던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바라보십니다.
예수님의 눈길은 베드로를 바라보시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 인생을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통곡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냥 지나가면서 “너 그럴 수 있느냐”라고 야단을 쳐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자기 자신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길
베드로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렇게 쉽게 무너진 자기 자신을 끝까지 바라보시던 눈빛이었고
모래알 같은 인생을 사는 자신을 끝까지 반석이라고 믿어주셨던 예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루는 김구 선생님에게 비서가 다가왔습니다.
“한 젊은이가 선생님을 뵙고자 합니다. 우리의 일을 돕겠다고 하는데 수상한 게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 말을 듣고 김구 선생은 그 젊은이를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젊은이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일본에 기거하면서 가난과 그리고 병에 시달리고 살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그는 일본말과 조선말을 섞어 행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는 조선사람 같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김구 선생님은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1000원이라는 큰 돈을 선뜻 내어주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훗날 히로이토 왕을 저격한 이봉창 열사였던 것입나다.
그는 훗날 이런 말을 남깁니다.
“평생 나를 신임해준 분은 김구 선생님 뿐이다. 그분이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어찌 목숨인들 아끼랴”
이봉창은 일본을 향해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길을 떠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드는 것,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형태 가운데 있든지 간에
너는 나의 자녀라! 불러주시고 믿어주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향하여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한번 성경구절을 여러분들이 같이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신31: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렘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두 가지지요.

신명기에서 나는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는다 믿습니까?
여러분은 포기하는데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붙들고 가십니다.
바로 여러분이 성전의 문을 밟고 예수님을 고백하는 그순간부터
하나님이 우리 홍준영씨를 붙들고 나는 놓지 않을거야
내가 너를 붙들거야
이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뭡니까?
영원한 사랑, 영원한 사랑이 뭡니까?
끝없는 내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나는 너를 사랑할꺼야
그게 김기수씨와 김대중씨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네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때로는 나에게 아픔을 주는 순간도 있지만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고 아픔가운데 너를 사랑할꺼야하는
이것을 믿고 가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거기에 너무 애쓰지 마십시요.
여러분들은 어느 순간에도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그 하나님
그분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믿음 가운데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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