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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4 주일 2부예배- 십자가 그 사랑**

십자가 그 사랑, 요한복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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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을 mp3로 듣기 쉽지 않은 상황의 지체들을 위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최대한 정리하여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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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4년 3월 24일 오전 11시 주일예배
성경본문 : 요한복음 3:16
설교제목 : 십자가 그 사랑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종려주일 아침,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던 우리들이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감사함이 넘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뭔가 둔중한 아픔, 혹은 미열 같은 불쾌감이 우리 영혼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을 아름답게 살아내지 못한 죄책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애를 써봐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세상을 거슬려 살아가면서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들입니다.
낙심하거나 강퍅해지지 말고 성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심리학자 존 헌튼 박사가 임종 직전의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연구를 책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저서에서 그들은 일생 동안 신앙이라는 것을 가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죽는 그 순간에는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어떤 것이 있냐고 이야기할 때
그들이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단순히 진리를 맹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어린 시절부터 배운 교리에 따라서 신앙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
그 이상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는 이제 죽음 앞에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평소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서 삶과 신앙을 일치시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임을 지적했습니다.
신앙이란 단순히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내세의 개념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말씀을 따라서 오늘의 삶의 자리 가운데 바로 사랑을 삶을 지켜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매일 매일 신앙을 생활화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신은 황폐해지고 우리는 죽음의 순간 비겁해진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언제나 이야기를 하지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면 그 사람은 미래에 있어서도 구원을 받는다는 그러한 연결점을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삶 속에서 그 확신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그는 진정 자기에게 구원이 있음을 그에게 또한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고백하며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임종의 순간, 정말 마지막 순간에 이런 말을 남긴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 목사님! 저는 하나님 나라 갑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난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혀 두려워하는 빛이 없습니다.
지금 확신하지 못하면 내일도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살아가지 못하면
지금의 삶을 연결해서 내일 하늘나라의 그 삶을 우리는 만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고난주간이 무슨 주간입니까?

바로 고난주간은 십자가에 담겨져 있는 그 사랑을 우리가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그 사랑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에서 우리 또한 그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고
그 사랑을 배워 나가는 시간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오늘 뭔가 거창한 것을 꿈꾸며 뭔가를 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나의 계획, 그리고 나의 욕심일 때가 참 많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의 욕심, 너의 생각, 그리고 너의 계획을 한번 내려놓을 수 없느냐

그리고 단지 내가 너를 사랑했던 것처럼 그 사랑 때문에
오늘을 살아갈 수 없겠느냐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고난 주간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죄를 회개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의 죄를 바라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슴 속에 밀려들어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이처럼 사랑하사’
영어성경을 보면 ‘so much’라고 합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난 주간의 사랑, 우리를 확증하는 사랑이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생각해보십시요. 베드로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가장 열정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신실하게 믿었고 불물을 가리지 않고 행동했던 제자가 아닙니까?

그런 그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그 아픔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베드로에게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배반한 그 순간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배반했던 그를 다시 찾아와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하면서
사랑을 느끼게 하셨던 예수님
그 두 사건은 그의 인생 가운데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그 사랑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서 접하고 난 이후에
그의 설교는 전체적으로 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랑에 감동을 받고 그 사랑에 공감하면서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회개가 일어나는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는 그러한 현상들을 우리는 성경 속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주간 바로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확증하는 시간이 바로 고난주간입니다.

여러분! 대체적으로 여러분들이 
이제 나와서 대표기도 할 때 내용을 들어보십시요.
대부분 사람들이 세상 가운데서 잘못 살았다고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대표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죄인들이 모여있는 교도소와 같은 곳이라고 이야기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질병을 끌어안고 들어와있는 병원과 같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딛고 일어나는 그러한 역사를 드러내는 곳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노래한 찬양이 있습니다.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쓰러진 나의 삶 속에 잊혀진 그 사랑
돌 같은 내 마음 어루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주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지키시니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어쩌면 우리의 영적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문장이 바로 ‘돌 같은 내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세상을 살다가 보니까 각박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내 마음이 굳어져 버려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인 것 같고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또한 이제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 참 힘들어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마음이 너무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세상 가운데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의 고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다가와서 우리의 돌 같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변화시켜 간다는 겁니다.

맥스라는 사람이 오랜만에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산맥에 있는 어느 산장을 찾았습니다.
때는 늦가을이었는데 벌써 산에는 눈이 덮힌 곳이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아름다움에 매혹이 되어서 정상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그만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산장주인은 ‘아! 무슨 일이 있구나’ 생각하면서 산장에서 기르는 개를 보내게 됩니다.
개는 이리저리 헤매다가 맥스라는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조난을 당하여서 기진맥진하다가 쓰려져 있었습니다.
개가 그의 옷자락을 붙들고 끌어도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서 개는 눈을 입에 물고 또 그 얼굴에 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깨어나지 않습니다.
개인 결국에는 혀로 맥스의 얼굴을 핥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맥스는 깨어났는데 그때 중요한 것은 뭐냐?
개가 늑대처럼 보여서 그만 가지고 있었던 칼을 끄집어내서 개를 찌르게 됩니다.
개는 피를 흘리면서 산장까지 내려와서 결국 죽습니다.
산장주인은 개가 흘린 핏자국을 따라가서 맥스를 발견하고 
결국은 구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가 훗날 영화화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람을 위한 희생은 느끼고 바라보면서도
왜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의 십자가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가

감동은 과연 무감각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는 누구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 십자가의 사랑을 소유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이야기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
그 십자가는 어느 누구도 제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구원 백성이 되고자 할 때에 우리의 신분이 어떠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장애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단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아이스 와츠는 서양사람으로서 난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키가 150센티미터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눈도 작고 피부도 창백해서 잿빛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늘 살아오면서 자기를 바라보면서 늘 ‘나는 벌레 같은 사람이야’라는 그런 생각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다가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 감동속에서 찬송을 지었습니다.

왠일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박히셨으니
왠일인가 왠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여러분! 이런 감격, 이런 고백 속에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몇년을 믿었든지, 예수 믿는 가정 속에서 태어나서 몇대손으로 태어나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살이 찢기시고 피흘려
나의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났다는 감격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면
그사람은 그의 믿음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어야 합니다.

여러분! 인간에게 많은 불행은 소유와 모자람이나 이 세상에 물질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데에서 인간은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혀 사랑할 가치가 없는 존재인데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발견하게 될 때
예수님이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구소련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나서 무려 5만 5천명의 사람이 사망을 당하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9층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어머니와 아들이 건물 더미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목마름을 호소합니다. “엄마 목말라요 목말라요”
건물 더미에 갇혀 있던 그 어머니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TV에서 재난을 당하였을 때 서로 피를 먹게 해 주는 그 장면이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을 더듬거리다가 유리조각을 찾아서 손가락 하나에 찍고 그 피흘림을 통하여서 아들에게 피를 먹입니다.
그렇게 2주간을 지내다가 아들과 어머니가 구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머니의 피흘림을 통하여서 자식이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이 바로 이와 같이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셨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이며
그분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며 받아들이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 사랑을 느끼면서
그리스도 앞에 그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한주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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